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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Dec 15. 2023

미쓰 리, 통장정리 좀 해와

여섯 번째 묘비명

내가 다음으로 간 곳은 종로에 있던 여행사였다.(그렇다고 모두가 아는 대형 여행사는 아니니 추측은 금물) 여행사에 면접을 보러 간 건 그때만 해도 같은 분야에서 일했던 같은 학교 동기 언니 때문이었다. 그 언니는 꽤 오랫동안 여행사 웹디자이너로 일했고 얘길 나누다 보니 여행사에서 일하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3D 업무는 아닐 것 같았다.


내가 들어간 여행사는 국내는 금강산 여행(그때만 해도 가능한 여행이었다)을 메인으로 밀고 해외는 유럽 여행을 메인으로 하는 곳이었다. 1층은 국내 여행 상담사들이, 2층은 해외여행 담당자들이 근무했다. 2개의 층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마치 두 개의 회사가 사무실만 같이 쓰는 것 같았다. 1층은 콜센터 같은 분위기에 여행 가이드들과 버스 기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2층 해외 파트에서 근무했는데 아무래도 해외여행 쪽이 일할 게 더 많았다.


여행사 근무는 '정신없음'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내가 하는 일이 많은 게 아니라 분위기가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그만둔 건 아니었다. 굉장히 짧게 일했기 때문에 다른 건 기억나는 게 별로 없지만 2층 해외 파트 직원들과 회식했던 기억은 꽤 강렬하게 남아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물담배를 피워봤기 때문이다. 홍대의 어디쯤이었는데 가게 이름도 위치도 다 잊어버렸지만 그곳의 분위기와 그날의 물담배 맛은 기억이 난다. 사실 그녀들이 회식 2차로 간 곳이 물담배를 피우는 곳이란 것도 가서야 알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카페 가듯 끌고 갔기 때문에 내가 물담배를 피우게 될 줄은 몰랐지. 인도식 카페라고만 해서 지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는데 이건 첫 번째 직장에서 언니들이 담배 꺼내 들고 너구리 굴을 만들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로 가득했다. 인도 풍의 인테리어와 좌석은 모두 바닥에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카페 안에 수로 같은 걸 만들어 놔서 물이 흘렀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올 법한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물담배를 피우고 있더라. 심지어 맛이 괜찮아서 나중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쿠션에 기대어 300백 년 산 사람처럼 늘어져서 피웠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펴봤던 담배 맛도 그다지 나쁘진 않은 맛이어서 담배를 계속 피웠다면 골초가 되었을 것도 같다. 왜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주위에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기회가 없었을 뿐 나처럼 유혹에 약한 인간 곁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축복에 가까운 일이다. 


젊고 트렌디한 2층의 해외 파트 분위기와는 달리 여행사 사장은 말 그대로 '꼰대 영감'이었다. 나이가 많아 오로지 자기 눈에 보이는 것과 숫자만 믿었다. 급여도 '월급봉투'에 현금으로 담아서 줬다. 꼬장꼬장하고 대하기 어려워 나는 되도록 눈에 띄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어느 날인가. 사장이 갑자기 날 불렀다. 일은 팀장을 통해서 했기 때문에 직접 대화를 나눌 일은 거의 없어 의아했다. 갑자기 통장을 내밀더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 "미스 리, 통장 정리 좀 해와."라고 했다.


우선 나는 미스 리가 아닌 직위로 불리기 원했지만 그것까지야 나이 든 분이었고 손님이 오면 여직원이 커피를 타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었기에 이해했다. 하지만 '통장 정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대표가 나한테 그 일을 시킨 건 내가 그중에서 가장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팀장한테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까 웹 디자이너가 정확히 뭘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던 거고, 팀장이 날 뽑자고 하니 뽑은 건데 쟤는 대체 무슨 일을 하기에 앉아 있는 걸까, 하는 일도 딱히 없어 보이니 통장 정리라도 해오라고 하자.


그동안의 사회생활을 통해 상급자가 시킨 일에 대해 그 앞에서 'NO'라고 해서 좋을 건 없기 때문에 나는 우선 군소리 없이 통장을 들고 은행에 가서 통장 정리를 해왔다. 사실 통장 정리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표가 내 일에 대해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는 건 문제가 있었고,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을 또 나한테 시킬지 몰랐다.


외근 나가 있던 팀장한테 다음 날 면담을 요청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고 앞으로 그렇게 일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팀장은 미안하다며 자기가 잘 말해보겠지만 옛날 분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팀장이 호칭 문제와 일에 대한 건 잘 말했다고 했지만 그때 당시 나한테는 그 일이 꽤 충격이었고 적응을 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어차피 2층에서 근무하고 내 할 일만 잘하면 되지, 상관없을 것 같은데 그때는 내가 젊었고 여기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게다가 집에서 종로까지 거리도 만만치가 않아서 이래저래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근무한 기간은 한 두 달 밖에 안 되어서 지레짐작으로 이번에도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빳빳한 돈으로 월급봉투를 챙겨주었다. 그때는 꼰대 영감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에 와보니 그저 한 바닥에서 몇십 년 동안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지금 나도 꼰대겠지. 우리는 누구나 나이와 비례해서 꼰대력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 시절을 먼저 지나와서 해주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도 꾹 참는다. 어차피 겪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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