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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Jul 28. 2022

아무것도 묻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

 재준이가 어렸을 때, 동네만 다녀도 인사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그때서야 새삼스럽게 알았다. 얼굴을 아는 동네 주민분들, 경비 아저씨, 슈퍼나 편의점, 빵집의 직원분들, 자주 가는 문방구나 키즈카페의 사장님까지. 당연하고도 놀랍게도 이 모든 분들께 인사를 해야한다. 나는 인사의 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인사를 가장 열심히 해야하는 ‘어린이’인 재준이가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준이가 말을 전혀 하지 못했던 시절, 나는 인사를 할 때마다 압박을 느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부모가 인사를 하면 어린 자녀가 따라 인사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상식이다. 게다가 인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모가 인사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를 잘못 키운다고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재준이는 내가 누군가에게 인사를 해도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다.



재준이는 이런 표정으로 멀뚱멀뚱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럴 때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재준이에게 “재준아, 너도 인사드려야지”라고 말하면 멀뚱멀뚱 가만히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상대가 묻지도 않은 말에  "아,, 저희 아이가 자폐가 있어서요. 말을 아직 잘 못 알아들어요." 같은 다소 장황한 부연설명을 하게 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며, 그 후에 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상상만으로도 복잡해지는 그런 상황을 나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만의 꼼수를 개발했다. 엄청 큰 소리로 나 혼자 인사를 하며 재준이의 머리를 살짝 눌러 같이 인사를 한 것처럼 속임수를 쓴다. 그리고 "재준아, 가자~"와 같이 말하곤 최대한 빨리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 꼼수는 재준이가 어릴 때는 가능했는데, 아이가 점점 크며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누가 봐도 초등학생 정도인 아이의 머리를 누를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인사를 해야 할 상황에 재준이가 멀뚱멀뚱하게 가만히 있으면, 꼭 “몇 학년이야?”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




 나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질문을 받으면

 “‘이 학년이에요.’라고 대답해야지, 재준아"

라고 말한다. 다행히 조금 성장한 재준이는 부정확한 발음으로 반향어 정도는 할 수 있는 어린이가 됐다. 내 말을 들은 재준이는

 “이 아녀이여..”

라고, 누가 봐도 그 나이답지 않은 발음과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재준이가 그렇게 대답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다. 재준이가 대답을 하면 사람들은 “그렇구나"라고 한 후,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왜 말을 잘 못하냐’,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와 같은 꼬리를 무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제껏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나는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다.



재준이가 처음 자폐를 진단받았을 때, 부모님께 이를 말씀드렸던 날에도 그랬다. 아버지는 “애가 좀 다를 수도 있지.”라고 하셨고, 시어머니는 “같이 잘 키워보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양쪽의 부모님들은 더 이상의 것은 묻지 않으셨다. 부모님들은 궁금한게 많으셨을 것이다. 손자에 관한 일이니까. 그런데도 나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재준이와 함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갈 때, 가끔이긴 하지만 재준이는 높은 음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허공을 보며 혼자 웃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식은땀이 나 손과 등이 다 축축해질 정도로 땀으로 젖는다. 마치 무대공포증에 걸린 사람이 무대에 선 것 같이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당황하는 그 순간들에, 놀랍게도 우리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과 버스에 탄 그 많은 사람들 모두가 우리를 일부러 쳐다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했을까? 그런 따뜻한 배려를 받으면 절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슈퍼에서, 동네 어귀에서 재준이의 대답을 듣고 “그렇구나."라고 말하고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본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저 분들은 분명 궁금한 게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위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저 사람들과 내가 이웃이고, 저런 분들 사이에서 나와 재준이가 살고 있구나. 나는 그 분들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우리를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나는 그 많은 분들의 깊은 배려를 마음으로 느낀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아 마음을 꾹 누른다. 나는 살면서 내가 받은 이 따뜻한 마음들을 다 갚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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