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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완열 Aug 17. 2022

직장인의 노래방

땡뻘 기믹

기믹(gimmick), 관심을 끌기 위한 특별한 전략 또는 속임수, 술책 등을 의미한다. "magic"을 거꾸로한 애너그램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는데 기믹이 마술의 속임수, 트릭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나는 기믹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 좋아한다. 실명은 개그맨 김민수 이지만 기믹래퍼로도 활동한다. 쇼미더머니에 출연해 1차에 합격했으니 한편으로는 랩실력이 대단하기도 하다. 천연덕스럽게 본인의 랩네임은 '임플란트 키드' 라며 매직팬으로 어금니를 손등에그리고 문신이라고 우긴다. 시그니처 사운드라며 '석션 skrrr !!!' 외친다.(사운드가 실제로 치과에서 어금니를 석션하는 소리와 유사하다.)


웃기는 포인트는  발성과 성량이 좋아서 생각보다 랩을 잘한다는 것, 인기 있는 래퍼들의 '허세''자의식 과잉'있는 설정으로 그들을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이다.(그는 힙합 레이블 영 칠린더호미의 수장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런 레이블은 없다.)


이런 것들은 그의 기믹을 아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웃음코드다. 일종의 밈 문화인 것인데 마니아 층은 더 열광하고 추종한다.


나에게도 기믹이 있다. '옛날 트롯 노래를 사랑하는 젊은 직원' 기믹이다. 땡벌좌라고나 할까. 사실 나는 노래방이 정말 싫다.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신입시절 어촌마을 지사에 부임했을 때였다. 본부 높은 분들께서 사업소로 출장을 오셨으니 2차로 노래방에 모셔야 한다던 팀장이 있었다. 흥을 돋워야 한다며 노래 도우미를 부르셨는데,  나타난 도우미님들(?)을 보는 순간 나는 충격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뻘 되시는 어르신들이 오신 것이 아닌가. 그 어르신(?)들은 처음들어보는 걸쭉한 목소리로 엄청난 가창력을 뽐내며 "남행열차"같은 흥겨운 노래를 연신 뽑아냈다. 도우미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누가 누구의 흥을 돋우는지 모르는 충격적인 상황에 정말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2차가 끝나면 내차로 팀장님을 모셔다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회식도 싫고 노래방도 싫고 운전수 노릇도 싫고 나도 싫었다.


그 후 십 년간, 단 한 번도 내가 원해서 노래방을 가본 적이 없었다. 모두 타의에 의해서, 거절을 못해서 끌려갔다.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나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무슨 수로 인사권자 혹은 선배의 권유(강압)를 단호하게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었다. 그리고 스스로 기믹을 만들어 냈다. '그래 너네들이 그렇게 원하는 모습으로 시원하게 불러 드릴게' 라는 마음이랄까.


왜 인지 몰라도 우리회사 오십 대 이상의 일부 어르신들은 알 수 없는 노래방에 대한 집착이 있다. 갈비를 뜯으면 후식냉면을 먹어야 마무리가 되는 것처럼 질펀한 회식끝엔 후식 노래방으로 마무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내가 팀장이 되면 피할 수 있을줄 알았지만 착각 이었다. 오늘, 동료팀장의 강압에 못 이겨 결국 또 노래방에 끌려갔다. 직급은 같지만 나이가 무려 십오 년이나 넘게 차이나는 팀장은 지역유지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는 많은 업무를 그에게 배우고 있는 처지다. 타지에서 원만한 회사생활을 하고 싶었고 노래방을 향해 한껏 달아오른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결정적인 그의 한마디.


" 나 노래 좀 불러야겠는데 그쪽이 안 가면 많이 서운해? 같이 가야혀?"


그렇게 삼십 대, 오십 대 남성 두명으로 이루어진 희한한 조합으로 주구장창 노래를 불렀다. 다행히 도우미는 부르지 않았다.


" 요즘 노래 좀 불러 봐유, 난 칠갑산!"


'아니 칠갑산은 할머니 세대 노래 아닌가?'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내 안의 기믹가수 "땡뻘좌"를 소환한다. 그래 원한다면 시원하게 불러드릴께, 땡뻘, 남행열차, 모나리자 메들리를 들으세요'


"난 이제 지쳤어요 땡뻘!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뻘!"


"아니 젊은 사람이 이런 것도 알아? 허허 신나는구먼 요즘 거도 혀봐 요즘거는 못혀?"


네 어르신 땡뻘좌는 그런거 못합니다. 아니 안합니다. 요즘 거 부르면 뭐라고 할 거잖아요. 이젠 안 속아요.


오늘도 난 소리지른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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