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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C Nov 24. 2018

해방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독립

1945. 8. 15일의 풍경에는 거리 가득 자유로운 함성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너나 할 것 없이, 영문도 모른채 서로를 부둥켜 안고 거리로 뛰쳐 나와 기쁨의 태극기를 마구 휘날렸다. 그날, 빛을 되찾은 국가의 민중들은 일상의 고단함도 잊은 채 완벽할 것 같은 자유를 누렸다. 

저기 있는 모두가 환히 웃고있다


그런 해방의 풍경이 얼마나 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때의 어떤 개인에 이입해본다. 라디오에서 '해방'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는 순간적으로 그 의미를 다시한번 천천히 되새긴다. 주변의 함성을 듣자 그제서야 단어를 실감한 듯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게 올라오는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 오늘은 가게 문을 닫고 거나하게 취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모레에는, 일주일 뒤에는 다시 가게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해야한다. 그의 일상은 사실 변할 것이 없다. 남과 북을 가르는 선이 그어졌고 신탁될 자유가 우려되었다가 시민으로서의 투표권을 행사한 것도 지나고 나면 남은 건 일상이다. 달라질 것이 없는 일상. 다만 '해방'이라는 단어를 들었고 그 단어가 주는 의미가 그 순간만큼은 영원할 것 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감정은 영원할 수 없다. 기억 속 단면으로서 영원할 것 같은 것이 일렁일 뿐이다. 그는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된 것만 같은 강렬한 기쁨을 맛봤지만 사실 그는 해방되지 않았다. 자신의 믿음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그 시절 민중의 마음 속에 가장 강력하게 억압이라 믿었던 것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분명 그건 실체가 있었던 것이지만 그렇게 믿지 않았던 누군가에는 또 그렇지가 않았을 수도 있다. 이후에도 양 진영의 지도자들은 '자유'와 '해방'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며 국가를 분열시켰지만 사실 무엇이 달랐는지 민중은 알지 못했다. 때때로 가슴 속 뭉클함이 잠시 일렁였을 뿐이다.


대부분은 그런 믿음을 공유했지만 다 그랬던 것은 아니다. 굳이 친일파라는 반례를 들 필요가 있을까. 친일파가 아니었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역사를 친일과 독립이라는 프레임으로 보고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작은 일상의 침투였던 경우도 많았다. 저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분명, 나라가 해방됐다는 거대한 이벤트에 그저 잠시 기쁨을 나눠보았을지 모른다. 그들은 목놓아 '만세'를 외치고 난 뒤의 홀로 먼길을 걷는 귀가길에서, 아무도 없는 집안의 서늘함에서, 그리고 내일도 어쩌면 밭일을 하러나가야한다는 것을 깨닫는 피로감에서. 그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당장의 세계가 나와는 상관없다는 믿음을 지녔던 이들에게 해방은 다른 의미에서 무의미하다. 그들은 그저 많은 이들의 기쁨을 관조했을 뿐이다. 그들의 세계는 해방되지 않았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대행이 읊었던 그 선언은 어쨌거나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선고 당일 날 그녀의 헤어롤 2개가 화제가 될 정도로 탄핵을 주문할 역사의 주인공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때 나는 역사의 한장면을 목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탄핵 심판을 생중계로 보고 있었다. 후배에게 '와 탄핵선고 됐다'라며 핸드폰을 건네 들여다보고, 몰려드는 카톡 알람이 탄핵선고의 흥분과 통쾌함을 외치고 있었는데, 정작 나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지금은 헤어롤 2개가 달랑달랑 달린 그녀의 머리가 기억될 뿐이다.

얼마나 긴장되셨을까

 그 아무 느낌이 없었다는 게, 나에게는 삶의 고뇌에 대한 억압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작은 믿음을 공유하지 못했다라는 신호였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나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걸. 그래서 국민 대부분이 느꼈던 통쾌함을 나는 공유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고 다른 억압이 내 삶의 고뇌였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다른 억압의 실체에 대해 한참 뒤늦게 마주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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