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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록홈즈 Aug 17. 2022

주택살이의 고비

비야 멈춰라


아이들 이름에 돌림자로 편안할 '' 넣은 이유는 이들이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이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누구도 인생이 편안하기만은 할 수 없다. 허나 신랑과 내가 자라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 운이 좋게도 몸은 편안했을 지언정 화가 많은 엄마 밑에서(엄마, 미안) 늘 긴장 상태에서 자라왔기에 '편안한 상태'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게 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허용적인 부모가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겠지.


​​편안함을 추구하는 우리 부부의 취약점은 당연 '불편함'이다. 크고 작은 감정의 불편함, 인간 관계에서 느껴지는 불편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때의 불편함, 바라는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의 불편함 등..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견디지 못하는 반면, 몸이 불편한 것은   견디는 편이다. 굳이 집을 떠나 자연 속으로 온갖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캠핑을 가고, 편안한 아파트를 떠나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를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한겨울에 주택으로 이사를 ,  곳에서 겨울과 봄을 보내는 동안 우리 삶에 고비란 딱히 없었다. 그저 행복하고 만족스러웠다.

주택살이의 고비는 올해 6월, 그러니까 초여름부터 시작되었다. '장마가 이렇게 빨리 온거야?' 다들 어리둥절 할만큼 6월에는 비가 참 많이도 왔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리 집 천장에선 비가 새고 지하는 물에 잠겼다. 그 후로 6월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비가 오는 날마다 워터파크로 변하는 옥상의 물을 쓸어 내리고, 자쿠지로 변하는 지하에서 물을 퍼올리고 있다. 쓸어내리고, 퍼올리고, 쓸어내리고, 퍼올리고..


어디  뿐이랴. ​사소하지만 도어락에도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자고로 현관문에 설치된 도어락은 년에 한번 정도 배터리가 나가는게 정상 아니던가? 알고보니 '정상' 기준이 아파트였기에 그랬던 거지, 주택으로 이사오니 정확히 6개월만에 빗물에 도어락이 부식되어 버렸다.


도어락 as 받고난  우리는 최첨단 장비(a.k.a 락앤락) 도어락 뚜껑을 만들었다. 이름도 지었다. 도어락을 빗물로부터 보호해줄 이 뚜껑의 이름은 바로 '도어락 인더 락앤락 메이드 바이 (신랑 이름)'이다.


뚜둥-


불편함을 꽤 잘 견딘다고 생각했던 우리 부부에게 비로 인한 주택살이의 고비는 불편함을 넘어서, 약간의 후회까지 들게 만들었다. 왜 더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고 오래된 구옥을 매매했을까. 장마철에 집에 누수는 없는지 왜 전 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등 몰랐으니 당연했던 것들을 이제서야 후회하며 안일하고 무식했던 우리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고쳐먹는다. 새로 고친 도어락을 빗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락앤락으로 뚜껑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인생의 온갖 고비들도 어떻게든 해결책은 있지 않을까? 그게 플라스틱 뚜껑이든, 뭐든간에 말이다.


주택살이를 포함한 크고 작은 ​​인생의 고비를 하나  넘다보면  나이도, 흰머리카락도 늘겠지만 그만큼 삶을 바라보는 눈도, 마음도 편안해지리라 믿는다.  '편안할 안'. 불편하기 짝이 없는 주택생활 속에서 몸은 피곤할지언정 마음만은 편안한 나날이 하루 이틀 쌓여가길 바란다. 우리 부부도, 아이들도 편안하게, 고약하거나 고단하지 않게, 그렇게 나이들고 싶고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면 좋겠다.


​​​비로 인한 주택살이의 고비를 통해 이렇게 하나를 또 배운다. 앞으로 더 배워야 할게 얼마나 많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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