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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유 Aug 31. 2022

행복이라는 착각

퇴사를 하고 회사에 갔다

마지막 출근을 한지 이십여 일 만에 회사에 다시 갔다. 정확히 말하면 ‘동호회를 하러’ 회사에 갔다. 나의 X 회사는 직원들의 취미 활동 비용을 지원해주는 사내 동호회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아직 남은 연차를 소진하고 있던 기간이었던 나는 동호회에 참여할 자격이 되었고, 동호회가 열리는 날 회사에 가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나 금방이나 회사를 다시 가게 될 줄은 몰랐지만 우습게도 조금은 설렜다. 일이 아니라 동호회를 하러 회사에 가다니. 분명 이전과는 다른 출퇴근길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동호회 모임은 퇴근 시간 후 저녁에 열릴 예정이었다. 퇴근 시간을 피하기 위해 1시간 정도 일찍 회사 근처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회사까지는 천천히 걸으면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 남은 시간 동안 뭘하며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회사 방향 건너편에 있는 출구로 나왔다. 근린공원이 하나 있었다. 마침 백일홍이 만발한 공원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한산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회사 근처에서 느끼는 완전한 여유였다.


동호회 시간이 다가오자 책장을 덮고 회사 쪽으로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스포티파이에서 퍼렐 윌리암스의 <Happy>를 틀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총 서른 번이나 나오는 이 노래. 예상대로 나의 이상한 출근길은 내가 회사를 다닐 때 느끼던 것과는 달랐다. 나는 집을 향하는 직장인들의 거대한 물결을 거슬러 오르며 행복이라는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동료가 물었다. “행복하니?” 퇴사를 하고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진실의 미간을 시전하며 “어떡하죠…? 너무 행복해서.”라고 대답하고는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나, 정말 행복한 걸까?






내가 최근에 행복감을 느꼈던 건 언제였을까. 애착을 갖고 썼으나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서 아쉬운 글이 있었다. 그렇게 묻히나 싶었는데, 불과 며칠 뒤 갑자기 조회수가 급등했다. 알고 보니 브런치 메인에 글이 올랐던 것이다. 와, 내 글도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는구나! 신기하기도 하면서 벅찼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2년 넘게 운영해온 네이버 블로그의 일 조회수가 갑자기 폭등한 것이다. 일 평균 200명이 최대였는데 갑자기 1,000회가 넘은 날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날 TV에 내가 포스팅한 맛집이 출연해서 포털 검색량이 늘자 내 글도 덩달아 조회수가 폭발한 것이었다. 열심히 쓴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반응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블로거의 찐 행복인가 싶었던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랐을 때 깨달았다. 나 또 착각하고 있구나! 그렇게 다짐했으면서!


일을 하면서 더는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방송작가를 그만뒀다. 그 뒤로 몇 년간 실연 당한 사람처럼 살았다. 일이 아닌 나만의 시간이 충분해졌는데도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은 뻥 뚫린 기분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줄곧 방송작가만이 평생의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오로지 메인작가가 되는 날을 꿈꿨었다. 그 목표가 사라진 지금 나는 뭘 해야 할지, 그리고 꿈꿔야할지 막막했다. 종종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꿈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일이 되면 괴로워진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일대 감성 지능 센터장인 마크 브래킷 교수의 <감정의 발견>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책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정의하는 데 익숙치 않기 때문에 대인관계와 조직생활에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그 말은 즉, 내가 인식하고 있는 감정과 실제 감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 속에는 활력(Energy)과  쾌적함(Pleasantness)을 척도로 감정을 100가지로 구분한 표인 '무드 미터(Mood Meter)'가 제시되어 있었다. 무드 미터를 보면서 생각했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감정이 있는데, 어쩌면 내가 느낀 '행복' 자체가 착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 특정한 감정만 '행복'이라는 한 단어로 동일시하는것은 어리석은 일은 아닐까?


방송작가 시절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주로 '성취감'과 ‘인정 받는 느낌’을 받을 때얐다. 내가 찾은 아이템이 채택되고, 수십 번 전화한 끝에 출연자를 섭외하고, 내가 쓴 내레이션 원고가 방송되고, 엔딩 크레딧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일. 무수한 고통의 과정 끝에 이런 일들이 이뤄질 때 느끼는 희열을 '행복'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참을 만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느끼던 희열이라는 감정은 무뎌졌고, 더 높은 강도의 행복을 원하게 됐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 일을 그만뒀지만. 그 후에도 상실감이 이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방송을 만들면서 느꼈던 종류의 성취감을 다른 일터에서 찾기는 쉽지 않으니까.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성취감만이 '행복'이라는 착각을 반복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행복이라는 착각


그렇게 다짐했는데도 퇴사 후 회사를 가던 날, 브런치 글이 메인에 올랐던 날, 네이버 블로그 조회 수가 폭발했던 날, 나는 그게 진짜 '행복'이라는 착각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흐드러진 백일홍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느꼈던 여유와 평화로움, 그게 좋았다면 충분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일상을 곱씹어보고 나만의 의미를 발견했다면 충분하다. 블로그 포스팅으로 하루를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했다면 충분하다. 그 이상 뭘 더 바란단 말인가.

 

최연소로 반 클라이번 콩쿨에서 우승한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제 실력이 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속 연습을 하겠습니다.”


맞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고 그의 실력이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쓴 글이 우연히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내 글 실력이 늘어난 것은 아닌 것처럼.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쓰는 동안 내 삶이 전보다 더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충분히 행복한 순간들이다.



회사 가는 날 들렀던 인근 공원. 흐드러진 백일홍 빛깔이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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