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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토끼 Nov 10. 2024

나는 선한 사람인가?

친절, 선함, 여유, 내마음

사람은 선한가 악한가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도 해보고 꽤 오랫동안 생각도 해왔지만 여전히 답을 못 찾고있다.  나혼자 내린 결론은 '그때그때 다르다' 는 것.


'과연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는가', '악하게 태어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고 각각의 명제를 뒷받침하는 사례들도 많이 있지만 내가 믿고 싶은 건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선천적인 부분보다는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한 부분이 지금의 내가 되는 것에 더 크게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살면서 많은 부분이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한 뉴스를 보도할 때 모든 책임과 원인을 그 범죄자의 성장환경, 배경 등에서 찾는 방식이 상당히 불편하다. 비슷한 결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이렇다더라'라는 식의 멘트들도 패스해버린다. 스스로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환경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이제 정말 참기가 힘들다.


개인이 가지고 태어난 것, 가지지 못한 것, 환경 등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설사 남들보다 과거에 뭔가 부족했다하더라도 지금 성인인 이상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핑계로 현재의 자신, 미래의 내가 할수 있는 일을 결정해버리는 태도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각자의 성취를 이루는데 어느정도 시간차가 있을 뿐이다.


내일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예전의 글에도 쓴적이 있는 것 같은데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늘 그런 건 또 아닌 것이 때때로 나의 아주 못된 면을 관찰한다. 언젠가 횡단보도 한 중간에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나는 신호가 바뀌면 길을 건너서 집에 간 다음 빨리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그 할머니를 도와드릴 수 없어서 그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가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도와주실 분 안계세요’  라고 외쳤을 때도 무시하고 지나가버렸다. 그때 횡단보도를 지나는 많은 사람 중에도 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의 외침을 듣고도 그냥 지나쳐버린 나는 약간 죄책감이 들었지만 도와주는 남자가 있다는 것에 안심했고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나는 지각하지 않고 운동시간에 도착했고 그날도 오늘 할일을 완료 했다는 성취감으로 마무리 했다. 성취감과 함께 약간의 죄책감, 찜찜함이 있긴 했지만 다음날 나는 똑같이 출근하고 하루를 보낸다. 나는 그날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그날 그 할머니와 남자는 때때로 타인에 무심하고 이기적인 나를 마주쳤을 뿐이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친절은 여유에서 나온다'를 증명하는 사회실험이 있다. 나는 실험에 참가 하지 않았지만 이미 증명을 해버린 셈이다. 그날 나는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만약 그날 나에게 시간이 많았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있었을까.


원흥에 살 때 일이었다. 퇴근 길에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지하철역을 나오는 모든 사람을 향해 길을 물어보았다. 다들 가는 길이 바빴고 할아버지의 질문은 공중에 흩어졌다. 나도 못들은 척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그 할아버지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어떤 답도 얻지 못한 상황이 화가 났는지 다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소리를 쳤고 화를 내었다. 그때 지하철역을 나왔던 모두는 나쁜 사람들인가.

그 일도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데 할아버지의 도움을 구하는 방식이 잘못됐던 거 같다. 이렇게 남탓을 해버린다. 도움을 요청할 때는 특정 대상에게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게 좋다.


그렇다면 그날 횡단보도의 그 남자도 다수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네. 다행이다.


직장에서 나는 꽤 친절한 편이다. 더 가깝고 덜 가까운 직원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사람들인데 각박한 서울생활과 뾰족하다 못해 찔려버리는 회사생활 속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알게되고 재밌게 지낼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요즘이다. 하지만 하루종일 같은 사무실에서 지내면서 모든 사람과 늘 좋을 수만은 없는게 언제 어디서든 어떤 사람들은 꼭 가시돋힌 말을 내뱉거나 악의없는 공격을 한다. 공격을 받으면 공격으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섣불리 공격했다가 나만 되려 아팠던 적, 외려 나만 불쾌했던 적 등의 경험으로 맞지 않는 옷같은 공격은 그만뒀다. 그들에게 공격으로 맞서지 않는 것을 나의 선함의 증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냥 무시와 무대응이라는 자기방어였다. 그렇게 나는 타인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된다.  


사람이 또는 내가 늘 항상 일관된 방향으로 행동하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하지만 또 늘 일관된 행동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역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사는 내내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만 하나보다. 나는 대체적으로 선하고 일반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때때로 무심하고 이기적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올해도 내년에도 성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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