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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Aug 19. 2020

“저를 아세요?”

과연 얼마나


민정: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 알려고 하진 마세요.
상원: 신기하고 재밌어요 지금.
민정: 그럼 그냥 즐기세요. 우리가 그렇게 아는 게, 다 중요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홍상수 감독 영화엔 ‘말’이 주제로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이다. 주인공 영수는 친구들의 말과 소문만 듣고 연인 민정을 판단하며 화를 낸다.


언어를 통한 범주화는 상대의 고유성을 지우고 그것을 획일적인 개념의 감옥에 넣어 분류한다. 이는 더욱 신중하고 개별적으로 지각하고 사고하기 위한 노력을 생략한, 효율적이며 신속하고 값싼 형태의 인지와도 같다. 이에 의존할수록 상대의 고유성과 특별한 개성, 정체성을 인지하는 눈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에로스의 종말>의 저자는 타자의 본질을 규정하는 것은 이질성이라 주장한다. 제거될 수 없는 이질성 그 자체가 바로 타자의 본질이다. 저자는 내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상대의 아토포스적 타자성에 집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에 따르면, 애초에 상대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만의 체계와 범주화로 타자를 해석하고 그 안에 꾸겨넣으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연인, 가족, 친구와 같이 가까운 관계에서도 해당된다. 특히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상대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한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예상치 못한 낯선 이질감의 등장은 상대에 급작스러운 거리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깊고 오래된 관계가 주는 안정감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유와 포섭의 개념인 ‘안다’를 넘어,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모른다’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타자는 내가 샅샅이 파악을 끝마쳤기 때문에 완전히 꿰뚫어보거나 안전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나의 예측을 벗어나는 존재이다. 차이와 변화를 기반으로 삼고, 끊임없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노력을 지속해나가야 하는 관계이다. 결국 다시 말해 상대를 영원히 파악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는 것은 긴장을 촉발하며, 이는 역으로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타자가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관계를 생생히 살아있게 한다. 이 영화를 본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지막 영수의 대사가 굉장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너 사랑하니까 다 말해줘. 너 모든 거 다.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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