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에서 느끼는 인생철학
몽골에서 맞이한 세 번째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는 홍고르엘스 고비사막을 향해 떠날 준비를 했다. 첫날의 여행은 신선하고 낭만으로 가득했지만, 셋째 날이 되자 피곤함과 함께 지루함이 밀려왔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푸르공 차에서 문득 한국의 내 편안한 침대가 그리워졌다.
몽골의 고요함 속에서 문명세계의 분주함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인터넷과 다양한 콘텐츠들로 바삐 살던 내가, 이 넓은 초원에서 느끼는 고독과 적막이 익숙지 않게 다가왔다.
몽골은 유목 생활을 해온 역사로 인해 식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도 물이 귀한 환경에서 다양한 요리를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날 아침도 간단한 호밀빵과 계란부침, 소시지로 차려졌다. 다행히 뜨거운 물이 있어 우리가 가져온 드립커피로 아침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짐을 꾸리고 다시 차에 올라 넓은 초원의 오프로드를 달렸다. 얼마쯤 달렸을까, 중간에 마트에 들르기 위해 시내에 잠시 멈췄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 무더운 날씨에 맞춰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몽골의 우유가 워낙 다양하고 맛있다더니, 정말로 깊고 고소한 우유 맛이 아이스크림에서 느껴졌다. 시원하고 고소한 아이스크림으로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졸다가 깨다를 반복하니, 어느새 홍고르엘스 고비사막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석양이 아름다운 사막에서의 모래썰매 체험을 안내해 주었다. 저녁까지는 자유시간이었다. 우리는 게르 옆에 설치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잠시 여유를 즐겼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색에 잠겼다. 다리를 뻗고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꼬마 친구들이 다가왔다. 게르 주인의 자녀들로 보이는 여섯 살쯤 된 누나와 남동생이었다.
짧은 영어로 몇 마디 나누고, 가지고 있던 초코파이와 딸기파이를 나눠주었다. 그 아이들은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우리는 새로운 친구였던 것 같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다가와 우리와 함께 놀고 싶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많이 보던 연을 날리고 우리 보고 날려보라고 선뜻 내어주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가이드가 카레라이스를 준비해 왔다. 익숙한 한국의 맛이 그리웠던 순간, 카레는 정말 반가운 음식이었다. 일행 모두 맛있게 카레를 비우고, 마트에서 구한 귀한 얼음으로 하이볼을 만들어 더위를 식혔다. 몽골의 적막함과 무더위를 잊기 위한 작은 사치였다.
핸드폰 신호도 닿지 않는 곳에서 할 일이 없어, 우리는 결국 게르로 돌아와 낮잠을 청했다. 그 적막 속에서 느낀 평화로움이 몽골의 매력이었다.
오후 5시쯤 되어 우리는 고비사막으로 출발했다. 한 삼십 분을 달렸을까? 석양이 지는 모래언덕이 붉은 노을로 아름답다 못해 경이로웠다. 신발은 모래언덕 밑에 벗어두고 우리는 양말만 신은 채로 모래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비사막의 모래언덕은 그 광활한 풍경 속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과 젊은 친구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만이 고요함을 깨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바닷속에서 하나둘 솟아오른 모래언덕은 그저 바람에 의해 쌓였지만 나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언덕 위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황금빛과 붉은 노을로 모래가 일렁이며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다. 그 웅장한 모습은 마치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모래언덕을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발이 깊이 빠지는 부드러운 모래는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뒤로 미끄러져, 마치 두 걸음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들었다. 하지만 그 고된 과정을 통해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은 그 모든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고비사막의 모래언덕은 그저 자연의 경치가 아니라, 삶의 철학을 일깨워 주는 장소 같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듯 보이면서도 늘 그 자리에 있는 그 언덕들은, 마치 내 삶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일러주는 것 같았다. 나는 또 그렇게 고비사막의 일몰과 함께 저물어 가고 있었다.
게르를 떠나는 날 젊은 주인장과 꼬마친구들은 차량 앞에서 다음에 또 오라는 인사말과 손짓으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인생의 단 한번뿐은 몽골여행을 또 올 수 있을까?" 문득 생각해 본다. ㅎㅎ
다시한번 춥고 춥다는 겨울의 몽골여행을 기대해본다.
[못다 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