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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P Mar 25. 2021

평일의 반차를 좋아하세요?

실상 반차는 평일에만 쓸 수 있으니 그냥 ‘반차’를 좋아하냐고 묻는 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평일이라는 단어를 수식어처럼 붙인 것은 내가 반차를 사랑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집밖을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또는 회사와 그 인근 지역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에서, 하루 동안 온전히 회사를 잊고 지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통으로 쉴 수 있는 연차(또는 월차)를 더 선호하는 듯하다. 그래서 반차를 썼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그냥 연차 쓰지~’라는 말로 화답한다. 확실히 연차도 좋다. 일주일에 4일만 출근하면 되는 감각이 싫을 리가 있을까. 아니, 일을 안 하고 쉴 수만 있다면 뭔들 싫을까. 우리 모두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 속내에는 ‘쉬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내가 반차를 찬양하려는 이유는 남들이 일하는 와중에 나는 마치 도망가는 듯한, 그래서 나만 쉴 수 있는 듯한 그 뉘앙스가 맘에 들어서다. 물론 연차도 사실상 남들이 일할 때 쉬는 것이다. 시간상 더 길게 쉬니 제대로 쉰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이 일하고 있는 걸 내 눈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조금 악랄한 생각일 수 있지만,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알 듯 일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야 쉬는 내 처지가 두 배로 행복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연차로 쉬는 날에 길을 나서면 평소의 나라면 사무실에 콕 박혀 있을 시간에 영화관, 마트, 옷 가게, 음식점은 물론이고 지하철에 즐비한 사람들을 보며, 여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가 싶은 생각에 도리어 내 평소 모습을 한탄하게 된다. 하지만 반차는 직장인들 틈바구니에서 홀로 쏙 튕겨져 나와 그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들 사이로 뛰어드는 처사다. 한순간에 신분을 탈바꿈하는 기분을 짜릿하게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반차의 매력은 하나 더 있다. 하루가 순삭(순식간에 삭제의 줄임말)되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연차의 매력이 늦잠과 아무것도 안할 수 있는 자유라면, 반차는 늦잠으로 귀중한 연차가 순식간에 오후로 치닫는 아찔한 경험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밤이 되어버렸다는 처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즉 연차의 단점을 반차가 보완해준다고 보아도 괜찮겠다. 물론 반차를 오전에 내면 연차의 단점과 반차의 단점이 뒤섞인 경험을 할 가능성도 농후하니 주의하기 바란다. 오전 반차는 아무래도 너무 피로한 날이나 오전에 볼 일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연차가 주는 단점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대개 오후 반차를 선호한다. 이때를 이용해 내가 그간 가고 싶어 했던 곳들을 방문한다. 특히 연차라면 굳이 몸을 집밖으로 끌어내어 가고 싶을 만한 거리는 못되지만(사실 연차에는 중대한 일이 아니라면 그냥 집에 있고 싶지 않나? 집에서 반경 1km 이상으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직장에서라면 가기 편한 거리에 있는 장소들에 간다. 내 직장이 서울에 자리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어쩔 수 없이 인구 밀집도가 높은 서울에 놀 거리도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가장 많은데 이 말은 남들도 함께 쉬는 타이밍에 가면 서울은 어디든 만석이고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무언가를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면 ‘평일’의 ‘낮’이 제격인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붐비는 장소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술을 들이키는 일을 제외하고는 천천히 즐기고 여러 번 곱씹는 편이므로, 방문하는 장소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지분이 비교적 높은 시간대를 찾는 데에 열성적이다. 덜어내고 덜어내도 꼭 가봐야겠는 곳이 서울에 있다면 오롯한 시간대를 찾아야 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반차를 내고 가는 것만큼 효용성이 뛰어난 때도 없다는 결론에 닿았다.  

그러니까 내게 반차라는 것은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서 머리를 식힐 수도 있고, 타인과 조금이나마 거리를 두고 나만의 세계로 돌아올  있는 기회인 것이다. 또한 평소라면 엄두도 내기 어려운 장소들을 선뜻 가볼 용기도 나게 하는 장치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북적이는 데서 삶의 생기를 찾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활력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유효하지 않을 만한 의견이다. 내향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싶은 욕망도 있는  종류의 인간에게 반차는 연차만큼이나 훌륭하다. 그래서 내일은 반차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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