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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Feb 05. 2022

지금 우리 학교는-절비와 같은 반쪽짜리 학교문제 보고서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만 지금 우리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이 설 연휴 시즌에 맞춰 공개되었다. 공개와 동시에 전세계 1위를 찍으며 달아오른 기대감에 부합하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의 좀비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2016년 제작된 “부산행” 이전만 하더라도 좀비물은 우리나라에서 만들 수 없는 장르로 여겨졌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우리나라에서 좀비물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인 2009년에 만들어진 웹툰으로 연재 당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국내에서 좀비물이 제작되기 훨씬 이전에 나온 작품은 국내에서 좀비물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2022년 실사화되었다. 약 10여년이 지난 이후 영상화된 이 작품은 그간 우리가 겪었던 여러 사건을 은유하는 내용들을 삽입해 각색하여 2022년판 좀비 아포칼립스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지금이야 좀비가 블록버스터 오락 영화의 소재로 많이 소비되지만 원래 좀비는 그 시대상황을 이야기하는 도구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좀비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조지 로메로는 1978년 작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에서 백화점으로 모여드는 좀비들을 통해 당시 소비를 조장하는 문화가 극을 달리던 미국의 소비문화와 인간성 말살을 비판했다. 좀비는 설정 자체가 인간과 우리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이다. 끝없이 식인을 한다는 설정은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고, 주변에 같이 있던 이가 금새 나를 위협하는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설정은 신자유주의 아래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다. “지우학”은 우리가 처음으로 경쟁을 시작하는 작은 계급 사회인 학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거의 대부분을 끌어와 작품 속에 넣어놓았다. 이러한 부분은 이 작품을 빛나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 작품의 결정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2020년에 쓴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좀비는 재난의 원인인가 결과인가‘라는 재미있는 질문을 하며 이것이 서사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많은 좀비물들은 좀비가 탄생한 원인을 보여주지 않은 채,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나타난 좀비들이 재난 상황을 만드는 설정으로 영화가 전개된다. 이 경우 좀비는 재난이 발생한 원인이 되며, 이 재난 상황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다. 그러나, 최근 국내에 등장한 몇몇 좀비물들은 좀비 탄생의 원인을 설명하며, 이를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의식으로 삼고 있다. “부산행”에서 좀비가 창궐한 원인은 불건전한 바이오 회사를 증권맨인 주인공이 작전으로 억지로 살렸기 때문이다. 좀비 발생의 원인을 자본가의 탐욕으로 지목하고 이후에 만든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에서 이 바이러스가 서울역에 내평겨쳐진 노숙자에서 시작해 엄청난 재앙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킹덤”은 정치인의 권력에 대한 탐욕을 좀비 창궐의 원인으로 그리고 있다. 이미 죽어버린 왕을 자신의 딸이 후계자를 출산할때까지 살려놓기 위해 억지로 좀비로 만들어놓고 이 좀비가 권력의 공간 한양에서 가장 먼 지역인 부산 동래 지역의 하층민부터 감염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좀비 창궐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그릴 때 좀비는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의 결과가 되고 해당 작품은 우리 사회의 병폐들을 고발하는 깊이 있는 텍스트로서 기능할 수 있다.     


지우학은 작품속에서 사회 문제를 고발하려는 시도를 다채롭게 하고 있다. 먼저, 좀비 창궐의 원인을 원작과 바꿔 이를 통해 학폭 문제를 고발하려 시도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자녀의 학폭 문제를 기존 체제에서 해결하지 못한 부모가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만든 분노 촉진 약물을 좀비 탄생의 원인으로 설정하였다. 원작의 경우 한 학생이 동해 바다에 놀러갔다가 괴생명체에게 물린 것이 원인이었으나 영상화 과정에서 설정을 일부러 이렇게 바꾼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 사회의식을 더욱 투영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에피소드 1은 학폭 문제에 집중한다. 첫 장면도 한 건물 옥상에서 폭행을 당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으며, 같은 에피소드 중반부쯤에도 학폭 가해자의 악랄함과 피해자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시퀀스를 넣었다. 작품 속에서는 학폭의 원인을 힘있는 부모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교내 학교폭력위원회의 탓을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나약한 피해자의 탓을 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는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는데 이는 이 정글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살아남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말하면, 어차피 시스템은 망가졌으니 알아서 자신의 의지로 각자도생 해야한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다. 학폭 문제의 원인을 피해자의 나약함에서 찾는 방식은 현실을 살아가는 개인으로서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다소 위험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외에도 지우학에서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등장한다. 여고생의 출산, 임대아파트 학생에 대한 차별, 주먹 순위로 갈리는 학생들 간의 계급 문제, 외부 평가에만 관심을 쏟는 교장, 자극적 콘텐츠에 집착하는 유튜버와 구독자들 등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그 본질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저 피상적으로만 소모되고 만다. 그래서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만든다. 예를 들면, 오징어 게임은 경쟁과 낙오에 관한 이야기, 지옥은 “믿음”에 관한 이야기 등으로 축약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이런 문제들을 관통하는 주제가 없는 것 같다. 굳이 하나로 축약하자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반부에는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대사와 이미지들이 다수 등장한다. 원작이 연재된 2009년과 영상화가 이루어진 2022년 사이에는 세월호라는 큰 사건이 존재했다. 학교에서 벌어진 재앙을 소재로 한 작품을 각색하며 세월호는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슈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수많은 학생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진 큰 파장은 여전히 완전히 지워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러 오지 않는 어른,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는 대사, 아빠가 매어 놓은 노란 리본이 인도하는 생존의 길 등등은 너무 당연하게도 세월호 사건을 상징한다. 세월호가 발생한 원인과 당시 어른들이 아이들을 구하지 못한 이유를 조금 더 구조적이고 디테일하게 다루었으면, 세월호 사건과 이 좀비 재난 사건 간의 단단한 링크를 만들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한채 그저 그 이미지를 차용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다양하게 등장하는 사회 문제들은 각각의 시청자가 자신이 보고 싶은 문제들을 작품 속에서 발견하게 하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작품이 산만해지고 주제 의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과하게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작품이 상당히 길어졌다(제작비 등의 문제로 애초에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지우학은 꽉찬 1시간짜리 에피소드 12편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킹덤(6편), 오징어 게임(9편), 마이네임(8편), 지옥(6편), 고요의 바다(8편)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다. 오락적 재미가 있어서 끝까지 보게되지만 다 보고나면 결국 지치고야 만다. 넷플릭스 시청시간이 역대급으로 나왔다고 하는데 이는 긴 에피소드의 영향도 클 것이다.


사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관통하는 본질은 계급이다. 약자는 굴복하거나 무시당하고 강자는 군림하는 곳. 오늘날 우리 사회라는 정글이 돌아가는 양태가 가장 원초적 형태로 나타나는 곳이 학교이다. 성적, 주먹, 부모님의 재력 등으로 계급이 나뉘는 오늘날 우리 학교의 모습은 사실 좀비가 출현하기 가장 좋은 공간이다. 내가 살기위해 친구를 이겨야하는 곳, 생존을 위해 언제나 다수 무리에 끼여야만 하는 곳, 그것이 “지금 우리 학교”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좀비를 통해 지금 우리 학교의 민낯을 보고 싶었지만 지금 우리 학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표피만 본 것이 무엇보다 가장 아쉽다. 극속에 등장하는 절비처럼 반쪽짜리를 본듯한 느낌, 분명히 재미있게 봤는데도 계속 찜찜한 느낌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인하는게 아닌가 싶다.



참고: *신형철(2020.08.10). 좀비 서사의 윤리적 고민, 경향신문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00810030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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