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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블로켓 Jul 25. 2018

온천 앞 골목에서 도련님과 마주쳤다

에히메 현에서 읽는  나쯔메 소세키의 <도련님>

나츠메 소세키 '도련님'



다른 도시로 떠난다는 것은 몸만 떠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몸 안의 감각 세포들이 분주하게 낯선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 오감이 활짝 열리는 것, 편견없이 누군가를 만나는 것.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따라가는 것, 그래서 새로운 생각들을 수혈 받는 것. 그런 일련의 경험이 아닐까?


섬나라 일본을 이루는 가장 작은 섬, 시코쿠를 다녀왔다. 우동가게가 1000개쯤 되는 사누키 우동의 고장, 88개의 사찰을 참배하는 오헨로 순례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도고온천이 있는 곳.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시코쿠의 진짜 매력은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차분한 공기, 봉제선 없이 이어 붙인 것 같은 과거와 현재의 패치워크로 다가온다.  


시코쿠를 대표하는 랜드마크이자 3000년이나 된 전설적인 도고온천이 시코쿠의 에히메 현에 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유명하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도고온천의 숨은 홍보대사라고 할 수 있다. 낮의 도고온천도 운치 있지만, 밤이 되면 일본 최고령의 온천장 포스는 더 강렬해진다. 야경 속 3층 목조누각은 마치 만화를 찢고 나온 듯 비현실적으로 멋있다.  그러나 에히메 현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센과 치히로’가 아니라 ‘도련님’이다. 에히메 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에미헤 현이 나쯔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도고온천

나쯔메 소세키는 일본의 세익스피어로 통하는 대문호이자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작가다. 그가 100년전 쓴 소설은 지금 읽어도 세련되고 유머러스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100년 전 소설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입감이 큰 이유는 아마도 사람의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소설에는 100년전이나 100년후나 다를 게 없는 본능, 애증, 갈등이 통렬하게 묘사된다. <도련님>(일본어: 봇짱)도 마찬가지. <도련님>은 시골로 부임한 새내기 교사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그린 소설인데 타협을 모르는 도련님의 막무가내 캐릭터가 소설의 큰 재미를 준다.  



봇짱열차
시계탑


이 소설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곳 도고온천이 있는 도시. 에히메 현은 <도련님>을 다양한 형태로 스토리텔링하고 있다. 사람들을 가장 많이 불러모으는 것은 봇짱시계다. 도고온천이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봇짱시계는 매시간 정각이 되면 소설 <도련님> 속 등장인물들이 차례로 나와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출현할 때마다 정각이 되기를 기다리며 시계탑 앞에 모여든 사람들의 카메라세례를 받는다. 시계 아래에는 온천물이 흘러나오는 족욕탕이 있어 느긋하게 발을 담그고 쉬어갈 수 있다.


갑자기 기적소리가 들려도 놀라지 마시길. 기적소리의 주인공은 소설에도 등장하는 봇짱열차다. 메이지 시대의 증기기관차를 재현해서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이다.  도고온천으로 통하는 아케이드를 걷다 보면 온천장에서 찍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사진이 걸려있는데, 수학여행을 온 듯한 까까머리 학생들의 장난치는 모습이며, 뒤태만 드러낸 목욕 컷, 가볍게 걸친 유카타 차림의 사람들 모습이 온천마을의 소박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경단가게의 원조인 ‘쯔보야’에서도 <도련님>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소설 속 도련님이 빨간 수건을 들고 온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먹었던 경단가게의 모델이 된 곳. 정숙한 주인이 조용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 안에는 나쯔메 소세키의 사진과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이 곳에서 경단은 팥, 계란, 말차의 고물을 묻힌 단순한 떡이 아니라 <도련님>의 이야기가 빚어낸 특별한 떡으로 둔갑한다. 


도고온천 아케이드
나츠메 소세키 친필 사인


<도련님>을 커피로도 마셔보자. 위트있는 일러스트로 표현된 <도련님> 커피다. 이곳 시코쿠에서만 살 수 있는 드립백이라고 하니 가볍게 선물할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최고급 아라비카 원두가 아니더라도 <도련님>커피가 주는 향은 따로 있다. 대쪽 같은 성미의 도련님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향, 목소리가 크면 나댄다고 하고 점잖게 있으면 샌님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해주면 좋을지 궁리하게 하는 향. 
시코쿠 에히메 현에 가면 도련님과 우연히 마주칠 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걸어 나와 도고온천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도련님, 빨간 수건을 두르고 경단을 사먹고 있는 도련님. 봇짱 열차를 타고 있는 도련님, 위선을 입느니 발가벗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이 매력적인 남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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