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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 Jan 11. 2023

다름과 틀림사이

위로는 생각보다 사소한 것으로부터


집에서 버스를 타면 5분 만에 지하철역에 도착한다. 걸어가긴 애매하고 차를 타면 금방인 거리. 버스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도 없는 지하철역 계단을 하나 둘 세며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다. 시간은 없는데 지하철은 들어오고 행여 놓칠세라 느릿한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려고 애쓰니, 앗! 큰일 날 뻔했다. 반박자 빠르게 움직이다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 아주 큰 망신을 당할 뻔했다. 이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다.


다행히도 지하철을 타는 데 성공했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4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은 움직일 필요 없이 목적지까지 이동한다. 그동안 숨을 고르고, 바깥풍경도 보고, 과제는 언제 하나 생각하면서 여느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대학생처럼 학교를 간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1년, 계단이 유독 더 버거워졌다. 요즘 같은 세상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이라니 학교를 갈 때마다 집에서 출발하는 방향의 지하철역을 마주 보고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지하철을 타러 갈 땐 계단이 내려가는 거지만, 집에 올 땐 올라와야 하는 역 계단이 그야말로 나에겐 지옥의 계단 같다. 남들보다 느리고 더디지만 오른발 왼발 번갈아가며 한 칸씩 계단을 오른다. 빠르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느린 건 틀린 게 아니니까, 속도가 단지 느릴 뿐이지.’


평소에 다니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던 말이다. 주문 같기도 하고 최면 같기도 한 말. 내가 느리다고 해서 그게 틀린 건 아니니까. 단지 빠르게 지나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문득 떠오른 것이 다름과 틀림이었다. 다소 뜬금없지만 시험을 많이 틀려도 그렇게 화는 안 났다. (이런 건 좀 화가 나둬야 하는데..) 분명한 건 공부머리는 아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면서도 조금 씁쓸한 순간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된 후 차를 운전해 학교를 다녔다. 세상에 이렇게 편할 수가. 무거운 전공책을 들지 않고 차에 싣고 운전만 하면 학교언덕도 가뿐히 다닐 수 있었다. 친구들을 지하철역에 데려다주기도 하고, 커피를 사서 차에 타서는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적도 많았다. 움직이지 않고 함께 앉아있으니, 누가 빠르고 느리고 생각하지 않아도 됐고 내 걸음이 늦어 친구들보다 뒤처짐을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할 것 없이 그 순간만큼은 그저 서로의 말에 집중하면 됐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걸음 속도는 더 느려졌다. 출퇴근하는 직장을 힘겹게 다닌 기간이 1년 반 정도였다. 이후에는 출퇴근이 힘들어지면서 재택근무를 알아보고 일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외출은 줄어들었다.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 필요할 때 움직이고 그 외에는 집순이로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머리엔 까치집이 생기고 부스스하니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책상에 앉아 일을 했다.


밖으로 다니는 걸음이 서서히 어려워졌다. 건물 계단을 오르내릴 때 양발로 아닌 한 발씩 올라간다. 그 덕에 속도는 더 느려졌다. 예전에 돌아다닐 땐 그냥 보고 지나치던 휠체어가 어느 날부터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언젠간 저 휠체어를 타는 날이 올 것만 같았다. 이건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순간 울컥함이 올라왔다. 움직임이 불편한 건 남들과 조금 다르고 느릴 뿐이지라고 생각했던 내가 막상 휠체어를 탄다고 생각하니 조금 다른 게 아니라 틀린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잘못한 건 없는데 잘못한 느낌.’,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어느 나라가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나는,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를 하고 내가 느린 것이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지각할 것 같으면 헐레벌떡 뛰어가고, 눈앞에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별 것 아닌 사소함에 대해 남들처럼 생활하는 평범함을 동경하면서 말이다. 


서서히 달라지는 몸에 적응을 하면서 다름과 틀림 사이의 혼란 속에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은 이런 내 모습이 틀렸다고 생각하며 풀이 죽었다가도,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거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금세 풀려버리면서 스스로 잘했다고 다독인다.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어떤 모습이든 그저 조금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라고,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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