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원데이 클래스는 거의 다 해본 나에게 목공예 원데이 클래스는 조금 가격이 비싸서 망설여졌던 활동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래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이 더 커져서 빠른 예약이 가능한 곳으로 이곳저곳 알아보던 중, 노들역 근처 <고범석 목공방>을 발견하게 되었고, 첫 목공예 원데이 클래스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약 두 달 후, 나는 같은 목공방에서 정규반 수업을 등록했고 두 달 동안 총 8번 수업을 듣게 된다. 그럼 나의 총 9회 차 목공예 수업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나의 번아웃 해소에 도움 되었던 활동 리스트]
1. 요가
2. 템플스테이
3. 우드카빙 - 원데이 클래스 & 정규반(2달) 수강하기
4. 가드닝 수업
5. 식물 가득한 카페 & 산 둘레길 걷기
6. 인센스틱 피우며 일기 쓰기
1. 원데이 클래스 - 볶음주걱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에서 나무로 도대체 무엇을 만들 것인가? 를 고민하다가 나는 활용도가 제일 높을 것 같은 볶음주걱을 골랐다. 집에서 요리 많이 해먹기도 하고, 내가 직접 만든 볶음주걱으로 요리해 먹으면 더더욱 맛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엇을 만들지 정했다면, 이제 어떤 나무로 할 것인가를 고르면 된다. 체리나무/호두나무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기름 먹였을 때 색깔이 멋스러운 호두나무를 골랐다. 그리고 이건 뒤에 정규반 수강하면서 알게 된 거지만, 호두나무가 조금 더 깎기 부드러운 나무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호두나무에 남아있는 무늬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는데 딱이라고도 생각이 되고, 나무를 깎다 보면 또 무늬 아래에 새로운 무늬가 나오고 하는데, 깎으면서 깊어지는 무늬가 꼭 나무가 살아온 흔적을 살펴보는 것 같아서 더 좋았던 거 같다.
다음으로는 도안을 따라 나무에 그리고, 컷팅을 한 다음, 고정을 시키고 드로우 나이프로 사각사각 선에 맞춰 나무를 깎아가면 된다. 나는 특히 드로우나이프로 나무를 큼직큼직하게 깎아내는 걸 좋아했는데, 그때의 사각사각 소리, 살짜쿵 나는 나무 냄새, 바닥에 토도독 떨어지는 나무 조각들과, 예쁘게 깎여가는 내 주걱을 보면서 몰입감과 통제감 그리고 성취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외 어느 정도 모양이 갖춰지면 작은 나이프로 조금 더 섬세하게 다듬는 작업을 하고, 사포질로 겉 표면을 다듬고 기름을 먹이면 드디어 완성이다!
도안을 그리고, 드로우 나이프로 깎고, 또 깎고!!!!
내가 만든 볶음주걱과 친구가 만든 술잔ㅋㅋ
2. 목공예 정규반 수업
9월 남자친구와 헤어지고ㅋㅋㅋ 마음이 헛헛해진 나는 내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8월에 체험했던 원데이 클래스가 생각났고, 정규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우선 한 달 등록해서 수강했다. 그게 재미를 붙여서 총 두 달이 되었고, (또) 볶음주걱, 숟가락, 계란트레이, 컵받침, 작은 접시, 도마 이렇게 총 여섯 가지 기물을 만들었다.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나는 호두나무를 유독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체리나무는 기름 먹이기 전까지만 좀 마음에 드는 것 같고, 단풍나무로는 계란트레이를 만들었지만 나무 자체가 너무너무 단단해서 계란 구멍 파는 데 좀 애를 많이 먹었다ㅠ 팔이 너무 아파서 결국엔 가슴팍에 헝겊 같은 거 덧대고 가슴팍 힘으로 깎았는데 참 쉽지 않았던 것 같다ㅋㅋㅋ 내가 왜 단풍나무 색깔에 반해서 이렇게 힘들게 계란트레이를 깎고 있을까 이 생각밖에 없었던 듯! (근데 정작 실생활에서 제일 잘 쓰고 있는 게 계란트레이... 역시 힘든 건 다 보람이 있다!)
나무를 깎다 보면 나무의 결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나뭇결이 위/아래로 향하는 것뿐만 아니라, 위로 3센티 뻗어나가다가 갑자기 오른쪽 대각선 45도 방향으로 나무 결이 바뀌기도 하고, 나뭇결이 위쪽이어서 위로 깎고 있었는데 깎다 보니 갑자기 나뭇결이 아래 방향으로 뒤바뀌기도 하고, 한 나무 안에도 이렇게 다양한 방향이 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러면 문득, '아 이 나무는 참 방황을 많이 했나 보다' 싶다가도, '어디로 가는 길이었을까, 햇빛을 더 잘 받아보려고 몸을 틀었던 걸까?', '이 나무는 어떤 히스토리를 갖고 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나무도 이리저리 방황(?)을 하는데 한낱 인간에 불과한 내가 시련에 흔들리는 건 당연하지! 이 시련이 나에게 어떤 나이테를 남기고 나를 더 성장시킬까?' 하는 생각도 얼핏 했던 것 같다.
애증의 계란트레이, 그리고 완성작들(기름먹이기 전 VS 기름먹인 후)
제일 좋아했던 건 바로 컵받침 만들기와 도마 만들기였는데, 뭐랄까 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서 그랬던 것 같다. 특히 불꽃 모양 혹은 강가의 윤슬 같은 무늬를 내가 파냈다는 게 엄청난 성취감과 뿌듯함을 주었다. (아, 생각해 보니 나 계란트레이보다 컵받침을 더 많이 잘 사용하고 있네! 집에서 커피/차마실 때 애용하는 중이다!!)
창작하는 재미가 있던 컵받침 만들기
그리고 도마는 뭔가 이왕 내가 만드는 김에 더 독특하게 만들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검색하면서 어떤 도마를 만들면 좋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에는 그냥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로 해야겠다! 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렛서판다를 좋아한다. 왜냐면 털이 불그스름한 게 딱 내가 술 먹고 얼굴 빨개졌을 때 색이랑 비슷하기 때문이다ㅎㅎ 렛서판다 이미지를 찾아서 그대로 본떠서 나무 판에 도안을 그렸고, 열심히 또 드로우나이프질을 했다. 하나 이것도 조금 약간, 아니 조금 많이 후회하긴 했는데ㅋㅋ 너무 곡선이 많다 보니 특히 얼굴과 몸통사이 목 부분 이런데 깎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또 좋았던 건, 도마는 거의 2-3회 차를 할애해서 깎았는지라 이 렛서판다 도마를 목공방에 두고 다녔는데, 다른 원데이클래스 참가자들이 내 도마를 보고 다들 영감을 받았는지 동물 모양으로 도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름 도마 디자인 흐름에 큰 획을 그은 것 같아서 내심 뿌듯했다. 요 도마는 현재 친구들 놀러 오면 안주 담는 용으로 가끔 사용하긴 한다. 이 도마 꺼내면 다들 엄청난 눈으로 날 바라보곤 하는데, 소소하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의 눈길을 받는 게 나는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