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위의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곱씹을수록 명문장이다. 한 문장으로 인간의 생리를 녹여냈다. 최근에 이 문장이 다시 생각났다.
어느 스터디 모임에서였다. 피부결이 잘 정돈되어 있고 차분한 어조에 세련된 서울말을 쓰는 사십 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녀가 손목에 찬 여성용 롤렉스 시계와 각종 명품 액세서리가 그녀의 재력을 돋보이게 하는 듯했다. 모임에서 가장 연장자인 그녀는 본인을 화가라고 소개했다. 말수가 조금 많긴 했지만 나름대로 기품이 있었고 그녀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과 대화를 즐기는 듯했다. 나는 '화가'를 사석에서 처음 봤기 때문에 강렬한 호기심이 들었다.
그런데 두 번째 모임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이십 대에 출산한 딸이 얼마 전에 수능을 봤으며, 초등학생 아들이 있고 여섯 살 난 셋째도 있노라며, 결혼을 너무 일찍 했고 시어머니의 압박으로 아들을 보기 위해 아홉 번의 인공수정을 해야 했다고 말이다. 동기들은 작가로 잘 나갈 때, 자신의 커리어는 무너져 버렸다고 했다.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육아휴직을 한 내가 대단하다고 추켜세우며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도 그랬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연신 부러움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했다. 맞장구를 쳐주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기시감이 들었다. 그녀가 안타까우면서도 그녀의 불행한 서사가 모임의 공기를 잠식하자 불편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더 불편한 건 비슷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글쓰기 강좌에서 만난 강사도 그랬다. 그녀는 본인을 '등단 시인'이라고 소개했다. 검색을 해보니 진짜 '시인'이었다. 그녀는 첫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본인의 이력을 잘 나가는 '은행장 사모'에서 'IMF 때 정리해고당한 은행장 사모'로 소개하며, 본인의 가장 암울했던 가정사를 수업시간의 절반을 할애하며 쏟아냈다. 초면인 수강생들에게 말이다. 시인에게 일종의'환상'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날 많이 사라졌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어머니께서는 늘 어린 나를 앉혀 놓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는지 아버지의 가족들이 본인을 어떻게 대접했는지 너희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힘든지 틈만 나면 감정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것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일종의 '아들의 의무'인 셈인데, 요샌 나도 내 가정을 건사하느라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그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엄마', '불행한 서사', '일방적인 대화' 등이다. 이것이 한국 여성들에게 일어난 시대적인 상황인지 내게만 우연히 연속되는 경험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녀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얼마나 한이 됐으면 잘 모르는 사람에게 고통스럽고 내밀한 서사를 쏟아내고 싶을까? 불편하지만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나도 서사가 있다. 누구나 서사가 있다. 그게 위대한 스토리 일수도 있고 지질한 스토리 일수도 있다. 나도 술자리용 레퍼토리가 있었다. 군대 얘기, 회사 얘기, 가족 얘기 등. 서사는 듣기 좋게 각색, 편집되기도 하며 심지어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상대방이 그 서사를 별로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지적하기 전까지 몰랐다. 내가 술에 취해 과거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주절거리는 것과 그녀들의 일방적인 발산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냥 하고 싶은 말 하는 거다. 일종의 '해소 또는 치유행위'같은 것이다.
사석에서 말수가 점점 줄어든다. 특히 관계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더욱더 그렇다. 그들도 내가 일방적으로 주절거리는 것을 듣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궁금하면 먼저 물어보더라.
그런데 나도 '해소'는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술자리에서 브런치로 이사를 했다. 브런치에 이런저런 생각을 널어 놓는다. 준비되지 않은 상대에게 주절거릴 여지가 줄어든다. 내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넘기면 그만이다. 운이 좋으면 훌륭한 작가들이 '라이킷'과 '피드백'을 주기도 한다. 마치 내 주절거림을 들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한이 많은 그녀들의 '불행'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더라.
톨스토이가 맞다. 정말 명문장이다.
그렇다면 난 비슷한 이유로 반드시 행복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