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연한 출발 Dec 11. 2022

진실한 삶의 태도를 제시하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리뷰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존 키츠의 소극적 수용력[성급하게 증명하려 들거나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 않고, 불확실하거나 놀랍거나 회의적인 상태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 영향을 받았다.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을 앞두고 배우들이 대본에 쓰인 대사를 연습하던 중이었는데 현장에는 베케트도 참석해 있었다. 그런데 배우들이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베케트에게 몰려들어 물었다. 

"이 대사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어떤 의미인가요?"

그러자 베케트가  대답했다. 

대본에 적힌 대로 말하면 됩니다.

그 상태로 어떻게든 리허설을 진행했지만, 배우들의 표정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고 다시 배우들이 물었다.

"말씀하시는 뜻은 알겠지만, 결국 이 대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베케트의 답은 앞서 마찬가지로 '대본에 적힌 대로 말하라'라는 것이었다.

 바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서 가후쿠가 배우들과 모여 연극 바냐 아저씨의 리허설을 하던 중에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를 하면 좋을지 묻고 가후쿠는 특별히 무엇을 할 필요가 없고 그저 대본에 쓰인 대로 읽으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과 같다. 작품은 다르지만 베케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가후쿠에게도(감독이자 작가인 하마구치 류스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소극적 수용력을 설명할 수 있는 대사들은 후반부 가후쿠와 미사키의 대화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미사키의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과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던 어머니에게는 이중인격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폭력적인 어머니의 이면에는 친절하고 따듯한 또 다른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이중인격이라 여겼지만 폭력성을 가진 어머니로 판단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리고 미사키는 말한다. 

"가후쿠씨는 오토 씨의 그 모든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가요? 가후쿠 씨를 사랑한다는 것과 다른 남자를 갈망한다는 것도 거기엔 어떤 거짓이나 모순은 없는 것 같은데요?"

영화 속에서 가후쿠는 시종일관 자신의 아내가 작품을 같이 했던 남자들과 외도를 저지르고 심지어 자신의 집에서 낯선 남자와 관계를 하는 모습을 본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며 원망한다. 오토(가후쿠의 아내)가 남편인 가후쿠를 사랑하는 한편 다른 남자를 갈망해 잠자리를 가져왔었다는 사실은 쉽게 용서하거나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사키는 그 두 가지 모습 사이에 거짓이나 모순은 없었다고 말한다. 바로 소극적 수용력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미사키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편을 들지 않는다.

 난 깊이 상처받아야만 했어. 계속 못 본 척했어.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지 못했어. 그래서 오토를 잃었어. 영원히. 그걸 지금 알았어. 만나면 화를 내고 책망하고 싶어. 나에게 거짓말 한 걸 사과하라고 말하고 싶어. 내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더 강하지 못했던 걸. 오토가 보고 싶어. 하지만 이젠 늦었어. 되돌리지 못해(가후쿠).


 앞뒤 두 문장만을 붙여서 보면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할 말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이는 마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한다. 서로 어긋나고 성립되지 않는 어떤 특정한 의미로의 거부한다. 관객은 각자 내면에서 벌어지는 감각을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면 된다. 

 또 한 사례로 가후쿠는 다카츠키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토는 날 사랑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신했지 우린......"

사랑하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배신한다는 것. 인간의 이중적이고 복잡하고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모습이다.

 셰익스피어는 희곡 <맥베스>에서 말한다. 

"좋은 것도 나쁘게 변하고 나쁜 것도 알고 보면 좋은 것이다(Foul is fair and fair is foul)."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원작이다. 영화 속에는 희곡 <바냐 아저씨> <고도를 기다리며>가 소재로 쓰이는데 특히 <바냐 아저씨>는 영화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극의 곳곳을 채워주는 희곡의 대사들부터 전체적인 주제부를 구성하는 등 뼈대 역할을 한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은 영화가 소설을 각색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들이 추가됐다. 아내 오토가 가후쿠와 다른 남성들과 잠자리를 가질 때 만들어냈던 야마다 이야기는 감독이 창작해 낸 이야기다. 가후쿠가 바냐 아저씨를 연기하는 무대에 선 것은 맞지만 영화 속에서 가후쿠는 연출을 위해 간 도시에서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극단에서 만나게 된 이유나, 윤수 부부, 재니스 창, 류종의 등은 모두 만들어진 인물이다. 소설에서 다카쓰키는 40대 미중년이지만 영화 속 다카츠키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아주 어린 잘생긴 배우다. 다카쓰키의 성격은 비슷하지만 직접적으로 폭력적이라는 설정은 만들어졌다. 오토가 죽은 이유는 자궁암이지만 영화에선 급작스러운 뇌졸중으로 나온다. 영화 속에선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것을 직접 목격하지만 소설에선 감으로 알게 됐다.


 희곡 <바냐 아저씨>의 작가 체호프는 작품에서 구성과 문체, 주인공,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래서 삶의 한 단면, 한 상황을 미완결의 구조 속에 녹여낼 뿐만 아니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체호프는 일상적 삶을 사는 평범한 주인공들을 통해, 소외되고 주변부로 밀려난 주인공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형상화한다. 

 바냐는 자신이 헌신하고 존경하고 노력했던 사실들에 배신당한다. 그가 그동안 믿어왔던 것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고 사랑마저 잃게 된다. 가후쿠 또한 그동안 사랑이라고 믿었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갖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며 자신의 과거를 부정당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바냐 아저씨는 자신의 감정에 매우 솔직하며 자신의 사랑을 진심으로 숨기지 않고 고백한다. 거절당하더라도 말이다. 반면 가후쿠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다. 상처받고 충분히 아파했어야 할 자신의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덮어두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극 <바냐 아저씨>에서 바냐 역을 연기하지 못한다. 체호프의 희곡들이 그에게 정면으로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차 안에서 아내의 무감정한 목소리로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매일 같이 듣지만 그것뿐이다. 

 사랑을 잃은 바냐와 가후쿠. 희곡 <바냐 아저씨>는 1897년에 발간됐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가후쿠는 바냐가 되고 이유나는 소냐가 되면서 현대와 과거의 인물들이 하나로 합쳐져 큰 시너지를 발산한다. 엔딩 장면에서 바냐를 연기하는 가후쿠는 이반의 환생이면서 가후쿠 본인이기도 하다. 소냐를 연기하는 이유나는 1897년의 소냐이면서 동시에 청각 장애를 갖고 살아가는 이유나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침묵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희곡의 <바냐 아저씨>는 대사들로 가득 차 있다. 인물들의 감정이 고조될수록 인물들의 대사는 많아지고 극의 템포는 빨라진다. 이반의 분노는 태풍이 몰아치듯 독자들을 압도한다. 영화 속 가후쿠도 마찬가지다. 미사키가 과거에 살던 집을 찾아 자신이 외면해 왔던 자신의 감정들을 정면으로 마주했어야 한다고 후회하는 가후쿠의 대사는 감정적이고 무겁다. 그리고 두 작품의 다음 장면은 모두 침묵으로 구성된다. <바냐 아저씨>에선 모두가 떠나고 난 뒤 소냐와 둘만 남은 공간이 침묵의 여백으로 가득 차 있다. 대사 수가 극히 줄어들면서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엔딩 장면은 더욱 침묵의 효과가 극대화됐는데 청각 장애인인 이유나는 소냐를 연기하며 수어를 사용한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수어를 사용하는 인물을 설정한 동시에 영화 자체에서 사운드를 제거해 버린다. 극장 안은 완벽한 침묵의 공간으로 변하게 된다. 침묵이 관객에게 주는 감정의 변화와 집중력은 체호프가 소냐의 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희곡의 주제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관객들은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며 치유된다. 가후쿠는 회피형 애착 유형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아내 오토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당시 최대한 회피하려고 했고 결국 그는 아내에게 진실을 물어볼 수도, 자신의 상처받은 내면을 치료받을 수도 없게 됐다. 그렇게 그는 괜찮은 듯했지만 상처받은 내면을 갖고 살아간다. 심리학에서 회피형 애착 유형이 가져야 할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입을 닫고 내면의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최대한 자신의 기분을 상대에게 설명하고 표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영화 속에서 가후쿠가 여러 사건을 겪으며, 미사키를 만나며 자연스럽게 겪게 된 치유 방법이었다. 그는 살아 있었다면 자신의 죽은 딸과 동갑인 미사키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진솔하게 모두 털어놓는다. 그리고 연극 <바냐 아저씨>에서 바냐를 연기하며 자신의 곪았던 속마음을 예술로 치유하는 과정을 거친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내면에 가후쿠와 같은 상처가 있었던 평범한 관객들이 현실에서 가후쿠와 같은 경험을 하기는 힘들다. 가후쿠는 유명했던 배우이며 능력 있는 연출자이기 때문이다. 승화를 할 수 있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관객은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감독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그는 인간 내면의 치유에 관심을 갖고 있고 관객들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을 통해 치유받는다.


개봉: 2021/ 12/ 23
재개봉: 2022/ 12/ 22
장르: 드라마/ 일본 / 179분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주연: 니시지마 히데토시(가후쿠 역), 미우라 토코(미사키 역), 오카다 마사키(다카츠키 역), 키리시마 레이카(오토 역), 박유림(이유나 역), 진대연(공윤수 역), 소냐 위엔(재니스 창 역), 안휘태(류종의 역)
작가의 이전글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그리는 삶과 생존에 관한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