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에서부터 '길복순'까지
97년 '접속' 개봉당시 짝사랑에 가슴아파하는 전도연의 모습을 보고 난 그녀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1998년 에어로스미스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Good bye’를 메인 테마로 한 ‘약속’을 보고 이 아름다운 여성을 사랑해 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해에 개봉한 ‘내 마음의 풍금’은 앞선 두 작품들과 전혀 다른 지점으로 향했는데, 이 작품에서 맡은 '홍연' 역은 그 당시 전도연 외에는 그 어느누구도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같은해 홍연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바람난 유부녀를 연기한 '해피엔드'에서 전도연은 파격적인 변신을 했다. 이 충격적인 연기를 보며 나는 전도연을 아름다운 배우에서 진짜 연기자로서 인지하기 시작했다. 전도연은 97년 접속으로 영화에 데뷔한지 불과 2년만에 전혀 다른 4명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큰 배우로 성장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도연은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매 작품에서 기존에 연기한 캐릭터를 배반하고 전혀 다른 역할과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내 여배우 중에 이렇게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는 찾아볼 수 없다. 전도연의 외형적 조건은 사실 한계가 많다. 얼굴은 어려보이고 목소리는 얇은 톤에 좀 나쁘게 말하면 앵앵거리는 목소리로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맡기에는 한계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악조건을 딛고 전도연은 상당히 다채로운 배역을 맡아 그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소화해왔다. 밀양을 통해 칸에서 수상하기 직전까지 전도연은 거침이 없었다.
흔히 우리가 전도연을 칸의 여왕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전도연이 직접 언급했던 것처럼 그녀의 향후 행보에 제약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녀는 예전처럼 다양한 작품들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탓이었는지 그녀는 이후 작품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 만큼 우리는 그녀를 통해 새로운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나오기까지 밀양에 이어 무려 3년이 걸렸다. 그 다음 작품으로 인상 깊었던 작품이 2015년 개봉한 '무뢰한'이었다. '무뢰한'은 근래 전도연이 연기한 모든 캐릭터 중에 가히 최고였다. 살인자와 형사 사이에서 이용당하는 술집 마담 ‘김혜경’역을 맡아 상당히 넓은 감정적 진폭을 연기했다. 영화는 그다지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이 작품을 전도연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하던 전도연이 또 우리 앞에 나타난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다. 이 작품의 캐릭터는 상당히 많았는데 이 중에서 전도연은 가히 도드라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윤여정, 정우성, 배성우 등 이 작품의 출연진은 정말 초호화였는데 이 작품이 전도연을 위한 작품으로 느껴지게 한건 그녀의 연기력 때문이었다.
그리고 올해 그녀는 50이 넘은 나이에 로맨틱 코미디를 통해 TV에 나타났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상대배우 정경호와 '일타스캔들'을 통해 아줌마 로맨스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대중적으로 크게 소구하면서 17%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 그리고 그녀는 처음으로 OTT로 무대를 옮겨 강력한 액션을 선보인다. 너는 내 운명에서 절절하게 사랑했던 황정민과 대결하는 첫 시퀀스에 등장한 그녀는 꽤 능청스럽고 독특한 연기와 액션을 선보였다. 길복순은 공개 첫날 국내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에 올라섰으며, 글로벌 차트에서는 3위에 올라섰다.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 그녀의 작품이 짧은 시차를 두고 모두 크게 흥행했다. 한동안 드문드문 작품을 하던 그녀가 배우로 본격적으로 도약하던 1999년의 ‘내 마음의 풍금’과 ‘해피엔드’ 당시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선보이며 모두 흥행했다. 이는 드디어 전도연이 올해를 기점으로 칸의 여왕의 굴레를 완전히 벗고 다시 한번 도약할 것인지 기대하게 한다. 올해를 기점으로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칸의 여왕 전도연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 전도연으로 늘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