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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gitarius Jul 14. 2021

노년의 일

내년이나 후년에 다니던 직장을 떠난다고 상상해보자. 정년이든, 명예퇴직이든, 자발적 퇴직이든.


나이는 50대 중반이고 3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했다.


그 이후 인생은 어떻게 될까.


눈을 감고 이후 내 모습을 그려보길 권한다. 한 달 두 달은 쉽게 떠오르겠지만, 그 이후는 막연할 것이다.


지금껏 직장에 매여 일했는데 쉬어야지 그 이후도 생각해야 되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래도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아니어도 중장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보다 55세는 매우 젊은 나이다. 눈이 침침하고, 흰머리도 수북하며, 여기저기 무릎이며 어깨가 쑤신다. 그럼에도 늙지 않았다. 특히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해왔다면 부지런함이 몸에 배 있고, 사회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기에는 너무 젊은 것이다.


처음에는 오랜 숙원인 취미생활을 시작한다. 등산, 자전거, 뜨개질, 그림, 공예.... 재미도 있고, 능숙하게 해낸다. 그런데 취미는 역시 취미다. 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것을 하루 종일 하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미덕'이란 말들을 하나 보다. 가만히 있기가 참 쉽지 않다.


규칙적으로 학교 다니고, 직장 다니고, 일하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래서 지긋지긋한 직장을 떠나서 비로소 자유인이 됐을 때도 적당한 일을 하고 싶다. 과거처럼 9 to 6까지의 일은 하고 싶지 않고, 좀 더 짧은 시간의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작은 돈이라도 벌고 싶다. 친구 만나고, 가끔 여행 정도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이 정도의 두 가지 조건을 염두에 두고, 눈높이도 낮춰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본다.

체면에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여분의 직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아르바이트라 여긴다. 과거에 내가 무엇을 했던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전공이나 과거 경력을 인정받으면서 짧은 시간 일할 곳은 세상에 없다.


중강도의 노동과 언제든 쉽게 고용, 해고되는 자리들을 찾게 된다.

여성이라면 처음에는 마트 캐셔나 편의점 등부터 아이돌보미, 식당 등을, 남성들은 경비, 운전, 청소 등을 알아본다. 비슷한 생각인지라 이 일자리들도 이미 경쟁은 치열하다.


어딜 가도 '사모님' 소리를 듣는 지인이 있는데, 유치원 승하차 도우미와 식당 주방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승하차 도우미는 아침에 1시간 일하니 좋고, 식당 주방일은 어렵지만 나중에 본인의 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싶어서 한다. 많이 배운다고 한다. 그는 몸이 좀 힘들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는 다행히 지금 재취업을 해서 열심히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관두면, 그 이후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손으로 하는 재주가 없어서 청소년 상담일을 할까, 초등학생 방과후 도우미를 할까 이것저것을 떠올린다.  


나는 나이 들어서도 꼭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이 들어 재취업하려면 이렇게 눈높이를 낮춰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50대가 되고 보니, 보이는 세계가 또 달라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우리는 100세까지 수명이 확 넓어지고, 과거보다 훨씬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노인이 되며 어쩌면 생애 여러 개의 일을 나잇대에 맞춰서 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직업에 대한 선입견도 덜고, 60대 이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90~100세 인생의 스펙트럼을 다양한 일과 경험으로 채우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임도 하며 세대별 순환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얼마 전 서울대 안에서 청소일을 하다 사망한 50대 여성의 소식을 접하고 남의 일이 아니라는 감정이 확 다가왔다. 그는 젊은 시절 기자로 일했고, NGO 활동도 하고 참 부지런하게 살아왔더라. 그러니 50세 넘어서도 씩씩하게 대학교 청소일을 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 세상에 필요한 모든 일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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