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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n 04. 2024

논문 쓰기에 관하여

연구의 초입에 들어선 초보 연구자들을 위한 글



현재 포닥 과정에 있고 아직 연구자로서는 새파란 신입이지만,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논문 쓰기가 막막한 학생들을 위해 논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보건/의료 분야에서 연구를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쓴 내용임을 감안해 주세요.)



1.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


연구 주제는 무궁무진합니다.


- 1차 자료: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고 그것을 분석해서 논문을 쓸 수도 있지만, 가용한 2차 자료를 활용해서 논문을 쓸 수도 있습니다.


- 2차 자료:


미국의 경우 국가차원에서 진행하는 굉장히 큰 규모의 연구나 surveillance 성격의 조사가 많이 수행되고 있고 그 데이터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NHANES, BRFSS 등).  


그 외에 공적 자금으로 수행된 연구들 (미국 국립보건원 NIH 등의 펀딩으로 수행된 연구)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다 공개하도록 추세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지 않더라도 분석 가능한 데이터 세트가 굉장히 많아지고 있습니다.


국제보건 분야로 한정해서 보자면 Demographic and Health Survey (DHS) 같은 데이터 세트도 있는데 코드북도 상세하게 되어있고 이미 데이터 세트도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어 분석에 용이합니다.


- 다른 논문: 심지어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해 이미 출판된 논문도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기존에 출판된 논문을 바탕으로 정리를 하거나 그 질을 검증하거나, 여러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어떠한 인터밴션의 효과성을 양적으로 분석하는 연구(scoping review, systematic review, meta analysis 등)도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가 될 수 있습니다.


- 연구자로서의 경험


그 외 분야마다 다르지만, 연구자로서 겪은 고충이나 실패도 좋은 논문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결측값 처리하는 데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과 이를 처리하는 과정, 인터뷰를 수행할 때 연구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연구 참가자에 관한 경험, 연구 도구를 다양한 인구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 등 그 주제는 무궁무진합니다.


모든 것이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는 마음가짐과 눈을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하고 면밀하게 기록하면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겪는 동료 연구자에게 큰 도움을 주고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겠습니다.


2. 언제 쓸 것인가?


저는 박사과정 중에 일 저자로 세 편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공동저자로 논문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만, 일 저자 그리고 교신저자로 논문을 투고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저널 양식에 맞게 논문을 가공하고, 커버레터를 설득력 있게 작성하고 리뷰어의 피드백에 지혜롭게 대응하는 과정을 몇 번 겪고 나자 그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논문을 몇 편 출판하고 나면 그때부터 논문 리뷰 요청이 들어옵니다. 다른 논문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여러 편 보면서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다 보면 논문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됩니다.


또 그 눈은 내가 내 논문을 쓰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박사과정 때 논문을 쓰면 좋은 점 중 하나는 지도교수님과 멘토 해주는 다양한 교수님들에게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단 박사를 받고 나면, 학생 때처럼 세심하고 자세한 피드백을 받기가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교수 입장에서도 학생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보다 동료 박사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기 때문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학생 때 논문을 일 저자/교신저자로 투고하게 되면 게재료가 보통 더 쌉니다.


저널의 게재료는 무척 비쌉니다.


물론 무료인 곳도 있지만, 보건 의료 분야에는 이름난 저널 가운데 게재료가 비싼 곳도 많습니다. (보건 의료 분야에서 저명한 Lancet의 경우 게재료가 800만 원에 달합니다.)


많은 저널들이 명시하진 않지만, 현재 학생이고 큰 펀딩이 없다는 사실을 기록한 레터를 보내면 많게는 전액, 적게는 10-20퍼센트까지 게재료를 할인해 줍니다.


그래서 여러 이유로, 가급적이면 학생일 때, 최대한 빨리 일 저자/교신저자로 논문을 쓰는 경험을 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3. 논문 출판 과정


- 목표 저널 정하기


Impact factor도 중요하지만 돈이 부족한 연구자에게는 게재료가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학계에 몸담고 있는 교수, 연구자, 학생의 경우 소속 학교와 제휴를 맺어 할인을 제공해 주는 저널이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면 좋습니다.


제가 소속된 대학에서는 할인을 제공해 주는 저널의 목록을 명시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투고한 논문은 제휴를 통해 게재료가 면제되는 저널을 중심으로 투고하였습니다.


그 외 초록을 입력하면 '핏'이 맞는 저널을 추천해 주는 사이트도 있는데 (예: https://jane.biosemantics.org/) 요즘엔 챗GPT에게 물어도 잘 알려줍니다.


초록을 입력한 뒤, 저널을 추천해 주고 impact factor와 게재료도 함께 표로 만들어서 알려달라고 하면 깔끔한 표를 만들어줍니다.


(그 정보가 항상 100퍼센트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기에 저널명을 바탕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재확인이 필요합니다.)


- 목표 저널에 맞게 내 논문 가공하기


논문 단어 수가 3000자 미만인 곳도 있고 단어 수 제한이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논문을 쓰기 전부터 목표 저널을 정하면 가장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논문 구조는 Introduction, methods, results, discussion/conclusion 정도로 정형화되어 있지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소하게는 introduction 대신에 background라는 단어를 쓰는 곳도 있고 구조가 아예 다른 곳도 있습니다.


요구하는 reference 포맷도 다 다릅니다. (reference manager를 사용하면 쉽게 변환할 수 있지만, 저널 가운데 독자적인 reference style을 가지고 있는 곳도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구조화된 초록을 선호하는 저널이 있는가 하면, 구조 없이 줄글로 쓴 초록을 선호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 저널의 투고 가이드(submission guideline)를 참고하여 논문을 수정해야 합니다.


특히 보건/의료분야의 경우 연구 디자인에 따라 따라야 하는 보고가이드라인(reporting guideline)이 있습니다 (https://www.equator-network.org/reporting-guidelines/coreq/).


(Randomized trial의 경우 CONSORT, systematic review/scoping review는 PRISMA, 질적 연구의 경우 COREQ이나 SRQR 등)  


저널에 따라 해당 가이드라인의 체크리스트를 첨부하고 각 항목이 내 논문의 몇 번째 줄에 나오는지를 표시하라고 엄격하게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데이터 수집을 이미 다 끝낸 상태인데 보고 가이드라인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서 해당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았을 경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체크리스트를 요구하든 요구하지 않든, 연구 설계에 맞는 보고 가이드라인을 연구 전에 미리 숙지하고 그에 맞게 연구를 설계하면 보다 정교하고 엄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습니다.


- 저자 순서 정하기


분야마다 저자 순서나 공저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수준도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저자 순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연구 초기에 미리 저자 순서를 정하고 저자 순서에 맞게 기대되는 기여도를 공유하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기여도에 따라서 저자 순서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미리 공지합니다.


- 공동저자의 피드백받기


공동저자가 있다면 최종본을 보내어 피드백을 받아야 합니다.


저널마다 다르지만, 공동저자의 연구비 출처, 해당 저널의 editor 경험 유부 등을 상세하게 묻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미리 저널의 가이드라인을 확인해서 필요한 정보를 한꺼번에 물어봅니다.


피드백 마감기한, 필요한 정보(소속, 선호하는 이름, 연구비 출처 등)를 기재하여 메일을 보냅니다.


바쁜 사람 가운데 메일에 답을 잘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빨리 게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마감기한을 명시하고 '그때까지 답을 주지 않으면 피드백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제출하겠다. 시간이 더 필요하면 알려달라'라고 메일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현실적인 마감기한을 주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 글은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저자가 아니더라도 논문을 보고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공유해서 피드백을 받고 감사의 말(acknowledgment)에 이름을 넣는 것도 좋습니다.


- 시스템에 등록하기


최근에는 많은 저널에서 자체적인 투고 시스템이 있어서 그 시스템을 통해 논문을 투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자 리스트, 초록, 제목 등을 입력하고 첨부파일을 올리면 투고가 완료됩니다.


에디터에게 가기 전에 보통 전반적인 스크리닝을 하는 부서에서 확인을 하는데 거기서 빠진 부분이 있으면 연락을 해줍니다.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에디터에게 전달되고 각 리뷰어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리고는 끊임없는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게재 확정이 되었다는 소식은 언제나 설레고 기분이 좋고 게재 불가 소식은 언제나 힘이 빠지기 마련입니다.


내가 하는 연구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것인지 회의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예전 연구란 끊임없는 지식의 만리장성 끝에 돌 하나 얹는 것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내가 열심히 닦고 깎은 돌이 비록 무수히 많은 돌 중 하나에 불과할지라도, 세세에 길이 남을 명화도 결국에는 무수한 점과 선과 면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며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모니터 앞에서 때로는 힘겹고 때로는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을 모든 연구자들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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