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준이는 세 돌 무렵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소근육이 약해 펜을 들고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도 집 여기저기에 그림을 그렸다. 그랬다. 그림을 그리는 장소가 우리 집의 벽이나 창문, 장롱, 싱크대 같은 곳이었다.
덕분에 우리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재준이의 그림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처음엔 놀라던 사람들도, 집이 미술관이려니 생각을 하며 재준이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재준이의 그림은 아이스브레이킹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좋아하는 것이 아주 제한적인 재준이가 즐기는 활동이니, 나는 그냥 집 곳곳에 그림을 그리게 놔뒀었다.
재준이는 그림을 그릴 때 그 나이답지 않은, 사뭇 진지한 태도와 고도의 집중력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 그 누구도 재준이가 그림을 그리는 중에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얼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재준이는 그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릴 때부터 색을 다양하게 쓰지 않았다. 재준이의 그림을 보며 ‘이런 게 강박인가?’와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체는 늘 비슷하고 쓰는 색도 거의 단색이었다. 재준이가 그리는 그림은 보통 뽀로로와 타요 친구들, 뽀로로에 나오는 사물이나 동물들, 무지개 정도다. 재준이의 그림은 작가가 누군지 예측할 수 있는 명확한 특색은 있지만, 다양성이 부족하달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재준이는 성장하며 그림의 묘사를 점점 자세하게 하기 시작했다. 사물의 외곽을 그리고 안쪽 디테일을 살리는 방식의 그림이었다. 이제 그림을 보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누구나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여전히 어릴 때와 그림체는 비슷했다. 그래도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림과 같이 글씨를 쓴다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재준이의 그림에 큰 변화가 찾아온 적이 있다. 우리 가족이 1박 2일로 여행을 갔던 날이었다. 이 날은 재준이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하다. 이렇게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색으로 코끼리를 칠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코끼리의 커다란 양쪽 귀에만 세 가지 색을 사용했고, 양쪽 얼굴 색도 다르게 칠했다. 이전에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화려한 색에 손을 뻗어 코끼리를 완성해갔다.
나는 재준이의 감정 변화에 주목했다. 늘 단색이었던 재준이의 감정이 다채롭게 폭발한 것처럼 느껴졌다. 재준이는 무언가 표현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빛의 언어라는 ‘색’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그림에서 재준이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을 읽어보려 노력했다. 재준이는 여행에서 편안하게 웃었고, 아빠와 같이 여러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고 싶어했다.
또 이 날 스케치북에는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무려 아홉 가지 색을 사용해 그림을 색칠했다. 처음으로 다양한 색을 사용해서 그림을 칠했는데, 색이 마주하는 부분에 보색을 사용하기도 하고, 비슷한 색을 사용하기도 하며 다소 과감한 색 사용을 보여줬다.
이 날은 재준이가 처음으로 녹차를 마시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장어덮밥을 먹은 날이었다. 또 근사한 미술관에도 들려 멋진 작품들을 관람하고, 용기를 내서 큰 강아지와 즐겁게 뛰어논 날이었다. 그러니까 재준이가 처음으로 경험한 것들이 많은, 다채로운 날이었다. 재준이는 자신의 경험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는 재준이의 다채로운 그림을 보며 자신의 틀을 깨트릴 수 있는 힘을 주는 사건은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는 것.
나와 재준이는 이렇게 틀을 깨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