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넷플릭스는 국내에서 매달 한편씩 텐트폴 시리즈를 공개하며 전세계에서 큰 화제들을 만들어냈다. 고요의 바다는 넷플릭스가 올해 화려했던 국내 라인업을 마무리 짓는 작품으로 국내에서 보기 힘든 SF 스릴러를 표방하며 기대를 모았다. 국내에서 처음 보는 달 배경의 영화, 화려한 배우 라인업, 배우 정우성의 제작참여 등은 이 작품에 기대감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작품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꽤 있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주의: 스토리텔링 상의 문제점을 언급하려면 스포일러가 불가피합니다. 이하에서는 스포일러가 곳곳에 등장할 예정이니,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께서는 이하 내용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고요의 바다는 이전 넷플릭스 국내 오리지널처럼 국내 영상 콘텐츠 스토리텔링의 지평을 넓혔다. 국내 드라마와 영화를 통틀어 달 탐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전무하다.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미스터리물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지 못한 장르이다. 우주라는 배경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이며, 한정된 공간(우주선 내부)에서 한정된 인원(소수의 탐사대원)들이 등장한다는 특수한 상황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특수한 배경은 미스테리 물 특유의 긴장감을 만들어내기가 용이하다. 고요의 바다는 이러한 우주적 특성을 이용해 정치이야기를 미스터리물의 형태로 풀어내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미장셴이다. 국내에서 달을 배경으로 한 첫 작품인데 이 정도의 미장셴을 만들어 낸 것은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달 표면에서의 움직임, 기지의 외관 등은 훌륭했다. 특히, 달 표면의 명암을 구현해 진짜 달 기지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었다. 작품의 주 배경이된 발해 기지 내부 구현도 좋았다. 미로처럼 설계된 기지 내부, 월수를 보관하던 벽면, 통제실 내부와 홀로그램으로 구현되는 내부 지도 등은 훌륭했다. SF에서 미장셴의 역할은 회면에 등장하는 비현실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관객이 실제라고 믿을 수 있게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작품에서의 미장셴은 일단 그 역할을 충분히 잘해냈다고 생각한다.
극의 기본 설정도 좋았다. 물이 고갈된 지구, 물을 찾아 달에 건설한 발해기지에서 극비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특정 조건에서 계속해서 증식하는 물인 ’월수(月水)‘를 찾아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 아이템인 ’월수‘의 설정은 정말 좋다. 물 부족 상황과 이를 해결할 타개책을 달에 존재하는 특수한 물에서 찾는다는 설정, 이 월수가 인간의 혈액과 결합할때 계속해서 증식한다는 설정이 정말 좋다. 너무 흔해서 우리가 쉽게 그 가치를 잊는 '물'의 부족이 어떤 재앙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할때 또 어떤 위협이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설정이었다. 또한, 이곳에서 연구에 동원된 복제인간에게 에일리언과 같은 괴생명체의 역할을 부여하여 스릴러물의 형태로 풀어간 것은 훌륭한 설정이다. 이러한 기본 설정은 2014년 동명의 원작에서 나왔는데, 배우 정우성은 이때 작품을 보고 언젠가 장편화를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런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정우성의 마음을 움직인게 아닐까 싶다.
고요의 바다 단편 원작
좋은 점이 많았지만 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단점도 많다. 먼저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지루하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많은 이들이 얘기하는 만큼 큰 지루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지도 이해가 됐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미스테리물을 표방했으면 긴장감을 확 끌어올리는 방식을 연출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극에서 연출된 서스펜스의 수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대원들을 위협하던 괴생명체인 ’루나‘가 결국은 보호되어야 할 불쌍한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 때문이었을 수도 신인 감독으로서 역량의 부족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작품이 참고를 많이 했다고 하는 에일리언에서와 같은 긴장감은 주지 못했다. 사실 ’루나‘를 직접 대원을 죽이거나 해할 필요없이 맥거핀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뒤의 설정을 위해 더욱 현명한 방법이었을텐데 감독은 그런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서스펜스와 드라마 사이에서 감독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였다. 결국 이러한 애매한 스탠스 때문에 뜨뜨 미지근한 작품이 되어버린것 같다.
또한, 개연성에 심각한 오류가 등장한다는 문제가 있다. 중요한 부분에 대한 설명을 누락함으로써 스토리 뼈대를 이루는 중요한 사건의 개연성을 무너트린다. 이 극은 우리나라 정부가 달에서 찾은 ’월수‘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기 위해 비밀로 실험을 하고 이 과정에서 저질러진 비윤리적 행위를 은폐하기 위해 해당 연구원들을 모두 살해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후 연구결과와 샘플을 가져오기 위해 정부가 연구가 진행되었던 달 기지로 여러 대원들을 보낸다는 것이 기본적인 스토리 설정이다. 정부는 대부분의 대원들에게 발해기지가 방사능 유출로 폐쇄되었다는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하고 샘플만 찾아오도록 명령한다.
나는 이런 스토리 구조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먼저, 정부가 갑자기 그 많은 연구인력들을 기지에 가두고 몰살한 이유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극에서는 정부가 복제인간을 통한 실험을 감추고 싶어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설명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이 사건의 크기에 비해 너무 간단한 이유이다. 국제사회가 이런 사실에 대해 조사가 들어오고 있다거나 그런 배경 설명 하나 없이 그냥 감추고 싶었다는 설명 하나로 이 많은 고급 인력들을 몰살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된다. 그리고 기지를 폐쇄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월수와 연구 데이터를 우선 확보하고 난 이후에야 실행하는건 상식적인 일 일텐데 정부는 이 간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5년 뒤에야 인력들을 다시 달에 보내 월수를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5년전에 연구를 급박하게 정리하고 기지를 폐쇄해야만 했던 이유가 설득력있게 설명이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서 극을 지탱하는 스토리 라인의 뼈대가 흔들려 버린다.
기초 아이디어가 훌륭했지만 이를 장편으로 극화하는 솜씨가 다소 아쉽다. 단편은 아이디어로만 승부해도 호평을 받을 수 있지만 장편, 그것도 45분짜리 8편짜리 시리즈 물에서는 캐릭터 구축, 인물간 관계, 사건 및 에피소드들의 유기적인 연계 등 신경써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 고요의 바다는 이런 부분에서 부족함을 드러냈다. 아마 이 작품이 첫 장편극이었던 감독의 역량 탓이 아닐까 예측해본다.
전체적으로 부족함이 많았지만 그래도 뿌듯한 측면이 있다. 우리가 그 동안 쌓아왔던 콘텐츠 역량이 거대 자본을 만나며 그 지평을 넓히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극에서 다루는 소재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VFX 기술도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고요의 바다‘는 지적한대로 여러 가지 한계가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이 국내 영화와 드라마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족적‘을 남긴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완의 시도였지만 ’고요의 바다‘가 시도한 일은 의미있는 일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국내 콘텐츠가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