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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판 위에서 피던 사랑의 온도

그 겨울, 호떡을 품던 마음.

by 볕뉘

겨울이 오면 먼저 떠오르는 건 차가운 바람보다도, 지글지글 기름 위에서 눌리며 익어가던 호떡 냄새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골목을 돌면 노란 불빛 아래에서 반죽을 둥글게 빚고 철판 위에 허리를 숙이고 호떡을 굽던 엄마의 뒷모습이 있었다. 휘날리는 김, 묵묵한 손놀림, 어린 나를 향해 건네던 그 짧은 눈웃음. 그 모든 풍경이 오래된 영화처럼 이 계절마다 되살아난다.

지글지글 기름 위에서 단단히 눌리며 익어가는 반죽, 설탕과 계피가 만나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연기. 그 냄새는 겨울 공기를 데우고, 찬 바람 끝까지 스며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씩 흔들어 놓는다

요즘은 호떡 반죽이며 속재료까지 한 번에 받아 쓸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엄마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흑설탕과 계피 땅콩을 볶아 호떡소를 만들었다. 부엌에 퍼지던 달큼한 냄새는 겨울 아침의 시작이자, 엄마의 하루를 여는 신호였다. 갓 치댄 반죽 위로 손바닥을 눌러가며 공기를 빼던 그 손길은, 지금 돌이켜 보면 단순한 준비가 아니라 우리의 끼니를 걱정하는 몸과 마음의 노동이었다.

아빠가 떠난 뒤 무거워진 살림 속에서, 호떡 장사는 우리 가족을 지탱할 수 있는 마지막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손이 곱아 터지고 발이 퉁퉁 부어올라도 엄마는 철판 앞을 지켰다.
“이거라도 해야 오늘이 굴러가니까.”
그렇게 투박하게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늘 담담했지만, 그 담담함 속에는 삶을 지키려는 단단한 의지가 깊게 새겨져 있었다.

장사가 끝나갈 무렵이면 더 특별한 장면이 찾아왔다. 남은 호떡을 식지 않게 하려고, 엄마가 두 팔로 봉지를 끌어안고 품에 넣어 오던 모습이다. 하루 종일 기름에 튀어 따갑던 가슴팍에 뜨거운 봉지를 껴안은 채 걸어오던 그 속내를, 나는 그때 조금도 몰랐다.


나는 그저 엄마가 건네준 호떡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서, “얼른 뜯어줘!” 하고 조르는 딸이었다. 봉투를 열면 김이 훅 올라오고, 달콤한 시럽이 흘러내리던 그 한 입. 입안 가득 퍼지는 뜨거운 단맛이 너무 좋아서, 엄마 옷에 기름 냄새가 배었는지도, 뜨거운 봉지가 사실은 엄마의 고단한 하루였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먹기 바빴다. 그 시절의 나는 맛있다는 이유 하나로 행복했고, 그 행복이 엄마의 사랑과 희생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 엄마가 계시지 않는 요즘, 나는 정말 거짓말처럼 그때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딸이 되었다. 호떡을 굽는 냄새만 스쳐도, 엄마가 좋아하던 노랫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기만 해도, 심지어 엄마와 뒷모습이 조금이라도 닮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가슴속 오래 묻어둔 눈물이 웅덩이처럼 차오른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야 하나둘씩 보인다.
엄마의 굽은 허리에서 묻어나던 피로, 두 손을 비벼가며 나를 바라보던 미소, 식지 말라고 품에 가득 안아오던 호떡 봉지 속의 뜨거운 마음.
그 모든 것이 이제 와서야 가슴 깊이 내려앉는다.

어떤 마음은 사람이 떠난 뒤에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그때는 무심히 스쳐 지나쳤던 풍경이, 지금은 가슴을 흔드는 기억이 된다.

엄마의 호떡 냄새가 그랬다.

엄마의 목소리가 그랬다.

엄마의 뒷모습이 그랬다.

엄마의 냄새가 그랬다.

나는 이제야 안다.
엄마가 겨울마다 품고 오던 것은 단지 호떡 봉지가 아니라, 한 가족을 온전히 지키고 싶었던 마음, 세상 어디에도 팔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태워 하루를 버텨낸 엄마의 생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겨울이면, 호떡 냄새만 스쳐도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 뜨거움은 슬픔과 그리움과 감사가 뒤섞여 내 눈가를 적신다.
아직도 겨울 골목에 노란 불빛이 켜지면, 나는 본다.
철판 앞에 서서 허리를 굽힌 채 나를 바라보던
그 어릴 적 엄마를.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말한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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