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를지국립공원과 징기스칸의 유산
바가가즈린촐로에서 폭풍우 속의 밤이 지나고, 새로운 아침이 찾아왔다. 바위틈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니, 어젯밤의 폭풍우도 잠시 잊혀졌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그 순간, 우리는 눈을 떴다.
가이드 자야는 이미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 한 방울 없는 산속에서의 식사 준비는 어려워 보였다. 어제 저녁 설거지도 물티슈와 약간의 물로 간신히 해결했던 것 같았다.
오늘 아침은 간편하게, 물과 불이 필요 없는 빵, 요거트, 그리고 과일로 준비되었다. 우리는 드립커피를 내려 따뜻한 커피와 빵을 함께 먹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 모든 것이 익숙한 일상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서 더욱 특별한 오지 여행의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떠날 준비를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울란바토르 근처에 있는 테를지 국립공원이었다. 테를지에 가까워질수록 문명의 흔적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핸드폰 신호가 잡히기 시작했고, 와이파이도 연결되었다. 오랜만에 문명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위해 들른 곳은 오지에서 벗어나 처음 맞이하는 식당이었다. 이곳은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촬영한 장소였다. 빛바랜 촬영 포스터가 식당 앞에 붙어 있었고, 우리는 오랜만에 맛보는 외식을 즐겼다.
식사를 마친 후, 본격적으로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하자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은 마치 한국의 강남처럼 부의 상징을 보여주는 장소 같았다. 오지에서 보았던 단순한 게르와는 달리, 크고 웅장한 별장 같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게르도 여행자를 위한 시설처럼 크고 화려했다. 우리가 이제껏 보았던 그 어떤 것과도 다른, 새로운 몽골의 모습이었다.
몽골의 척팍한땅에서 보는 아름드리 나무는 멋있었고 문명세계의 물과 불, 먹거리들이 다양한 곳으로 이동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원의 대표 명소인 거북바위를 지나, 우리는 전통 몽골 가죽 가방과 의상들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기념품을 구경했다. 이후 야리야발 사원으로 향했는데, 이곳은 몽골에서 얼마 남지 않은 티베트 불교 사원 중 하나였다. 108계단을 올라 부처님께 예를 갖춘 후, 사원 내부에서 잠시 더위를 피했다. 비록 나는 천주교 신자지만, 존중의 의미로 사원의 예절을 따랐다.
마지막으로 징기스칸 동상이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동상이라는 징기스칸 동상은 40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그의 강력한 기마병력과 세계 제국을 건설한 위엄을 상징하는 듯했다. 그 위대한 유산을 마주하며 우리의 몽골 여행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 우리는 몽골 초원에서 승마체험을 했다. 목장주인의 “의랴” 소리와 함께 말이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처음으로 초원에서의 속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빗방울이 부슬부슬 내리며, 초원 위에서의 승마는 나의 몸과 함께 리듬을 타며 자유와 평온함을 선사한 기분 좋은 느낌이였다.
게르로 돌아와 마지막 저녁을 즐기며 우리는 몽골에서의 추억을 되새겼다. 샤워실에서는 콸콸 쏟아지는 물을 마음껏 쓰며, 물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다. 다음날 아침, 함께한 가이드 자야와 기사님 님하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순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몽골의 넓은 초원에 서 있으면 마치 세상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찾아왔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일행들의 대화와 음악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 속에서, 내가 평소 당연하게 여기던 바쁜 일상과 소음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익숙했던 한국의 복잡한 도시 생활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적막 속에서 내 마음은 차분해졌고, 펼쳐진 초원의 자연은 나의 지친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그동안 일상 속에서 자주 느끼던 조급함과 불안감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서울의 분주한 거리나 지하철에서 느끼던 시간의 압박감, 끝없이 쏟아지는 업무에서 벗어나, 초원의 고요 속에서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몽골 초원에서 보낸 시간만큼 내 마음도 안정되고 치유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 평온함을 다시 가슴에 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의 삶에서 내가 추구할 목표와 미래를 생각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시간이다. 몽골에서 느낀 이 적막과 평온을 한국에서도 기억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으리라 다짐하며 나의 여행 일지를 마무리한다.
2024.08.24 young
[못다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