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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어 Feb 23. 2022

불효자는 '크게' 웁니다

외동인 친구를 위해 화장터를 갔다 왔다. 

비교적 조용한 가족이 있는가 하면 소리를 지르며 우는 가족도 있다. 

멀리서 보면 그만한 비극이 없다. 


엄마! 왜 나 두고 가! 나는 어떻게 하라고! 

이제는 더 잘해드릴 수 있는데, 지금 가시면 어떻게 해요. 

사연은 가지 가지지라지만

그들의 짙은 감정은 그것이다. 

후회. 


그쪽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친구에게 

화장터에 몇 번 다닌 적이 있는 나는 말했다. 


"원래 불효자가 제일 시끄럽게 우는 거야" 


*







외할머니와 엄마는 놀랍도록 똑같은 남편 복을 타고났는데, 

아무래도 둘 다 맏아들과 결혼해서 그런 듯하다. 


두 분의 남편은 두 분 다 남동생이 하나씩 있었는데 

그게 참 가관이었다.


생애 동안 좋아하시는 과자 하나 제대로 사다 드리지 않고 

어머니에게 받아먹을 궁리만 해서 

큰 아들 재산을 빼다가 작은 아들을 주는 어머니를 가진 

우리 집안의 차남들은

장례식 때 가장 크게 울었다고 한다. 


상여를 붙잡고 자기 숨도 멎었으니 같이 묻어달라며 운구를 못하게 하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식이 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징징 대며 바닥에 앉아 발을 구르며 운 아들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울 수도 웃을 수도 없어 난감했다고 그날을 전했다. 


*


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장례 과정에서도 그랬다. 

약간의 치매기가 있던 할아버지를 끝까지 혼자 지켰던 할머니는 

남은 사람들이 소리 질러서 울면 

고인이 편하게 갈 길을 못 간다고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우셨다. 


그런 어머니의 노력은 아랑곳 않고 자식들은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며 울었다. 


말년에는 귀가 잘 안 들리고 기억을 못 한다는 이유로 없는 사람 취급했던 그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던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


소리 내어 울던 자식들 앞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할아버지를 찾아뵙고 

용돈을 쪼개 간식을 사다 드리고 

말동무가 되어드렸던 나는 

사실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게 생전에 잘하시지 그랬어요. 


*


엄마의 간병이 이어지고 있다. 


간병과 함께 당연히 떠맡게 된 살림과 

퇴근이 없는 삶. 


내가 더 많이 움직일수록 엄마의 하루는 편안해지지만

그럴수록 내 하루는 사라지는 

등가 교환의 시간. 


그럴 때마다 나는 장례식을 생각한다. 

언젠가는 다가올 엄마의 장례식. 


생전에 잘할걸, 이라는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나의 삶을 갈아낸다. 

오히려 엄마의 장례식 후에 엄마 중심으로 살았던 내가 

앞으로 뭘 할지 모르는 날이 오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살아야지 싶다.  


언젠가 찾아올 엄마의 장례식에서 

나는 가슴을 펴고

소리 죽여 울 줄 알며

엄마를 편안하게 

보내드리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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