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이상 장애에 대비하지 않는다.
나는 뭔지 모를 거대한 것 앞에 있다.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는 바위로 된 산, 아니면 육지가 없는 바다, 혹은 끝이 없는 벽이다. 그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게 만드는 선이고,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는 이가 없는 세계다. 다른 사람들 앞에는 나타나지 않아 말해도 이해할 수 없는 허구의 것, 나는 그 앞에 있다.
내 뒤에는 나의 아들 재준이가 있다. 재준이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큰다. 나는 커져가는 재준이에게 밀려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무기는 손에 쥔 달걀 하나. ‘아주 긴급할 때 던져야지. 최후의 순간에 던질 거야.’ 하며 어떻게든 아이를 데리고 앞으로 가본다.
아이의 장애를 처음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랬다. 내가 넘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앞에 있었고, 내 손에는 아주 형편없는 무기밖에 없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발달장애인의 일생을 본 적이 없으니, 아이가 어떻게 크고, 어떻게 생활해 나갈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앞 날을 알 수 없으니 커가는 아이를 보는 것이 무섭기만 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첫 번째 방법은 상상할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아이를 넣는 것이었다. 아이를 비장애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당연하겠지만, 그런 일은 우리를 불행하게만 만들 뿐이었다.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춰, 비장애인처럼 아이가 될 것이라 기대하고 교육하니 늘 재준이는 부족한 아이였다. 이렇게 가다간 아이도, 나도 망가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두 번째 방법은 '자폐'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수학 공식을 만드는 것처럼 자폐에 대해 파고들었고, 어떤 답을 구하려고 애썼다. 당연하겠지만, ‘자폐인’인 아이는 성장하는 생명체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에게 어떠한 정답을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아이의 장애에 대한 공식을 만드는 것을 멈췄다.
이렇게 저렇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동안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재준이도, 나도, 특별한 순간이 아니면 재준이의 장애에 대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익숙해졌다’고 표현할 수 있게 됐을 무렵, 깨달은 것이 있다. 최근 내가 재준이에 대해 하는 고민들이 내가 10대 때 했던 고민과 겹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재준이의 적성에 잘 맞는 취미는 무엇일까?’, ‘재준이 특성에 잘 맞는 직업은 무엇일까?’ 같은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애를 처음 맞닥뜨리면, ‘장애’라는 거대한 이름에 눌려 ‘인간’을 생각하지 못한다. 장애를 없애는 것에 몰두하거나, 타인에게 장애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장애를 가진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거나 비장하게 대비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무기는 필요가 없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유일한 무기인 ‘달걀’을 손에서 떨어트렸다. 그런 게 없으니 두 손은 자유로워졌고, 재준이를 힘껏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재준이의 ‘장애’가 아닌 ‘미래’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재준이는 무엇인가 처음 시도하는 것을 어려워하니, 충분히 시간을 주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릴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재준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재준이는 발화가 어려우니,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글을 쓰거나 그림을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비장애인과 같은 방식으로 꼭 그들의 기준에 맞춰 ‘발화’에 목을 매달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면 ‘장애인’은 사라지고 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남는다. 나는 재준이의 ‘자폐성 장애’에 대해 더 이상 대비를 하지 않는다. 장애를 없애려고 하지도, ‘장애’에 대해 답을 구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비장애인 청소년의 보호자들과 마찬가지로 재준이의 성장을 지켜보다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면 될 뿐이다.
최근 재준이는 유튜브로 ‘동주 C’를 검색해서 내가 만든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재준이가 영상을 볼 때면 신기한 느낌이 든다. 어릴 때를 추억하기 위해 보는 것인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본인을 키우나 궁금해서 찾아보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답을 듣기는 어렵지만, 여하튼 내가 만든 영상을 유심히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언젠가 내가 쓴 글을 찾아서 볼 날도 오겠지. 나는 그날을 위해 재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글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