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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유 Aug 14. 2022

모순된 위로

방송가의 무서운 격언

방송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어떻게든 방송은 나간다." 방송일이 다가오는데도 도무지 딱 맞는 아이템이 안 찾아지거나, 기껏 섭외한 아이템이 엎어지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더라도 방송이 펑크나는 일은 절대 없다는 격언이다.


방송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아찔한 방송사고의 위기. 당연히 나도 있었다. 그날은 서브작가로 입봉하고 첫 방송을 하는 날이었다. 나의 입봉작은 저녁 생방송 프로그램의 약 10분 분량의 꼭지였다. 방송 전날, 새벽까지 피디와 편집을 하고 내레이션 대본을 오후가 되어서야 마무리했다. 사실 이날 방송은 내 입봉작이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 첫방송 날이기도 했다. 다들 처음이라 우당탕탕이었다. 생방송까지 2시간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은 성우와 대본 리딩을 진행할 차례였다. 분명히 내가 대본인데 성우에게 사인을 주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심지어 최소 10년 이상의 베테랑 성우들에게 오늘 처음으로 대본을 써본 작가가 리드를 하는 꼴이니, 이제와 말하면 내 스스로도 아무렇지 않은 프로페셔널하는 척하는 내가 오글거리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오글거려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다. 연습따위 없는 실전 돌입이었다. 대본 리딩실에 들어가자마자 리딩을 진행하고 성우와 상의하여 기깍기를 맞추면서, 그렇게 대본 리딩을 나름대로 '무사히' 마쳤다. 다른 작가들의 차례도 모두 끝이 나고 드디어 생방송 시작 시간이 임박해서 스튜디오로 향했다. 무사한 알았다. 잠시 일어날 일은 꿈에도 모르고.


내 코너가 프로그램 순서 중 첫 번째였다. 방송 시작 전 출연진들이 보는 큰 모니터로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고가 끝나면 스튜디오 오프닝 멘트 없이 바로 내 코너부터 재생될 예정이었다. 나는 성우에게 큐 사인을 주기 위해 스튜디오 뒤쪽 놓인 작은 모니터 앞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담당 피디가 다급하게 뛰어와서는 "테이프 못 봤어요?"라고 물어보는 것 아닌가. 테이프? 테이프라면... 설마 방송용 테이프?



그 시절 추억의 VHS 테이프.



그 순간 얼음이 되어 이 사람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다. 대본 리딩실이 떠올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테이프를 본 곳. 설마 그곳에...? 나와 피디는 같은 생각을 한 듯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둘다 동시에 대본 리딩 장소로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대본 리딩 장소는 방송 스튜디오의 건너편에 있었다. 하필 두 곳은 붙어 있지 않고 공중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다리의 길이가 얼마나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50미터? 아니, 20미터 쯤 됐으려나...? 결코 짧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체코에 있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 못지 않게 느껴졌으니까.


한달음에 달려간 대본 리딩실에서 비디오 플레이어를 확인했다. 세상에, 거기에 진.짜.로. 방송용 테이프가 있었다. 대본 리딩은 다해놓고 정작 테이프를 아무도 안 챙긴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웃을 여유조차 없었다. 다음 난관은 테이프가 멈춘 위치였다. 비디오 테이프는 원하는 시점부터 재생하려면 반드시 되감기 또는 빨리감기를 해야만 한다. 테이프를 감는 시간이 실제 재생 속도보다는 빠르기는 해도 물리적인 시간을 어느 정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하필 멈춘 위치도 중간이었다. 맨 처음으로 테이프를 되감기 시작했다. 텅 빈 대본 리딩실, 적막함 사이로 위이이잉 테이프가 뒤로 돌아가는 소리가 공포영화 BGM 마냥 무섭기도 처음이었다. 생방송 시작까지 1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테이프를 다 감자마자 플레이어에서 꺼내들고 다시 영겁의 다리 위를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스튜디오에 간신히 도착해 성우 옆에 자리를 잡고 숨 고르기를 했다. 피디는 나선형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가 2층 부조실로 몸을 던졌다. 잠시 후 광고가 마무리되고 스탠바이 시작. 3, 2, 1. 내 VCR이 재생되었다.



ⓒ Photo by Joshua Hanson on Unsplash


어떻게든 방송은 나간다.


방송작가 시절, 나는 이 말이 참 싫었다. 입봉작 테이프 분실 사건은 사실상 준비가 허술해서 발생했던 작은 해프닝에 불과하다. 방송가에서 이 말은 실제로 훨씬 더 가혹한 상황에 사용된다. 방송 이틀 전까지 아이템이 없어서 밤 11시까지 찾아 다음 날 아침 촬영을 내보낸 적도 있고, 데이트 당일 갑자기 아이템이 엎어져 카페에서 서너시간을 아이템만 찾다가 빈손으로 집에 간 적도 있다. 쓰러져서 입원했는데도 방송날이 겹쳐 병실에서 원고를 쓰는 작가도 있고, 부모님 장례식장도 바로 못 가는 작가도 있다. 막내작가나 조연출은 '아픈 것도 잘못'이라는 말도 있다. "어떻게든 방송은 나간다"는 말이, 사람을 한낱 도구로만 취급하는 방송계의 세태를 동조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사람을 미칠 지경까지 밀어부쳐서라도 어떻게든 방송은 나간다"는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반대로 이 말이 고마운 적도 있었다는 것이다. 하하호호 웃다가도 아이템이나 촬영이 엎어지는, 한치 앞을 모르는 비상 상황에서 작가, 피디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쓰는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럴 땐 "괜찮아. 어떻게든 방송은 나가니까 잘 될 거야"처럼 긍정적으로 들렸다. 지금 이렇게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처럼 절박해도, 어김없이 방송은 나가니까.


퇴사를 한 지금, 새삼스레 그 문장이 내게 부적처럼 느껴진다. 그 문장을 "괜찮아.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가니까"로 치환해도 괜찮지 않을까? 퇴사 후 계획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때마다 마음 속으로 외친다. 괜찮아,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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