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주씨 Dec 18. 2019

그래서 사람들은 ‘자폐인’을 싫어한다.

자폐인의 상동행동


중요한 면접을 보러 간 날, 나는 인식하지도 못한 채 다리를 떤다. 갑자기 떨리는 다리가 느껴지며, 혹여라도 이 중요한 때에 복이라도 나갈까 다리떨기를 멈춘다. 그리곤 초조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손으로 입술을 뜯기 시작한다.

누구나 몇 가지씩 가지고 있는 행동. 불안하거나 특별한 상황이거나, 아니면 습관적으로 의미 없이 반복하는 행동들. 이런 행동을 ‘상동행동’이라고 한다.
 
상동행동을 잦은 빈도로, 눈에 띄게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자폐인이다. 상동행동의 빈도는 자폐아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의 하나로 사용될 만큼 자폐인의 큰 특징이다.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자폐인들은, 자신을 안정시키기 위해 상동행동을 한다.




재준이도 여러 가지 상동행동을 가지고 있다. 입술을 계속 핥아서 입 주변은 빨갛게 되고, 귀를 반복적으로 막기도 하고, 방 안을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물건을 눈 바로 앞에까지 가지고 왔다 떨어트렸다 하는 행동을 몇 시간 동안 반복하기도 한다. 재준이 같은 경우에는 한 가지 상동행동만 몇 달 동안 반복하다, 그 행동이 없어졌다 싶으면 새로운 행동을 시작했다. 다행히 지금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눈에 띌 만한 상동행동은 나오지 않는다.


사물을 눈 앞으로 가져와 관찰했다, 다시 눈에서 멀리 떨어트리고, 다시 눈 앞으로 가져가고..



내가 기억하는 재준이의 첫 번째 상동 행동은 청각과 관련된 행동이었다. 말도 잘 못하는 애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시끄러!”라고 했다. 집 안은 조용한데도 계속 “시끄러!”, “시끄러!”라고 하며 귀를 막았다. 그러다 “시끄러!”라는 말은 하지 않고 양 손으로 귀를 막는 행동만 계속했다. 그 행동은 몇 달 동안 계속됐다.
 
대체 조용한 집 안에서 재준이가 시끄럽다고 느끼는 게 뭐였을까. 말을 잘하는 자폐인들에 따르면 조용한 집 안에서도 시계 소리, 냉장고 소리, 에어컨 소리, 심지어 형광등을 켜면 형광등 안에 있는 필라멘트가 전류를 전달하는 소리까지도 그들을 괴롭히는 소리라고 한다.




겨울이 올 때쯤이면 재준이는 입술 핥기를 시작한다. 3년째 겨울 즈음에 같은 행동이 반복되는 것을 보니, 겨울의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 촉감 때문에 나오는 상동행동인게 분명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재준이는 그 시기에 입술을 하도 핥아 입 주변이 빨개져서  길가다 애기 립밤 좀 발라주라는 소리를 꼭 듣게 했는데(발라줬거든요ㅠ), 올해부터는 입술에 립밤을 듬뿍 발라주니 입술 빠는 것을 하지 않는다. 재준이의 감각이 많이 안정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겨울만 되면 입술이 이만큼 빨갛게 텄다ㅠ


 이젠 일상생활에서 상동행동이 거의 나오지 않아 안심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병원에 재준이를 데려가니 그동안 보지 못한 행동을 마구 했다.
“어, 어, 어, 어, 어, 어, 어, 어”   
같은 소리를 계속해서 반복했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린다. 재준이를 안정시키기 위해 초코송이를 사 왔는데, 과자를 다 먹자마자 대기실 안을 뱅글뱅글 걷기 시작한다.

 얘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무서우면 이런 행동이 한꺼번에 나올까. 자폐인들은 자신을 숨길 줄도 모른다. 힘들어하는 재준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전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무리 정신과라고 해도 자폐인을 본 일이 거의 없는 사람들은 재준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폐인을 싫어한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 때문에 이상한 행동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계속해서 내뱉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폐인을 싫어한다. 자폐인은 자신을 숨길 줄 아는 사회적 기술이 없다. 때문에 반복적으로 자신의 불안과 강박을 표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폐인을 싫어한다. 자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까. 비자폐인인 나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런데 자폐인들은 참는다.


사람들이 편하자고 만든 것들, 밝은 불빛, 돌아가는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핸드폰 소리, 정신없이 달리는 자동차, 이런 건 모두 감각이 예민한 자폐인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자폐인들은 참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지하철 노선도를 외우며 참고, 뱅글뱅글 자신의 몸을 돌려가며 참고, 손을 팔랑팔랑 거리며 자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그런 것을 참아낸다.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달래 가며 다 참아낸다. 자폐아의 엄마인 나는, 그걸 알아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자폐인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배우지만, 진짜 우리를 배려하고 있는 건 자폐인이다. 그들은 비자폐인들을 위해 참는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다 참아낸다. 참을 수 없는 것들도 참아가며 밖으로 나온다.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