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가장 내 생활에서 가장 바뀐 일이 있다면 평생 살았던 인천을 놔두고 경기도 이천으로 갔다는 것이다. 오로지 신랑의 회사 취직에 의한 선택이었다.
그렇다. 나는 남편을 따라 이천을 갔다. 30년 이상 살았던 인천을 떠나 가정을 이룬 것이었다. 심지어 이천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뱃속에 산티아고까지 있었다. 회사 뒷문에 위치한 나 홀로 아파트였던 우리 아파트는 이천 시내로 가기까지도 꽤나 오래 걸렸고 있던 버스 편 마저도 빙빙 돌아가서 15분 갈 거리가 1시간이 걸리는, 항상 'oo동'이라는 단어가 익숙했던 나에게 'oo리'는 나에게는 시골 같은 곳이었다.
뱃속에는 산티아고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나갔다 오는 것도 몸이 고됐다. 심지어 9월생이기 때문에 막달엔 여름을 거치며 최고 여름 기온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헉헉거리기에 바빴다.
그래도 그때는 이천이라는 곳이 나름 좋았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육아는 그 기대감을 철저히 부서트렸다. 이천에 살면서 육아로 뛰어든 후 나는 더 철저히 외로워졌다.
20년 지기 내 생사의 스토리를 공유했던 친한 친구들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만날 수 없었고 아이가 내 세상에 전부였기 때문에 내 세상은 곧 가족뿐이 남지 않았다. 첫째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나름 재미있게 살았던 것 같은데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고 보니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렸었다. 임신 우울증, 육아 우울증을 온몸으로 겪으며 그 시간을 묵묵히 지나갔다. 그때 나를 거둬주신 분들이 우리 친정부모님. 그리고 지금까지 도움을 받으며 잘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왜 정신적으로 무너졌었지라는 생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고 그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시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그런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인천에서 11개월 만에 이천에 왔다. 분명 이천을 떠나 친정인 인천으로 갈 때는 1주일 있다가 이천으로 다시 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몸상태가 그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둘째 주안이를 낳고 3개월 후 이천을 올 수 있었다.
그것도 오히려 이천에 위치한 우리 집으로 휴가로 왔다. 여기저기 펜션을 빌릴까 어쩔까 하다가 이천인 우리 집은 산 좋고 물 좋기 때문에 집에서 놀고 다시 친정집으로 들어가는 것도 휴가 같았다. 그런데 나에게 쇼킹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첫째의 조리원 동기 친구가 오페라를 갔다 왔다는 것이다.
팬데믹 2.5단계일 땐 사회적 거리두기를 두어야 할 때지만 그때까진 팬데믹 1단계로 마스크만 쓰면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이천에서 서울까지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3살 아이를 놔두고 공연을 볼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공연이란 거의 저녁에 이루어진다. 퇴근시간을 고려하여 최소 7시 반 8시 이후. 대형 뮤지컬이다 보니 1, 2부 인터미션도 있고 최소 3시간. 왕복으로 작게 잡아도 2시간에서 3시간. 최소 5시간을 아이와 떨어지는 것이다.
이천으로 휴가 온 날 도착한 날 너무 궁금해서 미리 약속을 잡은 첫째의 조리원 동기 친구들부터 만났다.
나는 공연 관계자다. 아니 공연 관계자였다. 뮤지컬을 주로 만들었고 함께 했던 극단도 있었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것도 공연을 만드는 것도 내 삶의 일부였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는 저녁에 나가기는커녕 밖에 아이를 두고 나가는 것조차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갓 100일이 된 둘째가 있기 때문에 더 나가기 힘들었지만 둘째가 없을 때에도 공연을 보러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가는 것은 반경 1Km 커피숍을 겨우 갔으며 그마저도 아이들이 너무 울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뛰쳐 들어갔어야 했다. 그렇게 공연은 내 삶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언니는 어떻게 공연을 보러 간 거지? 이 뮤지컬은 3시간 러닝타임으로 이천 집까지 도착하면 새벽일 텐데?
그래서 언니에게 질문을 했다.
오페라 유령 공연을 어떻게 가셨어요?
심지어 조동 친구는 애가 셋이었다. 첫째가 중학교 둘째가 초등학교. 셋째가 이제 세 살. 우리 산티아고와 같은 나이었다.
신랑이 아이들 보고. 나는 첫애랑 갔다 왔어요.
애가 셋인데도 공연을 볼 수 있고 워킹맘으로도 당차게 살아갈 수 있다니.
아! 그래서 공연을 어떻게 가셨어요?
내가 똑같은 질문을 두 번 되풀이 하자 그제야 언니가 질문의 의도를 눈치챘다.
저는 신랑에게 통보해요.
신랑에게 통보하면 갈 수 있는 건가.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대답이었다.
에이~ 나만 키우는 거 아니잖아요. 아이는 엄마만 키우는 거 아니에요. 남편도 같이 키우는 거지.
지진 맞은 것과 같은 느낌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맞다. 아이는 나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사실 친정에 육아를 하는 이유는 퇴근 후 몇 시간 보는 신랑보다 24시간 함께 키워주는 친정엄마가 필요했었다. 엄마에겐 아이들 맡기고(그마저도 애들 잘 때) 나간 적이 있었지만 오히려 신랑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간 적이 없다.
아이 둘과 신랑만 있는 장면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왜 그러지? 우리 신랑은 가정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고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아이들을 이뻐하고 잘 놀아준다. 집안일도 이번 일을 계기로 함께 식단 고민을 하고 혼자 청소도 한다.
그런데도 왜 신랑과 아이들만 있는 장면이 상상이 되지 않을까. 이건 나도 모르게 있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
아이는 맡기면 안 된다는. 나도 모르게 나만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선입견. 남 탓만 하고 사회 탓만 했었는데 알고 보니 나도 그렇게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맞다. 엄마만 키우는 것이 아닐진대 오히려 나만 그렇게 생각했었나 보다. 주변 사람만 봐도 충분히 지켜봐 주는 것을 굳이 나 혼자 짊어지려고 했었나 보다.
아이는 엄마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엄마만이 책임감을 가지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신랑, 부모님 그리고 온 동네 사람들이 같이 키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