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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 May 20. 2020

<뉴욕 오디세이>30여 년의 기억을 담은 이방인의 여정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이방인이면서도 동시에 이방인이 아닌


 뉴욕에서 30년간 거주하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이다. 월간 <톱클래스>의 <토프>라는 플랫폼에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라는 제목을 달고 연재했던 글에 살을 보태어 책을 완성했다.


저자는 엑스팻(Expat)이다. 엑스 패트리어트(Expatriate) 줄인 용어로 ‘조국  있는 사람을 일컫는데 일생의 반 이상을 엑스팻으로 살아온 저자와 마찬가지로 엑스팻인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 뉴욕의 조합이 많은 볼거리를 자아낸다.


거주국과 조국 양쪽에서 모두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는 자신을 어느 날 문득 발견했다고 토로하였는데 그래서인지 당연하게 접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들까지도 조금은 특별한 시각으로 바라본 뉴욕이 책 속에 담겼다. 저자의 바람대로 말하자면 엑스팻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가 된 셈이다.  


“나는 그 노래를 내 테마송이라고 부른다. 그 노래 후렴이 ‘I am an alien. I am a legal alien. I am an Englishman in New York(나는 체류자. 나는 적법 체류자. 나는 뉴욕에 있는 영국 사람)’이다. 나는 늘 이 노래를 따라 부르다. ‘I am an Englishman in New York’aks ‘I am a Korean man in New York’으로
 바꿔 부른다.”
-p.85




해도 해도 너무한 폭설의 도시 센트럴


 눈은 센트럴 뉴요커들의 애증의 대상이다. 하루 밤새 내려온 눈에 온 세상에 잠기는 풍경은 센트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광이다. 몇 해 전에는 시라큐스에 75시간 동안 쉬지 않고 눈이 내린 적까지 있다고 하니 새삼 그 위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각 학교에는 폭설이 내릴 경우 사용하는 휴교인 ‘ 스노우 데이즈(snow Days)’가 마련되어 있는데 지나칠 경우에는 눈이 너무 내린 나머지 스노우 데이즈를 다 소진해버려 학기가 연장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연말에는 그 특유의 분위기와 크리스마스가 어우러져 감성에 잠기게 하지만 4월까지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 폭탄은 정말 지긋지긋했다는 것이 저자의 푸념인데 그래도 그간 <나 홀로 집에>와 같은 뉴욕 영화를 보면서 상상해온 아름다운 겨울의 뉴욕 이미지를 상상한 한국인으로서는 조금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도 다시 서울에 돌아와 뜨뜻한 온돌에 앉아 눈 내린 센트럴 뉴욕의 사진을 보면서 다시 ‘눈이 새삼 아름다운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밖과 안에서의 관점을 모두 가진 자의 솔직한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엑스팻이 가슴에 품고 사는 것들,

마음은 집시


미국과 한국을 바쁠 땐 거의 3주 간격으로 왕래하는 스스로의 생활패턴 특성상 어딜 가나 온전히 정착하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던 작가의 고충 역시 책에 잘 드러나 있다. 한국에도 자신의 옷가지가 여러 벌 있으며 거주하고 있는 미국에는 살림살이가 있다.


양쪽에 있는 지인들과 가족 사이에서 혼란과 혼동을 느끼던 순간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꽉 찬 일상을 이어오고 있다. 그것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이 그를 다양하고 더 넓은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근본이 되고 있다.  


“…이 액스팻이 삼십 년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도 한 번도 내려놓지 않고 가슴에 품고 다녔던 것들을 하나씩 헤아려 보았다. 내 아버지의 모습, 어머니의 모습, 외할머니의 녹색 엄지손가락, 햇살, 신의주식 김치, 약과, 수박, 별, 달, 은하수, 인공위성…. 쿨쿨. 마음은 집시? 글쎄, 몸은 집시였을지 몰라도 내 마음만은 집시가 아니었다.”
                                             - p.120                                                


                                                                                  

수억 년의 시간이 쌓인 시간들, 저자에게는 30여 년의 시간이 쌓인 시간


저자는 로체스터에서 웨그만즈를 방문하며 느낀 감동과 직원들의 친절함에 대해 서술하며 그 속에서 그들의 프로페셔널함과 정을 전달하고, <제네시 일기>를 읽은 후 훗날 방문하게 된 <제네시 수도원>에서 노동과 명상의 중요성을 깨달았음을 말한다. 대학생 시절 놀이터처럼 이용한 메트를 소개할 때면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이 고스란히 전해져 몰입도가 올라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이 많다고 불평했던 센트럴의 봄 이야기에서는 빨간 이름 모를 새를 마주한 후 ‘붉은 새’, ‘카디널(추기경의 붉은 옷과 닮았다는 의미에서)’라며 자신만의 애칭을 붙여 주고는 다시 또 그 공간에 추억을 쌓는다. 업스테이트와 다운스테이트를 넘나들며 빌딩 숲 사이 골목 구석구석까지 훑는 이야기가 다양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금융의 심장이자 전 세계의 문화 중심에 자리 잡은 뉴욕은 친근한 듯하면서도 높은 벽이 생기기 쉬운 나라이다. 아무래도 세계 1위의 경제력 대국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우상시되거나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다른 세계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언론 속에서 봐오던 모습과는 다른 시시콜콜하고 소박한 일상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30년 차 엑스팻인 한국인 관점의 시선을 접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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