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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Apr 12. 2022

물건 지옥

이사한 지 한 달쯤 됐다. 9년 만의 이사였으며, 아파트 평수가 5평 정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새 집은 이전 집에 비해 붙박이 수납장이 거의 없다.


이사하기 한두 달 전부터 매일 물건을 버렸다. 유난히 많이 버린 것은 옷, 락앤락(...), 오래된 이불, 수 십 년 된 서류들, 책들이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 이사를 하고 짐을 다 풀고 나니 새로운 잡동사니 물건들이 재발견됐다.


더욱이 이사 온 집은 신축에 가까워서 수십 년 묵은 내 짐들이 너무나 흉했다. 나는 '물건 지옥'에 빠졌구나 싶었다. 이 잡동사니들은 나 몰래 자가 증식한 걸까. 어떻게 이토록 많은 물건들이 다시 쏟아져 나왔을까.


심호흡을 한 뒤, 매일 종류별로 하나씩 물건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우리 집에 유난히 많은 물건들이 몇 종류가 있다. 수납공간이 대폭 줄어들어서 현재 사용하는 것들 빼고, 재고품은 웬만하면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같은 종류로 수~ 수십 개 똬리가 나왔다.


먼저 소금이 너무 많았다. 소금을 산 기억이 없는데 , 우리 집에 왜 이렇게 소금이 많나. 명절 선물 세트 중 포함된 것도 있고, 최근 핑크 솔트 인지 뭔지 소금 선물하는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그냥 받고 보니 집에 소금이 한가득이다.


다음으로 수건이 끝도 없이 나왔다. 젊은 사람들은 기겁하겠지만, 우리 집엔 30년 된 수건도 있다. 거기에는 '김 ** 첫 돐기념'이라 쓰여 있다. 당시에는 돌을 돐이라고 썼다. 나는 왜 이걸 버리지 못하고 갖고 있는 걸까. 수건을 적당히 쓰다가 발수건으로, 걸레로 써야지 하고 쟁여둔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한 트럭이다. 수건을 버리는데 이상하게 죄책감(?) 같은 것이 있다.


특정 약도 많다. 목감기 약이나 근육통에 바르는 로션 같은 걸 친척에게서 꾸준히 받기만 하고 잘 쓰지는 않아서 그렇다.


또 내가 진정으로 지옥에 빠진 느낌을 가진 건 밀폐용기와 파우치다. 밀폐용기 등을 내 돈 주고 산 것은 거의 없다. 사은품으로 받았거나 음식 선물을 담아서 받은 것 등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몇 년을 그냥 보관했더니 산더미가 돼버렸다. 파우치도 비슷한 이유로 우리 집에 왔다.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늘 쓸 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딘가에 쑤셔 놓은 것이다. 락앤락은 음식 말고도 잡동사니 모아놓으면 될 것 같고, 파우치도 마찬가지다. 여행 갈 때 소품들 하나씩 넣으면 편할 것 같다.

배달용기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기사에 인용된 사진


정리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라고 했다. 언젠가는은 오지 않는다는 거다.


이 결단력이 아직 내겐 부족하다. '당장 필요한 물건들 말고는 눈 딱 감고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려주세요'


무생물인 물건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만져보면 감정이 살아난다. 어떤 옷은 정확하게 구입처가 기억난다. 그때 이 옷을 보고 딱 마음에 들어서 구입했지, 가격도 좀 비쌌지만 몸에 잘 맞아서 샀다, 지금까지 10년간 잘 입었으니 본전은 뽑고도 남았다.

이 셔츠는 인터넷에서 산 것 같은데 색깔만 보고 구입했고 그냥 그렇다, 있으니까 입는 거다, 그러니 주로 집에 있을 때나 휴일에 잠깐 입는다.


물건을 우리 집에 들여놓을 때 신중하게 선택한 것은 결국 오래 아껴 쓰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뒤 쓰레기로 변한다. 돈들여 쓰레기를 사고 돈들여 쓰레기를 버리는 아둔함을 되풀이한다.


과거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물건이 넘쳐난다. 다이소 등의 등장으로, 어떤 물건은 가격이 20~30년 전이랑 비슷하다. 대량 생산에 원가도 떨어진 탓이겠다. 클릭 한 번으로 물건이 바로 집 앞에 오니 온갖 물건들이 집에 쉽게 들어온다. 이 중에 절반 이상은 결국 쓰레기가 되는 것 아닐까.


가지려고 애쓴 시대를 지나, 갖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사은품도 받지 말고, 선물도 적당히 거절하고, 혹해서 사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애써서 갖게 된 것은 쓸고 닦고 어루만지며 오랜 시간 행복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들은 죄책감과 번뇌만 줄 뿐이다.

   

이사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오늘 밤에도 물건을 하나씩 꺼내놓고 마주할 계획이다. 너는 정녕 내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


보면서 많은 도움이 된 영상 하나를 아래 소개한다. 물건다이어트를 실천하는데 도움된다.


https://youtu.be/I8MMZ4gnv_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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