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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가 Jul 16. 2021

책방주인으로 살기

일일 책방지기 체험 (feat. 동반북스)


집에서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에 위치한 동반북스. 7호선 종점까지 가고도 갈아타, 4정거장을 더 가야 하는 가능역에 위치해 있다. 태어나 듣기도 보기도 가보기도 처음인 가능역... 오히려 그래선지 가는 과정부터 마치 여행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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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큐레이션부터 벽 곳곳에 붙은 둥이, 나베, 방문냥이, 멍멍이들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한 공간. 사진에 담긴 사장님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듬뿍 느껴졌다.


오늘의 할 일


책방 정리와 손님맞이
온라인 주문 택배 발송
추천도서 골라보기
일일 책방지기 소감문 쓰기
둥이 돌보기
방문냥이들 챙겨주기 (고돌이, 치돌이)
SNS에 피드 올리기
오늘과 어울리는 음악 선곡


고양이가 창밖을 보는 건 인간이 tv 보는 것과 비슷한 행동이라 한다


계산대 끼적끼적


더워 차 밑으로 피신 간 고돌이 (동반북스 단골냥) 구경



둥이 간식 주고, 깃털 장난감 가지고 놀아주고, 택배 맡기러 우체국 갔다 오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여섯 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옛날부터 막연하게나마 쭉 책방 주인이 되는 것을 꿈꿔왔다. 좋아하는 것으로만 가득 찬 공간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게다가 옆에는 둥이까지 있는 공간이라면!) 상상만으로는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싶지만...



슬픈 현실로썬 오늘 손님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평일이고 원래 휴무이기도 한 월요일이라 더 한걸수도 있지만. 막상 원하던 책방 일이 현실이 된다면 감내해야 할 이런저런 문제들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와닿는다.



책방지기 체험이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 경험은 성남에 위치한 비북스였는데, 도착해서 맨 처음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사장님은 현실적으로 책만 팔아서 유지되는 독립책방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하셨다. 그래선지 술이나 커피를 함께 팔거나, 스튜디오와 겸업하거나, 공간 대여 등 수익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는 여러 책방들을 봐왔다. 비북스 역시 공간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오늘처럼 일일 책방지기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인건비 절감의 일환 같다.


책방 차리고 싶다 하면 반응은 가지각색 같다. 인터넷 보면 “그거 해서  먹고살게?” 이런 류의 반응도 많던데... 면전에서 그런 말까지 듣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그런 느낌이 눈빛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 별나라 사는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말을 내뱉기까지  정도도 고려  해봤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운영하고 싶음의 의미는 뭘까. 솔직히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불만족스러운 편은 아니다. 디자인이 원래 꿈꾸던 일은 아니었긴 하지만 그래도 적성에 맞는  같다. 내가 만든 무언가가 일단 눈에 보인다는 점이 마음에 들고  그에 따른 긍정적인 반응이 오면 뿌듯하다. 가끔 빡치는 순간도 있지만, 현재의 일이 못해먹겠다 수준은 분명 아닌  같다. 나름 보람차기도 하고 칭찬받을 때도 있고 그렇다.



그치만 아직까지도 일이 무엇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이 단순히 생활유지의 수단이거나 지출을 위한 대가가 아니었으면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위로부터 배당받은 일에 간접적으로만 참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는 통제권을 갖고 싶다. 설사 그게 힘든 길이더라도 과정과정 스스로 선택하는 독립적인 힘을 갖고 싶다. 막상 상황이 그렇게 되면 절박해져 이것저것 뭐라도 하려 할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일은 그냥 다니니 다니는거지- 이런 무기력한 느낌이 강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 아닌 이상 그런 힘이 생기기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아직까지 일과 생활에 대해 약간 낭만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나를 보고 함 망해봐야 정신 차리지 말해도 할 말 없지만. 그게 안 되는 현재는 무언가에 끌려다니는 느낌이고 힘이 없게 느껴진다. 스스로가 애초에 직장생활과 맞지 않는 타입 같단 생각도 자주 들고... 나답게 살고 싶으면 앞으로 뭐해먹고 살아야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자주 드는 요새이다. 지금의 나에겐 뭔가를 직접 헤쳐나가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필요한 것 같다.


만난 사장님들 대부분 지금의 생활에 만족스럽다 하셨지만, 애초에 시작하지 말라 하신 분도 있었다. 그래도 그 또한 책방 창업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라 했다.


비록 하루지만 이런저런 현실적인 걱정 없이 이런 사랑스러운 공간의 책방주인이 되어볼 수 있어 행복한 날이었다.


여기도 저기도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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