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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주씨 Aug 02. 2022

놀이터 선생님들

나는 더 큰 세상을 매일 배우고 있다.


 재준이와 나에게는 비밀 장소가 있다. 그건 바로 집 앞 놀이터다. 나는 인기 없는 놀이터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알아내 그때만 재준이와 놀이터에 찾아갔다. 재준이가 놀이터에 다른 아이들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그냥 나는 그곳을 비밀 장소라고 칭해버렸다.




 재준이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 아니, 지키는  자체를  모른다. 규칙은 고도로 발달한 사회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행동 양식이다. 게다가 원리 원칙대로 되지 않는 놀이터 내에서는 규칙뿐만 아니라 ‘눈치'까지도 겸비해야 한다. 사회성이 떨어지고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재준이에게 놀이터는 가장 어려운 세계라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은 놀이터에 재준이와 가는 것은 나에게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다. 재준이를 다니며 하나하나 규칙을 설명하고, 눈치를 가르치며, 다른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제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놀이를 방해하니 재준이 입장에서도 사람이 많은 놀이터에 가는 일은 즐겁지 않을 것 같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놀이터에 끌리는 DNA가 있나 보다. 내가 헬리콥터 맘처럼 쫒아다니는 그 놀이터에 재준이는 매일 가서 놀고 싶어 했다.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재준이가 신발장으로 가 직접 신발을 신고,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밖에, 밖에"라고 말을 한다. 나는 이런 재준이의 모습을 보고 놀이터에 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묘안은 사람이 없는 시간대의 가장 인기 없는 놀이터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주말의 새벽이나 이른 아침, 다른 아이들이 점심밥을 먹거나, 학원에 가있어야 하는 애매한 시간 말이다. 사회성을 배워야 하는 재준이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을 찾기는 어려웠다.



재준이는 아이들이 많이 놀고 있는 놀이터로 뛰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하교 길에 재준이가 아이들이 많이 놀고 있는 놀이터로 뛰어갔다. 나는 재준이에게 집 앞에 있는 비밀 놀이터로 가자고 설득했지만 재준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 옆에서 재준이는 알짱거렸다. 그네를 타던 아이는 재준이를 보더니 “조금만 더 타고 내릴게"라고 말했다. 재준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네 옆에서 차분히 기다렸다. 친구의 말을 듣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네를 다 탄 재준이는 미끄럼틀로 향했다. 미끄럼틀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재준이가 새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재준이를 제지하기 위해 미끄럼틀로 다가갔는데, 한 아이가


“야, 내가 먼저야. 너는 늦게 왔으니까 저 뒤로 가서 기다려야지.”


라고 말했다. 재준이는 그 아이의 말을 듣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놀이터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모두 규칙을 잘 알고 있고, 재준이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왜 재준이를 쫒아다니며 제지를 한 것일까?




 이제 우리는 비밀 놀이터에도 가지 않고, 나는 놀이터에서 재준이를 쫓아다니지도 않는다. 다른 엄마들처럼 벤치에 앉아 재준이가 노는 것을 구경하며 쉰다. 놀이터에는 수많은 재준이의 선생님들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놀이터 선생님들은 재준이에게 규칙을 알려주고, 함께 하는 공간에서 노는 방법을 전수한다. 나는 지금껏 다른 아이들이 재준이를 가르쳐주고 도와줄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을 잊고 있었다. 같이 사는 세상에서 다른 모든 이들은 재준이의 선생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운이 좋은 날에는 재준이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재준이가 표현을 잘 하지 않아도, 리더십있게 ‘그네를 타자’, ‘미끄럼틀을 타자’와 같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어린이 친구가 있다. 그럴때면 재준이는 그 아이의 의견에 따라 같이 신나게 논다. 나는 재준이가 다른 친구와 함께 놀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해 그 모습을 구경하다, 이렇게 친구와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중증 자폐 아이의 특성상 친구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놀이터에 나오면 선생님이자 친구들이 언제나 있다. 재준이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인 ‘놀이터’가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도 고맙게 느껴진다. 재준이는 언제까지 놀이터에서 놀 수 있을까? 아, 걱정하기보단 현재를 즐겨야지. 오늘도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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