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준이와 우주
동물을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재준이가 동물들과 소통하려는 것을 보고 나서부터다. 재준이가 어릴 때 우리는 함께 집 앞에 오는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준 적이 있다. 어미를 잃어버린 검은색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집 앞에서 우는 것을 본 후로 재준이와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나가 고양이 밥을 챙겨줬다. 밥을 들고나가면 새끼 고양이는 우리에게 다가왔고, 재준이는 쪼그려 앉아 고양이가 밥 먹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사람에게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재준이가 고양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인상 깊게 느껴졌다.
제주로 이주하고 나서는 동네 편의점에 찾아오는 강아지를 보러 자주 갔다. 중문 해수욕장 앞에 있던 편의점이었는데, 이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는 늘 큰 진돗개가 있었다. 크기가 커서 그런지 재준이는 가까이 가지 못했지만 역시나 관심을 두고 관찰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간혹 우리가 먹던 군고구마나 구운 옥수수 같은 것을 주기도 했는데, 재준이는 그럴 때 행복한 얼굴로 “꺄”하고 소리를 내며 개가 먹는 것을 보곤 했다.
재준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서, 그러니까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을 무렵부터 재준이는 동물들과 눈을 맞추려고 하기 시작했다. 눈맞춤이 힘든 것은 자폐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재준이는 의도적으로 사람과의 눈맞춤을 피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동물들과는 눈을 맞추려고 한다. 자신의 얼굴을 동물의 얼굴과 비슷한 높이로 맞추고 눈을 쳐다보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카페를 찾아가곤 했다. 재준이는 동물들을 보면 살짝 흥분하여 “귀여워”, “이리 와”, “안녕”과 같은 단어를 쏟아냈다. 평소에는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동물들도 재준이의 마음을 읽는 것 같았다. 시각에 민감한 재준이는 동물들이 빠르게 움직일 때 깜짝 놀라곤 했는데, 동물들은 재준이 앞에서는 천천히 움직였고 재준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옆에 앉기도 했다. 재준이는 동물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런 재준이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고양이 입양을 결정했다.
코리안 숏헤어, 줄여서 코숏이라고 불리는 우리에게 친근한 길고양이들은 상대적으로 입양이 쉽지만, 뱅갈 고양이만큼의 운동량을 자랑하여 재준이와 함께 생활해야 하는 우리 집 환경에는 맞지 않았다. 또 집 안에서 키우기 시작한 지 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유전적으로 집고양이의 특성보다는 길고양이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나는 재준이의 성격을 고려하여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종류의 고양이를 알아봤다. 성격이 온순하고 얌전하며 사람에게 친화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렉돌, 브리티쉬 고양이, 노르웨이 숲 고양이 중 성격을 알 수 있는 성묘를 입양하기로 했다. 나는 고양이 입양을 위해 유기묘 카페에 매일같이 들락날락거렸다. 그렇게 며칠 동안 입양을 알아보다 운이 좋게 캣맘에게 구조된 온순하고 느긋한 성격의 노르웨이 숲 고양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고양이의 이름은 '우주'라고 지었다. 이름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재준이가 발음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받침이 없는 단어 중 발음이 쉬운 단어를 고민했다. 나와 남편은 여러 단어를 고민하다 우리가 만난 것에 대한 의미를 떠올렸다. 그러다 한 생명과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온다는 것과 같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남편에게 의미를 이야기하며 '우주'가 어떻냐고 물었다. 재준이가 부르기에도 좋은 단어였다. 그렇게 우리는 고양이를 '우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재준이는 우주를 보자마자 “고양이”라고 말하며 다가갔다. 우주는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있었고, 재준이는 고양이에게 눈을 맞추고는 아주 많이 기뻐했다. 그리고는 “안녕”이라고 말하며 고양이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재준이는 우주를 졸졸 쫓아다니며 함께 놀고 싶어 했다.
“안녕?”
“이리 와.”
“놀자.”
“밥 먹어.”
재준이는 본인이 아는 말을 쏟아냈다. 재준이가 누군가와 함께 놀고 싶어 하고, 이런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만큼 신기했다. 재준이는 늘 혼자 놀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런 재준이가 본인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한 생명체와 같이 놀고 소통을 하고 싶어 하다니. 내가 재준이에게 하고 싶어 하던 소통과 눈맞춤을, 재준이는 우주에게 하고 있다. 재준이의 마음이 통했는지, 우주도 재준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함께 놀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자폐 아이들이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재준이는 동물들과 마음을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행복해한다. 꼭 ‘말’을 하지 않아도, 그리고 ‘사람’이 아니더라도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재준이를 보며 깨닫는다. 오늘은 나도 우주와 마음을 나눠봐야겠다. 재준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