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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Feb 25. 2023

일 (1)


  누군가가 내게 와서 당신은 누구인가 묻는다면 나는 나의 이름을 대답한다. 그리고 나의 표면을 간단히 덧붙인다. 나의 대답을 듣고 아직 다른 누군가에게 나를 안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이야기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내게 묻는다면 성격과 가치관을 조금 꺼내어 보인다. 어떤 사람인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결정하니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가 묻는다면 지금 머릿속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을 말한다. 그것이 내가 눈을 뜨고 감기 전까지 일생에 가장 많이 기여하고 있는 나의 ‘일’이다.


  이라크에 도착한 지 3주가 넘어갈 때 즈음 내가 하는 일이 어느 정도 나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나서 그 일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것은 그것대로 엄청난 불운이라는 것도 타당한 말이다. 지난 시간 동안 퇴근하고 나서도 업무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점차 완전한 혼돈을 갖춰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을 바로잡고자 하는 본능에 못 이겨 스스로 질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여기 마구잡이로 적어대는 글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마음을 짜내어 집중한다는 건 커피에 물을 한 방울도 안 넣어 놓고 ‘마신다’는 잘못된 행위를 하려는 것만 같았다. 특히나 가장 뜨거운 물이 필요한 끄적임이나 독서는 이런 상황에서는 최악의 취미였다. 멀리서 보면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나 쉽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것에 욕심이 커질수록 그것은 말 그대로 일보다 더한 몰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나의 악취미에 대해 기록하기엔 아직 그것들은 완전한 일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지금의 일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남기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기록에 욕심을 붙이고 있었기에 “잘됐다! 멋진 시구가 떠오를 판이다!”하며 글을 쓴다는 다른 작자들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업무에 치이는 이 시간이 아주 조금은 더 지속돼도 괜찮지 않을까 착각도 했다. 오히려 잘 됐으니 멋진 시구라도 떠오르지 않을까 하며.


미군의 전투기 정비사들 / 사진 출처: U. S. Air Force photo


  나는 지난 8년간 공군에서 전투기 정비사로 일했다. 국방의 의무를 이렇게 졌다. 그리고 지금 이라크에 와서 비슷한 일을 잠시 하게 된 상황이다. 내가 담당했던 분야,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정비에 관한 것을 이라크 공군의 정비사들에게 알려주는 일종의 교육자로 일하러 왔다.


  자동차보다는 일반 비행기가, 일반 비행기보다는 전투기가 더 복잡하다. 전투기는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그 속에는 일반 비행기보다 더 많은 기능을 품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많은 기능을 품어야만 한다. 작고 날렵한 모양새를 유지한 채로 적기(敵機)보다 더 좋은 성능으로 그들을 격추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그래서 전투기는 한때 유행했던 ‘문명의 이기’라는 표현에 가장 잘 어울린다. 기계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공 분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기에, 특히 전쟁을 겪으면서 전투기의 필요성이 대두되며 많은 돈이 전투기 발전에 흘러들어 갔기에 그렇다. 그 결과물이 지금도 우리 머리 위에서 전쟁 억제를 위해 힘쓰고 있는 공군의 전투기다.

  그래서 이 비싼 고철 덩어리를 고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회색빛 껍데기 안쪽을 보면 철골 구조 사이로 복잡하게 얽힌 전선들이 가득 차있다. 다른 어딘가에서는 붉은 기름이 흐르고 또 어딘가에선 차갑고 뜨거운 공기가 흐른다. 껍데기와 골격에서마저 나름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복잡하고 넓은 분야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인류의 유구한 해결책을 전투기 정비에도 적용했다. 우린 분업을 한다. 전문 분야를 나눈 뒤, 좁고 깊게 자신의 분야를 파헤친다. 그러면 우리는 각자 정해진 방에서 생활하는 개미처럼 본연의 책임에 전념한다.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개미처럼 보이지만 우린 분명히 서로 다른 일을 한다. 나는 가까이에서 보면 항공전자Avionics라 불리는 분야에서 일하는 개미였고 더 가까이 와서 보면 전투기 레이더Radar와 조종석에 있는 화면들Display을 고치는 개미였다. 요즘에는 자동차에도 적용되는 HUD 기능도 내 담당이었다. 나는 내 분야의 경험 있고 자격 있는 개미로서 이라크의 새로운 개미들에게 이것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고치는지 알려주러 이곳에  왔다.


  정비에는 단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사는 더욱 높은 단계의 정비 자격을 갖춘다. 시험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고 시간에 따라 자연히 승급하는 경우도 있다. 정비를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은 가장 아래 단계부터 시작한다. 내가 교육할 이라크의 개미들은 모두 경험이 일절 없는 신입 개미들이었다. 그래서 이 개미들에게는 기초적인, 기본적인 훈련이 필요했다.

  내가 한국공군에서 일했을 때 부서에 새로운 개미가 오면 직접 했던 교육이 있다. 작업장에서의 안전, 공구 및 장비 사용법, 매뉴얼 읽는 법 등 실무를 위한 기본적인 교육이다. 이것 말고도 한국공군의 개미 교육시설에서 이뤄지는 종합 이론/실습 교육이 있다. 일개미로서 본인의 정비 분야에 대한 이론을 배우고 약간의 실습을 통해 전투기와 첫 대면을 한다. 나도 신입 개미였을 때 받았던 교육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교육하는 교관 개미로 이곳에 왔다.


호텔 내부, 비즈니스 룸


  내가 이라크에 입국한 날. 바그다드 공항에서 작업장으로 가서 사람들과 낯선 웃음을 주고받은 뒤 함께 호텔에 도착한 날. 골방을 생각하며 잠에 빠진 그날. 그날은 주말의 바로 전날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일행은 주말 동안 어느 정도 시차에 적응하고 몸의 피로를 녹일 수 있었다. 주말은 빠르게 흘러갔다. 음식과 잠자리도 해결해야 할 적응 과제에 포함시켜야겠다고 결심했고, 온전한 쉼을 위해서는 의도를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따가운 경험도 했다. 하지만 첫 주말은 사실 쉼보단 업무 준비에 바빴던 기억이 더 크다.

  첫 출근하는 날, 그러니까 그 주말이 지난 첫날에 바로 수업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가져온 교보재와 문구류를 정리하고 미처 못 챙긴 서류들의 제본을 했다. 수업에 쓰일 수업자료를 검토하고 수정할 부분을 한가득 찾아냈다. 우리는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쉬지 않고 호텔 비즈니스룸을 들락거렸다. 몸이 수업 준비에 매진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어느새 잘 못해내면 어쩌지란 걱정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어렸을 때 교편을 잡고 싶다는 꿈을 잠시 꿨던 적이 있다. 매주 다른 장래희망을 적어 냈던 그 시절의 꿈꾸는 소년은 그새 비행기를 고치다가 과거의 빛을 다시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빛이 빚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이라크에 오기 전에 크고 작은 교육을 몇 번 진행해 본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 형식으로 수업 아닌 수업을 했다. 부서에 새로운 개미가 올 때마다 교육자의 역할이 된 것과 더불어,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다른 동료 군인들에게 영어 수업을 했던 적도 있다. 군대가 아닌 사적인 모임에서도 교사의 역할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교육생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썼지만 만점짜리 선생님이 되진 못했다. 스스로에 거는 기대와 기준이 높아서 만족스럽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은 실제 사실보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 더 사실 같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에도 걱정이 된 것 같다.


  이번에 그 걱정을 더해주는 커다란 장애물이 덩그러니 하나 놓여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 장애물을 처음부터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결코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수업이 지구 반대편 이라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우리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그 장애물이었다. 이라크 개미들은 이라크어, 그러니까 아랍어를 사용한다. 나와 같은 한국 개미들은 한국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로 소통한다고 전해 들었다. 양국 개미들의 모국어가 모두 영어가 아니다 보니 영어 실력이 원어민 수준일 필요는 없었다. 상대 개미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하면 되었다. 그런 면에서 개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온몸을 활용하는 상황이라고 들었다. 상대방의 눈을 주시하면서 단어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 경청을 실천한다니. 언어를 넘어서, 오히려 언어를 이유로 진정한 소통을 추구하게 되는 것인가 생각하니 그런대로 흥미로웠다.

  ‘정비를 어떻게 하는지’와 같이 실제 업무를 알려줄 때는 온몸을 활용해서, 손짓과 몸짓을 사용해서, 부족한 부분은 매뉴얼에 나와 있는 영어를 활용해서 수업을 이끌어나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성이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해 발화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교육은 이렇게 진행됐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몇 명은 조금 달랐다. 교실에서 앉아있는 교육생들에게 수업을 하러 온 것이었다. 이 장애물은 조금 더 높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을 위해 노력해 온 건 결코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내게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것 중엔 영어가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영어를 공부해 오면서 회화에 자신이 붙어 있었다. 전역하기 전에 군대에서 외국인 정비 기술자들과 협업할 때 비공식적인 작은 미팅에서는 통역을, 평소엔 기술 자료 번역을 담당했었다. 전역 전 마지막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퇴근 후 개인 공부시간이 아닌 대낮 업무 시간에 영어를 쓰는 시간이 현저히 늘어나면서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특히 정비 영어를 꽤 배울 수 있었다. 이 경험이 수업을 준비할 때 크게 도움이 됐다. 우리는 수업을 준비하면서 매뉴얼과 교본에 나와 있는 영어 문장을 외우고 표현을 익혔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그래, 교사이기 이전에 먼저 한 명의 학생이 되어 다시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좀 더 좋은 수업이 될 테니까. 그래서 주말은 빠르게 흘러갔다.

  영어로 수업을 한다는 건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수업 준비 과정부터 수업이 끝나는 순간까지 나 역시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한층 성장할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했다. 나이 본연의 일에 전혀 집중하지 못할 만큼이나 많이. 그래서 내가 요즘 하는 나의 '일'이 더 업무 쪽으로 고개를 튼 것이다.


첫 수업 후 찍은 사진


  다행히 수업은 잘 이루어졌다. 한 달이 지나면서 이미 첫 번째 과정이 수료를 마쳤고 곧 두 번째 과정이 입과한다. 자세히 후술하겠지만 이번에 교육생들과 인격적으로 가까워지면서 느껴본 적 없는 보람을 느껴봤다. 과거에는 미국 개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 개미들에게 교육을 해줬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비행기를 구매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술을 배운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전투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그 결과로 내가 이곳에 올 수 있게 됐다. 감회가 새롭다. 군인으로 일할 때는 반복되는 쳇바퀴 때문인지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지금보다 덜했던 것 같다. 이곳에서는 소매에 태극기가 사라졌는데도 그때보다 더 뿌듯하다. 책임감을 느낀다. 군대에 있을 때보다 더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행복에 가까워졌다고는 아직 말 못 하겠지만 조금은 불행과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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