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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토끼 Sep 14. 2024

선녀님이 보고계셔

상쾌한 방울소리

까마득하던 오늘이 오긴 왔다. 약 일년 전 예약할 당시에 나는 선녀님, 장군님 또는 애기보살 등 사람이 아닌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게 궁금한 것이 없었다. 심지어 나는 귀신이든 사후세계든 믿지 않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친한 직원이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흥미로웠고 솔깃했다. 비혼주의던 사람은 가치관을 바꿀 남자를 만났고 누군가는 오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으며 곧 죽을 사람은 선녀님 얼굴도 못보고 쫓겨나는 그런 곳. 그리고 그때와 지금 나의 상황이 달라져버렸으니 나는 지금 누가 뭘 알고 있다면 어떤 질문이라도 하고싶다.


쨍한 여름날 소중한 연차까지 쓰고 신점을 보러가는 두여자가 너무 재밌다. 원래 출근시간보다도 일찍 서둘렀다. 오랜만에 꽉찬 지하철도 경험하고. 대중교통으로 약 두시간의 이동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는데 막상 도착한 곳은 간판도 없는 평범하고 허름한 빌딩이었다. 나는 뭔가 신비한 기운을 기대했고 옆에 친구는 조금 긴장했다.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아아 한잔과 질문리스트를 재정비했다. 시간에 맞춰 건물 4층으로 올라가서 벨을 눌렀다. 문앞에 과자랑 음료가 있었다. 줄서서 기다리는 손님을 위한건가. 라는 생각은 나중에 의구심이 생겼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방망이 든 도깨비, 신령, 삼지창, 칼, 온갖 과자, 온갖 술이 쌓인 재단, 보살, 선녀 그림. 화려했다. 문 안팎의 과자는 사람몫은 아닌 것 같았다. 분위기가 무섭거나 위협적이지는 않았는데 내부 인테리어와 톤이 깔끔했고 잔잔한 재즈음악이 흘렀다.나는 과연 어떤 말을 듣게 될까.


대기하는 동안 가족 이름을 쓰고 실장이라는 분의 안내를 듣고 그녀의 눈치를 안보는 척했지만 끊임없이 타이핑을 하고 있는 그녀가 맥북으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주의사항을 읽고 돈을 보내고 음악을 들었다. 질문도 계속 정비하고 메모할 준비도 했다. 친구가 먼저 들어갔고 30분정도 있다가 나왔다. 바로 들어갈 수 있을지 알았는데 20분정도 또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만나게 된 선녀님은 생각보다 어려보여서 놀랐다. 가족들은 이름과 생년만 알려줬고 나는 생년은 커녕 이름도 말하지 않았다. 선녀님이 방울을 흔들었다. 밖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고 뭔가 음산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의 방울 소리는 상쾌했고 방울을 흔드는 선녀님이 신기하고 그녀가 쓰는 언어가 궁금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끊임없이 그림인 듯 글씨인 듯 알쏭달쏭한 선을 그리느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녀의 손과 검은 색연필과 선이 그어지는 연습장과 염주와 벽에 걸려있는 선녀님과 그녀의 도구들을 관찰했다.


접신이 끝난 그녀가 일정한 톤으로 말들을 쏟아냈다. 한마디 한마디 놓칠 수 없어서 다 받아쓰고 싶었는데 너무 빨라서 받아쓰기는 불가능 했다. 귀에라도 가능한 많이 눌러 담아야 했다. 가장 중요하고 궁금한 건 역시 나의 연애와 결혼.

다행히 멀지않은 미래에 결혼운이 있고 남편도 자녀도 있다고 하니 만족했다. 더 구체적으로 물어볼 걸하는 아쉬움이 나중에 들었지만 그 정도의 빈공간은 남겨놓길 오히려 잘한 거 같기도 하다. 그 사이에 몇명 만나서 사귀고 결혼은 그때 만나는 예쁜 사람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년 하반기에 궁합보러 다니면 되겠다고 선녀님이 그랬다. 무속 안 믿는다던 나 자신 반성해야 할 듯.


나의 직업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는데 굳이 써보자면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뭔가로 돈벌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 있는 자리를 잘 지키라고 했다. 직장에서 지금처럼만 하면 인정도 받고 승진도 할거라고. 승진 누락은 안되려나…굳이 경쟁판에 끼고 싶지는 않은데. 돈벌려고 뭘 배우려면 투자 공부하라고 했다. 퇴직하고 서점하는 건 괜찮겠지?


나의 연애 만큼이나 중요했던 가족들의 건강 문제. 다행히 큰일 없이 평탄하고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한다. 작은언니에게 이동수가 있다는데 아무래도 직장을 지방으로 얻을지도 모르겠다. 언니에게 전달 하지는 않을거다.


27년에는 모든 게 안정적이 될거니 걱정할 필요가 없고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된다고 했고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 크게 나쁜 일이나 사고는 없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을 얻고 나니 아주 만족스러웠고 나오는 기분이 좋았다. 다행히 친구의 미래도 긍정적이어서 둘다 기분이 좋았다. 이 안도감이면 오늘 여기 온 이유로 충분했다.


친구가 처음 들어갔을 때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친구의 아픈 부분과 여기 온 이유를 선녀님이 말해버렸다고 했다. 덕분에 선녀님에 대한 신뢰도 급상승.

또한, 신점 후기를 친한 직원들하고 얘기했더니 그 직원들도 선녀님을 예약했는데 지금부터 1년이 아니라

자그마치 2년을 기다려야 했다. 선녀님이 용하다는 게 증명될수록 선녀님이 본 나의 미래도 사실일 확률이 높아진다. 일단 지금은 그녀가 한말을 믿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다려 보기로.


선녀님이 지금 내 시야가 너무 좁아져 있는데 잘 될거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실 이런말은 선녀님의 영험함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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