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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Feb 11. 2023

입국

Road to Iraq (3)


오후 두 시 반. 우린 이라크 땅을 밟았다. 이라크는 내 예상과는 많이, 너무나 많이 달랐다.


  나에게는 어떤 고질적인 악습 같은 게 있다. 혼자서 나만의 이상(理想)을 만들어낸다. 주변 사람들이나 인터넷에서 떠드는 이야기의 단면만을 듣고, 혹은 그런 설명 없이 생각만으로 가상의 이미지를 그리기 시작한다. 상당히 구체적으로 공사한다. 성급한 고정관념을 자세하게, 머리에 깊게 박는 것이다. 여행이라면 이 악습은 달콤한 로망을 만들어내지만 그게 아닌 보통의 경우라면 허황된 기대를 품게 만든다.

  글쟁이로서는 이 악습이 축복처럼 느껴졌다가도 어쩔 때는 원망스러운 저주 같기도 하다. 이라크도 그랬다. 출처가 불분명한 배경 설정 아래 나도 모르는 사이 '이라크는 분명히 이럴 것이다!' 하는 색안경을 머릿속에 두르고 이라크 땅에 발을 디뎠다. 이라크는 모래가 즐비한 사막이어야 했다. 성경 속에 등장하는 광야 혹은 우리가 상상하는 낙타가 거니는 그런 척박하고 물이 없는 땅 말이다. 배고픈 독수리가 대머리가 보이도록 고개 숙여 먹잇감을 찾고 그 아래엔 짙은 녹색의 선인장이 사람 키보다 훨씬 높게 그 가시를 자랑하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배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연히 채집과 수렵으로 획득했을 여러 종류의 열매나 나물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얻어낸 중동다운 향신료를 먹으며 지낼 것이었다. 우리가 먹고 마시며 일할 장소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비포장도로 위에 생겨난 기적 같은 고대의 시설일 것이며 우리는 매일 아침 셔틀버스를 타고 광야를 향해 떠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모래로 만들어진 건물들은 옅거나 어두운 외벽에 둘러싸여 있고 정제되고 절제된 건축기술이 녹아든 곳은 기껏해야 정부 건물이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만들어낸 이라크라는 인간의 숲은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은 단 한 군데, 온 나라가 평평한 땅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나는 비겁한 안도감과 실망을 한꺼번에 면할 수 있었을 텐데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다(안심되어 좋은 것보다 안심한다는 사실이 곧 내 기대와 반대되기 때문이라는 게 싫었다). 이라크는 번듯한 하나의 국가였다. 심지어 십여 년 전까지는 중동의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석유 시추가 한창인 엄연한 산유국이다. 나는 무엇을 상상하고 여기까지 온 걸까. 천 한 번째 아라비안 나이트라도 기대했던 걸까.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하고 핸드폰의 비행기모드를 풀자마자 여러 개의 문자가 연이어 소리를 울리며 도착했다. 요란한 경고였다. 외교부라는 머리말과 금지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 문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가히 충격적으로 전달해 줬다. 우리는 이라크에 오기 전에 외교부에 이라크 입국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예외적 여권사용을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고 관련된 서약서에 서명도 했다. 회사에서 관련 내용을 교육했을 때는 가볍게 넘겼었는데, 막상 문자가 오니 거품이 가득 꼈던 이라크에 대한 기대가 그 포말을 모두 벗고 불안이라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내가 이라크라는 단어를 어느 정도 무색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내 입으로 이라크를 열댓 번 뱉고 난 뒤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의 결정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 이라크라는 세 글자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몇 초간 표정을 굳혔다. 특히 나와 가까운 사이일수록 귀를 의심하고 내게 되물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괜찮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웃음을 지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살면서 이라크를 걱정 없이 바라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지구 반대편에 우리끼리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당신과 나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건 결국 충격적인 소식들 뿐이었으니까. 이제 그 충격을 코앞에서 마주하자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의 걱정 어린 마음을 나조차도 너무 잘 알고 느끼기 때문에 내가 더욱 열심히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외교부의 문자를 받고 나니, 무색해진 줄 알았던 이라크에 대한 불안감이 한순간에 다시 색을 찾았다. 웃음기도 사라졌다. 더 강한 다짐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성장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히려 잘 지내고 얼굴도 좋아 보인다면 부모님이 걱정을 조금 덜으실 테니까.
 


  내가 이런 다짐을 다시 되새기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곳에서 발목을 붙잡히게 됐다. 비자였다(우리나라 말로는 ‘사증’이라고 한다는 걸 이번에 검색하고 나서야 알았다). 비자를 받으려면 정해진 문서를 작성하고 한 사람당 77달러를 내야 했다. 우리는 미리 작성해 온 서류와 비용을 모아 한번에 제출했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 준비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비자는 한 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발급되었다.

  우리가 공항 입국심사장에서 비자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우리 일행만 있었던 곳이 얼마 안 가 이라크에게 외국인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중국인들과 미국인지 유럽인지 모를 사람들, 그리고 국적 모를 아랍계 외국인들이 서로 펜을 주고받으며 정신없이 서성였다. 나는 그 사이에서 일행과 함께 짐을 지키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지는 해가 심사장 입구 너머로 햇볕을 강하게 내리쬐기 시작했을 때 비자 발급 장소 바로 옆에서 한 아랍계 남자가 공항 직원에게 다가갔다. 검은 모자를 쓰고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키가 큰 남자는 두툼한 가방을 멘 채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다. 그 둘은 작게 이야기를 나누더니 곧 얼마인지 모를 지폐를 주고받았다. 공항 직원은 곧장 심사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시야에서 사라진 지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다시 나타났다. 아랍계 남자는 그와 악수를 나누고 그를 따라 심사장을 통과해 유유히 사라졌다.

  이걸 보고 우리는 이것이 뇌물인가 아닌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빠르게 이뤄진 일이기도 했지만 우리를 포함한 주변의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내버려 두고 있다는 것도 역시 낯설었다. 너무 대놓고 일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처리돼도 되나.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이니까 그래도 되나.



직업 특성상 작업장 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대신 작업장에 있는 고양이 사진이라도 올린다.

  우리는 입국심사장을 지나 그 많은 회사짐과 개인짐을 챙겨 우리를 기다리던 경호업체의 이라크인 직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반겨주며 우리를 차까지 안내했다. 듣던 대로 방탄 처리된 경호 차량이었다. 우리는 이 차량으로 우리가 묵을 호텔과 일할 작업장을 매일 오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의 생활반경의 처음과 끝이 정해진 셈이었다. 호텔, 셔틀, 직장의 굴레에 비로소 몸이 담기게 된 것이다. 물론 안전을 위한 선택이었다.

공항에서 셔틀에 탄 그 순간은 나의 자유를 불에 태워 안전이라는 따뜻함을 얻어낸 시점이었다. 큰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온기를 어떻게든 누리리라 다짐하며 우리는 차량에 탑승해 호텔이 아닌 작업장으로 갔다. 이미 이라크에 와서 일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 그들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공기는 차갑다기보단 냉정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얼굴을 반기는 사람들과 일에 지쳐 퇴근 차를 반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다. 마치 치밀하게 연출된 이야기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 하나. 모두 같은 사막색의 옷차림, 뿌연 먼지 너머 구석구석에서 하나둘씩 컨테이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 우리를 지나치며 환영한다고 인사하고 가버리는 사람과 멀리서 팔짱 끼고 웃으며 지켜보는 아저씨. 곧 선글라스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무리가 우리를 마주 보며 형성되고 우리는 누가 봐도 이방인인 듯 멀뚱멀뚱 그들과 그들 뒤의 배경을 정신없이 훑어보는 모습. 세계가 종말 비슷하게 흘러갈 때 겨우 살아갈 방법을 찾은 어느 나라의 어느 지역에 마침내 새로운 생존자들이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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