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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Oct 03. 2021

청소에 진심인 남자

시공간 김도현 대표를 만나다

1982년 애리조나의 한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일반 대여점과는 조금 다른 광경이 연출되곤 했다. 고객들이 한 아르바이트생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 긴 줄이 생겼던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던 16세의 아르바이트생에게 고객들이 원했던 것은 '영화 추천'이었다. 그가 추천해주는 영화는 백발백중이었다. 고객들은 아르바이트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재미있는 비디오를 고를 수 있었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를 추천받기 원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비디오 대여점 안에 긴 줄이 생기곤 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은 테드 사란도스이다. 그의 부모는 10대에 테드를 출산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지내는 경우가 많았고, 할머니와 함께 비디오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공부에 흥미가 없었던 그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비디오 대여 체인점에 입사하여 총책임자로 일하게 된다. 이후 비디오 유통회사의 중역을 맡아 일을 하다가 2000년 넷플릭스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0년 7월, 그는 넷플릭스의 공동 CEO가 된다.


아르바이트생 시절 이후 넷플릭스의 공동 CEO가 되기까지 그가 보여준 능력은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아내는 것이었다. 아르바이트생 시절 그는 고객들이 봤던 비디오를 바탕으로 직감적으로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했다. 비디오 대여 체인점과 비디오 유통회사에서는 어떤 비디오가 고객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인가를 정확히 예측하여 비디오의 재고 확보 등에 활용했을 것이다. 이것은 경쟁사에 비해 효율적인 경영을 가능하게 하고, 이익률을 높이는 핵심 요소이었을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은 스타트업에게 있어 성패를 결정하는 요소이다. 스타트업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을 고객들이 원할 것이라는 '가설'을 가지고 제품을 개발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가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다. 문제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제품 개발을 완료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한 이후에야 자신들이 개발한 제품이 '고객이 원하지 않는 제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깨닫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이 '린스타트업'이라는 책을 쓴 에릭 리스이다. 그는 자신의 창업경험을 통해서 스타트업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기 위한 '학습'이라고 말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학습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 보통은 제품의 핵심기능만 구현한 최소 기능 제품(MVP, Minimum Viable Product)을 만들어서 고객의 피드백을 받게 된다. 중요한 것은 MVP는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이며 고객의 피드백 이후에 다시 개선해서 반복적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비용을 적게 들이고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Food on the table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로소는 '주간 식단 제공 및 식료품점 연결 서비스'를 창업 아이템으로 구상하면서 학습을 위해 컨시어지 서비스(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주당 9.95달러를 지불하는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일했다. 주간 식사 계획을 세워주고, 그 고객 주변 식료품 가게들을 방문해 식재료 정보를 알아낸 다음 고객에게 알려주고, 고객이 원하는 요리의 조리법을 배워 제공했다. 이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학습'하고, 고객이 원하는 것으로 어떻게 시스템화(소프트웨어,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 등)할지도 구상할 수 있었다.    


최근에 창업상담을 하면서 시공간 김도현 대표를 만났다. 그의 창업 아이템은 '정리 정돈 서비스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그가 '정리 정돈 서비스'를 창업아이템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의 아내가 추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소 청소를 좋아하는 김도현 대표에게 '딱 맞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의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정리 정돈 서비스' 사업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니, 이견이 없이 모두들 "잘 어울린다", "잘 될 것 같다"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창업 아이템을 선정한 이후에 그는 '정리 정돈 서비스'와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서 그가 살고 있는 지역(시흥시 배곧)의 커뮤니티에 '정리 정돈 무료 이벤트' 공지를 냈다고 한다. 정리 정돈 서비스를 무료로 실행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무료라지만 낮시간에 남자 혼자서 가정으로 방문해서 정리정돈 서비스를 실행하겠다고 하면 다른 의도가 있을지 경계를 할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급적 자세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공지에 '정리정돈 서비스 창업을 준비하는 44세의 남자이고, 배곧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이며, 원하시면 신원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보내줄 수 있다'는 내용들도 포함했다고 한다. 이후 예상보다 많은 34명의 신청자가 있었고, 이 중 개인 사정과 코로나의 영향으로 서비스를 취소한 신청자를 제외하고 20명에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한 가구당 약 3시간 정도씩 무료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그의 노력이 놀라웠다.


사실 그는 '정리 정돈 서비스' 사업을 시작하기 전, 건설용 장비 등을 제조하는 외국계 회사의 한국지사에 근무했다고 한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자원공학과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는 B2B 기술영업을 했던 그에게 '정리 정돈 서비스'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였다. 그와 상담을 하면서 "전공이나 경력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창업 아이템도 한편으로는 계속 고민하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리 정돈 서비스'의 노동 강도가 꽤 높아 구인을 하기 힘들고, 기존 업체들이 최저 가격 경쟁을 하고 있는 등 사업 환경이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플랫폼이 활성화되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Food on the table 창업가가 가졌던 그 열정으로 한 고객, 한 고객에게 정성을 다했을 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그가 꼭 '정리정돈 서비스 플랫폼' 사업에서 성공하기를 응원하게 된다. 그가 20명의 무료 고객을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던 '학습'의 과정들이 그가 서비스를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큰 힘이 되고 그를 성공으로 이끌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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