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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P Nov 07. 2021

덕질을 청산하며 깨달은 사랑의 모양

적어도 공상허언증 초기 증상은 벗어났겠지요

참으로 요란했던 2주였다. 찐심을 다 바친 최애에 관련한 말들로 10여 일이 떠들썩했고, 내 머리와 마음속도 소란했다. 하필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은 산적했다. 해보지 않은 일, 작은 것까지 신경 쓸 일, 참고 견뎌야 하는 일이 차곡차곡 쌓여 좌뇌가 지끈거렸다. 이럴 때 휴대폰 바탕화면을 장식한 환한 최애의 얼굴을 잠깐 보는 걸로 고단함을 살살 풀곤 했는데, 지난 2주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다 못해, 은근하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었다. 이 와중에 소문은 끊임없이 엎치락뒤치락 했다. 내 신념은 최애의 입장 발표와 함께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서서히 상황이 전복되면서 나는 묘한 감정과 혼란에 휩싸였다.

나는 인성 문제에 가장 실망했었다. 그리고 내가 믿었던 이미지가 브라운관이 조작한 것이라면 정말 넌더리가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들은 다 똑같다'는 해묵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하루 만에 '그것만은 아니다'라는 주장이 직업상의 연줄을 타고 먼저 흘러들어왔다.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한편, 최애가 입을 열기 전까지 지켜왔던 그 중립을 다시 세우는 정도의 경계를 세우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도, 흐름도 모든 것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주위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의 입을 통해 나온 것 말고는 온전히 믿기 어려웠다. 그러나 결국 전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실제로 그와 오랜 시간 지내온, 또는 오래 전 알았던 지인들까지 두 팔 걷고 나선 덕분이었다. 인성문제가 거짓이라면, 그러니까 그동안 알려진 대로 고운 인성으로 사람들과 잘 지내왔다면 주위에서 돕고 잘 회복하지 않겠냐, 고 생각했는데 진척이 빨랐다. 그것은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그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내가 외모만 보고 그를 좋아한 게 아니라는 안심을 할 수 있었다.

다만, 나는 그를 끝까지 믿어주는 팬은 되지 못했다. 짧은 시간의 요란한 파동 속에서도 그를 믿고 기다린, 적어도 중립은 지키고 기다린 찐덕후들이 보였다. 나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속내를 가늠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풀썩 주저앉았는데 말이다. 사뭇 부끄러웠다. 나의 애정은 이토록 폭이 좁았다. 팬심을 넘어선 찐심이라 해놓고, 참으로 손 쉽게 놓아버렸다. 해프닝이 일단락되기 전까지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어보고 판단해도 됐는데, 그런 그릇이 못 됐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런 사람이었던가?'라고 돌아보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그의 공인이라는 위치와 그에 걸맞는 역할에 대해 운운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 쉽게 손을 놓아버렸던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찾으려는 듯이.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며 어쩐지 논리가 탄탄하지 않다고 느꼈을 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의 결백과 곧은 인성이 드러나는 와중에도 여전히 실망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 그 사유가 윤리적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그의 연기'만'을 사랑하는 팬의 형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연기를 볼 수만 있다면, 그러니까 그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기만 한다면 사생활이야 무슨 상관이겠냐는, 어찌 보면 참으로 현대적이고 이성적이며 바람직한 팬심이 내 것은 아니었다. 애착 강한 '짝사랑'이 내 애정의 모양이었다. 때문에 노골적으로 까발려지고 있는 전말이 내심 불편했다. 사랑하는 이의 과거를 낱낱이 알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이 과정에서 하나 더 깨달은 사실은 그러한 이력이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순수한 청년일 거란 상상은 그저 내 바람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그를 곱디 고운 이미지 안에 가둬놓고 무한한 상상력과 애정을 키운 것은 나인데, 정작 그를 탓하고 원망했다. 이러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나니 미안해서라도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 있는 사람이든, 가까이 있는 사람이든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얼마나 무의미한 마음을 키우며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더 성숙한 사람이 되는 데에 앞으로의 시간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마 스스로 바짝 정신차리게 하고 싶어 날린 부메랑은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는 생각해본다.

물론 만나 교류해보지도 않은 사람을 무턱대고 믿고 기다려주기란 어렵다. 그야말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의 말이나 주위의 상황들을 어찌 순전하게 지지해줄 수가 있을까. 그를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도 단지 자동응답기처럼 반복해서 말하는 것들에 세뇌를 당하며 그려진 하나의 상일 ,  사람  자체일 거라고 누구도 당당히 말할  없다.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직접 관계가 있는 당사자의 말을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의 말이라면 무엇이든 믿고 곁을 지켜줄 자신이 있는 사람이란 점을 상기했다. 비록 이번에는 마음을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어떤 이물질이 첨가된 지도 살피지 못했지만, 그래서 거세게 치는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말았지만 다음에는  건강하게 마음을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다시 사랑할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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