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 결말 해석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도시의 생존 방식과 시골 마을의 생존 방식을 교차시킨다. 이를 한 단계 더 확장하면 인간과 자연의 생존 방식이 되기도 한다. 선과 악은 인간의 기준으로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만들어낸 정의다. 대자연속에서 인간은 윤리와 도덕 기준이 없다면 무질서해지기 때문이다. 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것은 자연법칙이지만, 그런 자연 현상에서 상류에 사는 사람들의 행동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준이다. 그런 태도가 없다면 역시 인간의 이기심이 서로를 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자연과 자연과 공존하려는 인간 그리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상을 표현한다. 인간은 사슴을 사냥하고 사슴은 총에 맞아 다치거나 죽고 방치된다. 자본가인 연예기획사 사장은 시골 마을에 글램핑장을 건설해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산불로 자연을 헤칠 수도 있는 결정을 마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 밀어붙이려고 한다. 영화 내내 상류로 상징되는 분류는 책임감 없는 태도로 일관한다. 이는 인간의 기준에서 어느 한쪽이 희생당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암시한다. 그리고 그 희생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된다. 타카하시의 태도 변화 동기는 도시 생활에서의 권태감과 장작 패기를 성공하는데서 느끼는 가벼운 일탈감 그리고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가장 쉬운 선택지 정도였기 때문에 자연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인물이 된다.
타카하시는 타쿠미에 의해 공격받는다. 하지만 앞서 타카하시가 자연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인물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는 결말의 해석과 연결된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결말은 현실이 아니라 상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힌다. 감독은 타쿠미 부녀를 야생 사슴 가족으로 상징화한다. 타쿠미는 개척이주 3세대로 이 마을에 뿌리 깊은 삶을 지닌 인물로 소개되며 글램핑장을 건설하려는 두 직원에게 균형과 공존을 강조한다. 타쿠미는 천연수가 필요한 식당에 직접 물을 길어 주는 역할을 자처한다. 자연과 가장 가깝고 그것을 직접 다루는 인물이다. 딸 하나는 하교 후 또래 친구들과 놀기보다 어른들이 말하는 ‘혼자 다니면 위험한 곳’을 자유롭게 누비며 자연 속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타쿠미는 하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야생 사슴들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며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타쿠미의 일명 픽업 건망증은 자연에는 없는 인간의 규칙이기 때문에 낯설기 때문이며, 딸 하나도 크게 여의치 않아 한다. 타쿠미가 상징하는 바는 하라사와 마을 주민들과 오랫동안 공존해 온 야생 사슴 같은 역할로 볼 수 있다. 야생 사슴은 겁이 많아 먼저 다가오거나 공격하지 않지만 예외가 있다면 총에 빗맞았거나 총에 맞아 죽은 사슴의 엄마 아빠일 것이라는 타쿠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실종 됐던 하나를 발견할 때 총에 맞은 사슴과 그 곁을 지키는 성체 사슴이 함께 보인다. 사슴의 총에 맞은 동그란 핏자국은 하나의 코피를 쏟은 코로 대치되고 자식이 공격받은 사슴은 인간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이는 하나에게 뛰어가려던 타카하시를 공격한 타쿠미의 동기가 된다. “글램핑장이 건설되면 야생 사슴들은 어디로 가죠?”라고 물었던 미즈유미의 물음에 타쿠미는 침묵한다. 하나를 업은 타쿠미는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운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우리는 그들의 목적지를 알 수 없다. 이렇게 타쿠미와 야생 사슴을 절묘하게 상징화한 감독은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한층 신화적인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전작 <드라이브 마이카>2021에서 가후쿠는 자신을 사랑했고 배신 한 아내를 이해하려 했기 때문에 고통받았고, 아내 오토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때 영화는 끝난다. 이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요구되는 태도이기도 하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이분법적인 한쪽의 승리보다 균형과 조화를 이야기한다. 감독은 신중하게 도끼를 내려 찍어 단숨에 장작을 패는 것과 같이 단호한 결말을 통해 영화의 균형을 완성한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주연: 오미카 히토시(타쿠미 역), 니시카와 료(하나 역),
코사카 류(타카하시 역), 시부타니 아야카(마유즈미 역)
장르: 드라마/ 일본/ 106분
개봉: 2024.03.27
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