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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브로 May 14. 2020

‘입주민 갑질 금지’ 보호장치는 왜 없을까

아파트 경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코로나를 겪으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며 조금만 더 버티면 곧 끝나겠지’라는 희망으로 버텨간다. 그러나 코로나와 상관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다 입주민으로부터 인격적 모독과 폭행을 당한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 노동자. 노조를 창립하려다 부당하게 해고당하여 자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나의 일상이 소중한 만큼 다른 이들의 일상 또한 소중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상을 잃은 이들의 억울하고 안타까운 사연이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부당한 입주민의 폭언에도 딸이 있어 일을 그만둘 수 없다며 고개 숙이던 경비노동자의 끝내 억울함을 밝혀달라는 유언은 얼마나 큰 막막함과 절실함에서 내린 선택일지 마음이 쓰라려 눈물이 흘렀다. 남의 일이 아닌 언제든 겪을 수 있는 나의 부모, 나의 아이의 일이기에 결코 외면해서는 안될 일이다. 아파트 입주민과 경비 노동자라는 관계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평소 직장에서 사회에서 어떤 모습의 삶을 살아왔을지 훤하다. 쥐뿔도 없으면서 경비 노동자를 머슴 부리듯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은 중학생이 일진 놀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격적 미성숙함의 끝판왕이다. 본질을 따져보자면 갑을 관계를 떠나 근본적으로는 대상을 서열화하여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이다. 직장 내 갑질, 백화점 내 갑질, 프랜차이즈 본사의 갑질 등 모두 평등한 대상을 위, 아래로 배치하는 잘못된 관점에서 출발한다. 갑질로부터 이어지는 폭행 논란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사람을 보는 기준은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아닌 주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소개팅 상대가 내 앞에서는 아무리 신사적인 말과 행동을 하더라도, 음식점의 서빙 직원에게 무례하다면 그 모습이 숨김없는 그의 진짜 모습일 수 있다. 회사에서 높은 자리의 임원 분이 매일 구두를 수거하여 닦아주는 구두닦이 공에게 선생님이라 칭하며 음료수를 건네고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은연중에 임원에 대해 사람을 자리나 지위가 아닌 공평하게 대할 믿을 만한 리더라는 신뢰가 생겨난다. 상대적으로 약자에게 무례한 사람은 언제든 상황이 바뀌면 내게도 본색을 드러낼 수 있기에 신뢰할 수 없다. 갑을 관계는 언제든 장소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 대 사람으로 보면 그런 서열은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집 앞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검정 봉지에 담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파트 정문에 위치한 경비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는 손녀인 나의 딸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쥐어주며 경비아저씨께 드리라고 했다. 우리 아파트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감사한 분이라는 다섯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과 함께, 아이가 고른 아이스크림 중 하나를 꺼냈다. 아이가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며 아이스크림을 건네자 아저씨께서는 치아를 드러내며 환히 웃어주셨다. 그 뒤로도 명절이면 한과, 빼빼로데이엔 빼빼로 과자 같은 아주 작은 것들을 드릴 때면 매번 ‘괜찮다’ 하시면서도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로 화답해 주셨다.


입주민의 아파트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일하는 경비노동자 분들의 안전이 일부 몰상식한 사람의 ‘갑질’로 위협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이 분명 필요하다. 작년부터 시행 중인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처럼 경비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입주민 갑질 금지’ 조항과 그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왜 없는 걸까. 제도 개선 전까지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 아이와 함께 주전부리를 건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할 뿐이다. 경비노동자를 향한 입주민의 작은 감사의 표현이 모여 그분들의 일상을 지켜줄 보람이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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