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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숲에서

자신에게 너그러워 지기를

by 볕뉘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관계 속에서 자란다.
부모와의 관계, 형제자매와의 관계, 친구와 동료와의 관계….
수많은 인연을 지나며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찾아간다.
어쩌면 그 여정이 인생의 행복을 결정짓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는다.
때로 우리는 누군가의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동경하고, 질투하고,
적당한 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백 번 받은 일은 잊으면서
한 번 받지 못한 일만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만나면 주로 밥을 사는 사람들은
여유가 넘쳐서가 아니고, 상대방이 가난해서도 아니다.
그 관계가 소중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조차
누군가에게는 ‘여유로운 호사’로 비칠 수 있다.

서로를 잃지 않을 만큼 가까이, 서로가 숨을 고를 수 있을 만큼 멀리 서 있을 줄 아는 마음의 거리감.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겪고 부딪히며 깨닫는 것이다. 누군가는 다가올 때 조심스럽고, 누군가는 물러설 때 더 깊어지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리듬을 알아가며 ‘우리만의 간격’을 만들어 간다.

물론 누군가의 시절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솔직히 화가 난다.
왜 나를 떠났는지,
왜 나는 그 사람에게 이 정도의 존재였는지
억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건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데서 오는 슬픔,
한 사람을 잃었다는 데서 오는 허전함

시절에 두었던 마음들.
그 상실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흔들린다.

관계란 결국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예술이다. 다가섬과 물러섬의 경계를 어색하게 헤매며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그리고 언젠가 문득 알게 된다. 오래 가는 관계는 ‘붙잡는 힘’이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지켜진다는 사실을.

그러니 이 숲에서 시절인연이 찾아왔다가
조용히 멀어져 가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 인연이 끝나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인연이 들어서는 것이
참 신기하게도 세상의 법칙이다.
떠난 인연에 마음을 쓸어내리며 상처를 만들기보다
다가오는 인연에게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지금 내 앞에 서서 눈을 맞추는 사람에게
마음의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의 예의다.

인간은 타인에게는 너그럽고자 애쓰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미는 존재다.
왜 더 잘하지 못했는지,
왜 그렇게밖에 못했는지,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관계의 끝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떠난 인연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상처받은 나 자신에게
따뜻하게 손을 건네는 일이다.

명심하자.
세상이 주는 모든 인연보다
나에게 내가 가장 먼저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을.
그 너그러움 속에서 우리는 다시 새로운 숲을 걷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다른 시절인연을 품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인생은 오늘도 조용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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