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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May 25. 2024

환대하는 사회



이번 출장은 교육 출장이다.


Multilingual Approaches to Research Studies라는 워크샵에 참석하러 왔다.


다양한 인종, 여러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미국에서 영어말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미국 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고 그 비율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도 인구의 10퍼센트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진행되는 많은 연구가 영어구사 여부를 연구 참가자격 요건으로 두거나 혹은 통역이나 번역 등 언어와 관련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많은 국가에서 이민자에게 언어는 보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는데 큰 장애물이 된다. 특히 병원에 가기 위해서 예약을 해야하고 보험 시스템이 복잡한 미국에서는 더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보다 보건 의료 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들고 건강도 대체로 더 안 좋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로만 연구나 조사를 수행하게 되면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필요에 대해서는 알기가 힘들다.


필요에 대해 알지 못하면 필요에 맞는 사업을 기획하는 일도 요원해진다.


이번에 내가 참석한 교육에서는 영어를 제외한 언어를 구사하는 연구참여자들과 연구를 수행할 때 고려해야할 다양한 관점과 요소에 대해 배우고 나눴다.


첫째 날에는 통역사와 함께 연구를 수행할 때 주의해야하는 요소들, 연구에 대한 지역사회의 관점, 지역사회 및 주민을 연구에 참여시키는 방법과 유익에 대해 나눴다.


실제로 수십년 간 통역을 해온 전문 통역사와 함께 통역 실습도 했다. (통역을 할 때 유의해야하는 요소들이 담긴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둘째 날에는 번역에 대해 배웠다.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번역 프로토콜, AI를 활용한 번역 및 유의해야할 점에 대해 나누고 cognitive interviews 과정과 다언어 연구 예산 수립에 있어서 고려해야할 점에 대해서 배웠다.


마지막 날에는 다언어(multilingual) 연구참여자 모집, 여러 윤리적 고려사항, 인구학적 정보 수집 (인종 등), 다언어 연구를 위한 펀딩, 다문화/다언어 연구참여자와 연구를 수행할 때 표본 추출(sampling) 및 측정에 있어서 고려해야할 점 등에 대해 나눴다.


세션 자체도 유익하고 흥미로웠지만 이민자 보건 이슈를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네트워킹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


이민자/난민 보건 연구를 하면서 여러 면에서 미국은 한국보다 앞서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민의 역사가 길고 그 규모가 크다보니 다문화/다언어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가 비교적 높고 영어 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여러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있다.


직접적인 차별만 차별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인 제약으로 인해 보건 교육 등 각종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것 또한 차별로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영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통역을 제공하는 것을 의무로 하고 있다.


서울대 박사 과정에 계신 분들과 함께 미국과 한국의 난민에 대한 정책 및 제도, 인식 등을 비교하는 사례연구를 진행하면서 작년 한국에 거주하는 난민들을 인터뷰했다.


여러 난민여성이 히잡(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 때문에 구직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만 해도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막상 히잡을 쓴 모습을 보면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통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렇게 직접적인 차별이 만연한 한국에서 언어의 한계로 정부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을 차별로 규정하는 광의의 차별은 아직 너무나도 먼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도 점차 변할 것이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줄어든 인구를, 유럽에서 그러했듯이 이민자들이 채우기 시작할 거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민자들의 인권, 건강격차, 차별 이슈가 대두될 것이다.


언젠가 한 번 아빠와 대화를 하다가 한국 내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왜 한국인과 동일한 임금을 줘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아빠가 말했다.


“만약 우리 학교에서 나랑 남편한테 ‘너는 한국에서 왔으니까 너는 월급 적게 받아’라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아빠 딸이랑 사위도 미국에선 외노자예요.“


내가 말하자 아빠가 우물쭈물 말을 넘겼다.


한국 밖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한국 재외동포 수는 70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찾아온 이웃과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국민, 재외동포가 다른 나라에서 제대로 대접받기를 바랄 수 있을까.


여러 면에서 한국의 미래를 살고 있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면서 배운 것들을 잘 내 것으로 만들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품고 환대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그게 내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민자로서 받은 환대에 보답하는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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