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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May 04. 2020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않았다>전쟁에 남녀가 있을까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이 책을 완독 하기란 쉽지 않았다.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고 결국 한 달여의 시간이 걸렸다. 책의 내용이 무거워서 읽으면 읽을수록 감정이 소용돌이쳤기 때문에 더디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 내 세대의 친구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실향민이라 어릴 적엔 한국전쟁과 1·4 후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고 지금 이 시각에도 내전 중인 타 국가의 이야기를 뉴스로 가끔 접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와 닿지는 않는다.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만 해도 두 세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시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는 하지 않았더라도 크고 작게 영향을 받았다. 핍박과 고통 속에서 살아낸 그들의 아픈 삶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부터이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 모두 다 불쌍해...  
-저자의 서문 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거나 이를 목격한 소비에트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여자들의 시각에서 본 전쟁 이야기를 글로 담은 책이다. 몇 년에 걸쳐 작성된 인터뷰를 한데 모아 책으로 출간하여 세상에 알리고자 했지만, 세상에 알리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고 지나치게 사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이유로 검열을 당해 출판사에 오랫동안 묶여있었다.



여자들만의 이야기를 담다.



그동안의 전쟁 이야기는 남성 위주의 서사가 많았다. 전쟁 영웅물 같은 것들 말이다. 오랫동안 군대와 전쟁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여성들은 전쟁터에 나간 남자들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졌고 나 또한 전쟁 기간의 여성들의 모습은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비행기 조종사, 의사, 운전병, 통신병 등 같은 저마다의 직무를 달고 최전방에서 싸웠다. 입대를 거부하는 장교에게 거짓말을 해가면서 입대를 하며 소녀병이 되어 훈련을 받고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자신의 손으로 지키기 위해 나서서 싸웠다. 그리고 그 전쟁 속에서 여성들의 남성들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자는 그 ‘다름’에 초점을 맞췄다.


갓 낳은 아기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과 생리하는 군인. 그리고 일등 저격수였지만 눈앞의 적은 차마 죽일 수 없었던 소녀병과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가 전쟁 중에 키가 다 자라 버렸다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전쟁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리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여성들의 시각에서 전쟁은 누구를 몇 명 죽였고 어떤 공을 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들은 전쟁 속에서 느낀 그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목소리 소설 &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



스베틀라나 알레시예비치 (Svetlana Alexievich, 1948~)


저널리즘의 형식을 넘어 '목소리 소설'이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한 기자 출신 작가다. 목소리 소설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여러 책을 발간했지만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들이라는 점을 빼곤 더 볼 게 없다’라느니 ‘기껏해야 역사책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알레시예비치는 증인의 목소리가 가지는 가치를 믿었고 목소리를 기반으로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써 내려갔다. 전쟁의 목소리를 담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부터 시작해 전쟁고아들을 인터뷰한 <마지막 목격자들>'을 썼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렸다. 알레시예비치는 소설 안에 삶 그 자체의 목소리를 담았고 감정의 역사를 쓴 것이다. 그리고 2015년에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위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결국 사람은 혼자야.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나 홀로 죽음을 대면해야 하거든. 나는 그 끔찍한 외로움을 알지.”  -본문 중-


전쟁터만큼 무서운 목적성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전쟁 앞에 성별이 어디 있을까. 죽음 앞에서는 모든 사상과 이념이 그 의미를 잃는데 하물며 눈앞에서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는 말할 것도 없다. 눈앞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 때의 괴로움과 그 시간 속의 외로운 싸움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짤막한 인터뷰를 모은 챕터와 소설 형식의 챕터 여러 개를 통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책은 아니다.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싶은 어두운 이야기들도 많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들려준 그들에게 감사드리며 다들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힘든 취재를 이어나간 알레시예비치의 도전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전쟁 이야기를 접했지만, 후세에는 이런 책이 나오지 않도록 이 세상에서 전쟁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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