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agitarius
Nov 19. 2021
어젯밤 꿈이 너무 생생해서 하루 종일 꿈 생각이 난다.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 최근에 늙음과 죽음에 관한 영상을 자주 봐서인지 꿈에 내가 죽음 직전에 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잠깐 깼을까. 머리가 무거우면서 실제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다.
2,3초 되는 시간이었을 거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퍼뜩 드는 생각은 이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일어나지 못한다면, 내 온갖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다. 별걱정을 다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게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잠깐만 생각해도 내가 여기저기 벌려 놓은 흔적이란 산만하고 지저분해서 남아있는 이들에게 민폐가 극심하다.
오랜 투병을 하거나 나이가 한참 들어 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느닷없이 내가 사라지는 상황이면 과연 어떨 것인가.
어느 날 밤 평소대로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다.
내 주변엔 그렇게 돌아가신 분이 몇 명 있었다. 누군가는 '자다가 죽는 게 소원'이란 사람도 있지만, 그건 살만큼 살았을 때 바람이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그런 죽음에 이른다는 건 황망하기 짝이 없을 것 같다.
늘 머릿속에 두어야 할 상황이다.
먼저 내가 53년간 살면서 남긴 각종 물건들이 아이들이 처리해야 할 쓰레기 더미가 되지 않아야 한다. 쓸데없는 물건들은 최소화하고, 아이들이 가져갈, 계속 사용할 물건만 남기도록 하자. 즉 누가 봐도 가질 수 있게 좋고 탐나는 것만.
애써 버려야 하는 쓰레기를 남기지 말자.
앞으로는 좋은 물건만 사자.
일기장 등. 적당한 시기에 버리자.... 언제?
그리고 가족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안 가진다.
나를 괴롭혔던 사람도, 좋아했던 사람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로지 딸 생각뿐이다.
딸. 지금 넌 엄마가 너를 낳았던 그 나이다. 그러니 엄마가 얼마나 미숙한 엄마였는지 알겠지?
인간적으로도 덜 성숙한 상태에서 아기를 낳아 기르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았지. 다행히 내 첫딸은 너무나 순해서 육아 스트레스란 걸 몰랐다. 어릴 때 잘 자고 잘 먹고 잘 웃고. 큰 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밤마다 많은 그림책을 매일 읽어주고 , 읽은 책을 또 읽어달라고 해서 조금 힘들기도 했다.
여러 장면 중에 생각나는 것. 세일러문을 너무 좋아해서 세일러문 그림책도 매일 읽어주고, 노래까지 불러주어야 했다. 지금도 노래 멜로디는 기억난다. 텔레토비도 좋아해서 지팡이 같은 걸로 텔레토비 따라 하던 것도 기억난다.
생각만 하면 너무 미안해서 나를 때려주고 싶은 기억도 많다.
유치원 , 학교의 학부모 수업에서 즐기기는커녕 우리 딸 왜 발표 안 하냐고 짜증 내거나 윽박질렀던 엄마.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하면 나도 당시의 나에 화가 난다.
그때 엄마는 특히 학부모라는 역할에 너무 자신 없어했어. 특히 다른 엄마들과 어울리는걸 더 힘들어했어. 그러니 학교 가는 게 어색하고, 학교 가는 목적은 단 하나. 우리 딸의 모습을 보고 싶은 거. 그런데 그게 아이의 학교 생활을 그저 지켜보면 되는 게 아니라, 무언가 남 보기에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컸다.
지금의 엄마는 너의 모든 걸 응원해. 학업이든, 앞으로 직업이든. 더 맘에 들고 아니고는 있지만, 그건 엄마의 의사일 뿐이고 네가 결정해야 되고 그 과정에서 전적으로 지지해. 행여 엄마가 또 이전처럼 말도 안 되는 얘기를 꺼내면, 이제는 네가 단호하게 대답해다오.
내가 해주어야 할 건, 각종 가이드가 아니라 오로지 애정과 경청뿐이라는 걸 이제는 절실히 깨달았어.
언제나 애정을 보내고, 맘속으로 가 아니라 행동으로 말로 표현하는 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행동이라 생각해. 어떤 상황에서든 첫 번째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기. 돈도, 밥도, 각종 조언도 그다음이야.
..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