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가즈린촐로의 빗속의 텐트 안에서 피어나는 우정
몽골 여행 여섯 번째 날, 그날의 기억은 유난히 선명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혹스럽고 무력했던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몽골의 푸르공 차량 안에서 피곤을 달래며 잠을 청했지만, 목적지인 바가가즈린촐로로 향하는 바위길은 험난했다. 휘어지는 산길과 거친 바위길을 따라가 주차를 한 후, 우리는 바가가즈린촐로의 화강암 지형으로 십여 분간 걸어 올라갔다. 몽골 초원에서는 보기 드문 멋진 화강암이 펼쳐진 이곳은 광활한 초원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독특한 경관이었다.
곳곳에 스님들이 기도하던 옛 사원터와 동굴이 남아 있었다.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였던 시절, 종교 탄압을 피해 스님들이 몰래 기도하던 이곳에는 돌로 만든 사원터가 있어 둘러볼 수 있었다. 그중 '시력 3.0을 만들어 준다'는 전설이 있는 신비한 물도 있었다. 바위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물을 떠서 눈에 바르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이야기였다. 믿거나 말거나, 지나가는 여행객들은 한 번씩 그 물로 눈을 비벼보고 있었다.
여행을 마친 우리는 대망의 노지 캠핑을 준비했다. 차에서 내려보니, 눈앞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기대했던 캠핑장 대신, 바위들 사이에 텐트를 치고 진정한 몽골의 자연을 느껴야 했다. 저 멀리 들판에서 젖소 무리가 다가오고, 벌판 고요함을 깨는 건 우리 일행의 말소리와 음악소리뿐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고, 가이드 자야가 준비한 소고기 덮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가이드와 기사님도 함께한 식사는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준비한 보드카 하이볼과 남은 수박으로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캠핑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저녁 내내, 해가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가롭게 텐트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이내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벼운 빗줄기로 텐트위에 빗소리는 팝콘튀는 소리처럼 타닥타닥거리며 기분좋은 리듬을 타며 내리기 시작했다.
우중캠핑 느낌을 살려 음악과 함께 그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곧 억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고 작은 텐트는 빗물을 견디지 못했다. 텐트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에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우린 그저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캠핑은 우리의 고집 때문이었다. 가이드는 비 예보를 보고 숙소에서 묵기를 권유했지만, 우리는 "몽골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원하며 캠핑을 강행했다.
한 평 남짓한 텐트 안에서 우리는 빗물을 닦아내며 폭풍우를 견뎌냈다. 천둥과 번개가 몰아치는 밤, 의지할 곳은 일행과 가이드, 기사님뿐이었다. 세상과 단절된 이곳에서 오직 우리끼리만의 시간이 이어졌다. 서로 빗물에 옷이 젖지 않도록 챙겨주며, 어둠 속에서 몸을 기댔다. 이 폭풍우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돈독함을 느꼈고, 함께하는 여행에서 생겨나는 끈끈한 정이 다시 한번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 어떤 계획보다도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결국, 텐트 안에서 비를 맞으며 무력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그 순간이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었다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연의 흐름을 따르는 법을 배운 밤, 황당하고 답답했지만, 그 순간이야 말로 내가 몽골 여행 중 가장 소중하게 기억할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