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란 한 사회가 가지는 가치 판단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 사회가 갖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에 바탕을 둔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의 진작이란 두 가지 명제를 함축한다......장애에 의한 고통은 인간 사회의 관심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의 < ‘장애인’ 기획도서를 펴내며 >
유튜브나 브런치와 같이 오픈된 공간에 재준이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면
“왜 아이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고, 아이의 장애를 멋대로 전시하느냐.”
와 같은 류의 댓글을 받곤 한다. 나도 이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내 장애도 아니고 아이의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그것도 아이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올려도 되는 것인가?'
그런데 여러 방식으로 생각해도, 어떠한 과정의 생각을 거쳐도, 나의 결론은 늘 같다. 장애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관심을 받아서 이야깃거리를 나누는 편이 장애인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내가 살았던 세상과 재준이가 살아가는 세상은 많이 다르다. 나는 평생을 비장애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재준이는 누릴 수가 없다.
'차별'이라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기 힘든 것이다.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절대 볼 수 없는 것이다.
버스를 타면서 ‘버스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도서관을 이용하며 ‘도서관에 발달장애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나도 인간인지라 어떤 때는 쓸데없이 자극적인 요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를 쓸 때도 있고, 살다 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이전에 했던 말들과는 다른 행동을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와 재준이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써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이화여대 출판부가 ‘장애인’ 기획도서를 펴내며 쓴 글을 인용해 본다.
장애인들이 그토록 무거운 짐을 그렇게 오랫동안,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당하게 짊어졌어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한 잘못의 시정과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의 진작은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