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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an 21. 2024

몬세라트 트래킹은 절경이고 장관입니다

마이웨이 엄마와 꼴통 딸의 스페인 여행 14

10월 8일 날 아침. 역시 오픈런으로 조식을 했다. H10 유니베르시타트 호텔의 조식은 종류도 많고 맛도 훌륭했다. 이 집, 조식 맛집이었네. 

아침을 가장 많이 먹는 우리 엄마는 이 아침에 참 잘 드신다. 나랑은 정반대다. 오늘은 몬세라트 수도원 일요일 미사를 드리기로 해서 몬세라트에 11시 전에는 가야 한다. 몬세라트 수도원 미사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하고 오면 된다.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하는데 자리가 다 차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보냈었다. 그랬더니 PDF로 QR코드까지 있는 예약증을 보내줬다. 


원래 몬세라트 수도원 자체가 무료 관람이 가능한 곳이었지만 얼마 전부터 따로 유료 사이트가 열려서 일반 관광객들은 그곳에서 예약을 하면 되고 나처럼 일요일 미사는 예전 홈페이지에서 따로 예약을 해야 한다. 지금은 약간 과도기라서 그런지 다녀온 후기를 미리 말하자면 티켓을 따로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그냥 선착순 느낌으로 미사 보러 오는 사람들 우르르 들어갔다. 일찍 오면 앞에 앉고 뭐 그런 거지. 너무 도떼기시장 같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워낙 많은 데 관리할 수 있는 직원이 턱없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러면 평일에도 굳이 돈을 내고 예약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언제 어디서 불시검문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라는 건 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래서 미사 때문에 마음이 살짝 급했다. 몬세라트 가는 방법은 자세히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에스파냐 역에서 패키지 표를 끊어서 가면 된다. 선택할 수 있는데 산악열차로 갈 것인지, 케이블카로 갈 것인지에 따라 내리는 역이 다르다. 보통은 두 개다 경험해 보는데 나는 그냥 왕복 산악열차로 끊었다. 


에스파냐 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가량 가서 내려서 산악열차로 갈아타면 된다. 에스파냐 역에 가니 기차가 미리 도착해 있었다. 아직 갈 시간이 안 되어서 아무도 안 탄다. 한국은 KTX 도착하면 먼저 탔었는데 여긴 아무도 안 타서 혹시 이 기차가 아닐까 봐 바로 앞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랑 엄마가 먼저 슬금슬금 타버렸다. 웃긴 건 나랑 엄마가 올라타자 다들 타더라는 것. 

산악열차는 경치 구경하면서 가려면 왼쪽에 앉아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 전혀 상관없이 탔다. 근데 어차피 경치라는 게 온통 안개가 껴서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올라갈수록 화면 조정하는 것처럼 정말 하얗기만 해서 올라갔다가 경치를 하나도 못 보고 내려올까 봐 걱정했다. 

꼭대기로 갈수록 서서히 걷히는 안개. 안개가 밑에 깔려 있어서 마치 그대로 천국으로 올라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이 산악열차가 천국행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바로 옆에 한국에서 온 패키지 관광객들이 함께 타고 있어서 몇 마디 얘기도 나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손자들까지 3대가 가족 여행으로 오신 것 같은데 보기 좋았다. 

산악열차 타고 내리면 바로 보이는 풍경이다. 정말 기암절벽이 딱! 보여서 내리자마자 다들 탄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 바빠진다.

역에서 가는 곳은 다들 같은 방향이라 사람들 올라가는 방향으로 따라 올라가면 된다. 몬세라트는 가우디 건축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산으로 이곳의 단층 지괴는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바위로 둘러싸인 트래킹 코스도 많아서 볼거리가 많다. 몬세라트가 카탈루냐어로 '톱니 모양의 산'이라는 뜻으로 독특하고 기괴하게 생긴 바위산에 둘러싸인 수도원이 유명하며 그중에서 검은 성모 마리아 상과 에스콜라니아 소년 합창단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사시사철 넘쳐난다. 

예배당 외에 미술관도 있지만 우리는 미사 드리러 온 게 주목적이라 다른 건 신경도 못 쓰고 바로 예배당으로 향했다. 

다른 성당 건축물에 비해 넓거나 웅장하거나 특별히 아름답진 않았지만 들어선 순간 느껴지는 위엄과 성스러운 분위기가 압도한다. 저 앞에 십자가상 위에 보이는 아치형 문 쪽에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미사 전까지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보러 관광객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원래 검은색은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목재의 유약이 변해 검은색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천주교 신자라면 혹은 종교가 없다고 해도 한 번쯤은 가서 직접 보고 기도해도 좋을 것이다. 나와 엄마는 가진 않고 올려다봤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단체로 온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매주 미사 때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궁금해졌다. 앞에 서 있는 마스크 쓴 직원 분이 수시로 조용히 시켰다. "쉿!"을 어찌나 크고 우렁차게 하는지 저분이 하는 쉿 소리에 장내가 일순간 조용해지곤 했다. 


나와 엄마는 개신교 신자라 천주교 미사 자체가 처음이었다.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았고, 오늘이 일요일이기도 해서 예배드리러 온 것도 있었다.


미사 때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예배 때는 소년 합창단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서 살짝 기대했지만 합창단의 공연은 따로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미사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만 몇 나라의 신부님이 와서 각 나라의 언어로 말씀을 읽어 주셨다. 우리나라 신부님도 오셔서 한국어로 성경을 봉독 해서 신기했다. 한국에서 온 신자 분들도 꽤 보였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매주마다 각 나라 신부님이 오셔서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몬세라트에 파견한 한국 신부님이 따로 계시는 건가?


앞 좌석에 나란히 앉은  세 분의 한국 할머님들이 너무 귀여우셨다. 이 먼 곳까지 미사를 드리겠다고 오셔서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고 성찬을 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미사 후 나와서 성찬 하는 시간도 있었는데 따로 나가진 않았다. 개신교이지만 세례신자이니 나갈 수 있었는데 어쩐지 발이 떨어지지 않더라. 하하.   

미사 드리고 나와 마주한 나무. 대체 무슨 나무이기에 이렇게 길쭉하게 다듬어 놨을까. 이건 무슨 의미가 있는 조경일까? 

전통 공연이 한창이다. 무슨 공연인지 궁금하다. 

대부분 몬세라트에 오면 예배당을 구경하고 산미구엘 전당대까지 걸어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제발 푸니쿨라 타고 올라가서 조금이라도 트래킹을 해야 한다. 트래킹을 하지 않고 그냥 온다면 몬세라트를 반만 즐기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몬세라트의 푸니쿨라는 두 코스인데 산타고바로 가는 것과 산호안으로 가는 것이다. 산타고바는 몬세라트 기준 아래쪽에 있고, 산호안은 위쪽에 있다. 엄마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것을 엄청 힘들어해서 산미구엘 전망대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보다 푸니쿨라를 타고 산호안으로 가서 천천히 경치 구경하면서 산미구엘 전망대까지 내려오는 편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70대가 걸어 내려오기에도 괜찮을 정도의 완만한 트래킹 코스였다.  


산호안으로 가는 푸니쿨라 정류장은 몬세라트 역 바로 옆쪽에 있다. 

푸니쿨라 타고 산호안에서 내려 가져온 과일과 간식을 먹었다. 샌드위치나 빵 종류를 사 와서 든든히 먹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왜냐면 내려오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당연하다. 점심때이지 않는가. 위쪽으로 올라가서 교회를 보고 내려와도 좋은데 우리한테는 무리라 오른쪽에 있는 내려가는 길로 향했다. 

길은 잘 닦여 있고,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과 어딜 둘러봐도 기암절벽과 근사한 풍경이 맞아준다. 내가 정말 천국에 올라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트래킹 하면서 사진과 영상은 수없이 찍은 듯

어딜 봐도 절경이고, 장관이다. 가장 기대했던 곳인데 기대 이상이었다. 스페인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이기도 하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민과 걱정이 있는 사람도 이 풍경을 보고 서 있으면 모든 걱정, 근심이 날아갈 것 같다. 신이 자연에게 부여한 놀라운 선물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신의 선물이 아니고서야 저 바위들이 저렇게 산자락에 놓여 있지 않을 것이다.

내려가는 발걸음이 마치 하늘을 걷는 기분이 든다. 가족 단위로도 많이 오고 특히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유럽에 오면 항상 느끼는 건데 아기들을 등에 메고 이런 산들을 참 잘 다닌다. 

내려가는 중간에 작은 교회도 발견했다. 누군가의 염원과 기도를 담은 돌 쌓기는 만국 공통인가 보다. 

몬세라트 산에 수도원이 지어진 것도 놀라운 데 이런 바위산 중간중간에 작은 교회들을 잘도 지어놨다. 그 옛날 누군가가 산을 오르내리며 기도하고 찬양을 하던 곳이겠지. 고행을 하던 수도사들이 들르던 곳이었을까.


뒤쪽에 잠시 앉아 쉬면서 물을 마셨다. 옆에는 스페인 아줌마, 아저씨들이 오렌지와 빵을 싸와서 한창 먹고 마시고 있었다. 오렌지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하마터면 한쪽만 달라고 할 뻔.   

그렇게 내려오다 보면 저만치 우리가 조금 전까지 미사를 드리던 몬세라트 수도원과 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습을 보려고 올라왔구나. 엽서에 인쇄된 풍경처럼 현실감이 없어 보인다.

꽤 오래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몇 권의 책을 읽고 순례길 다녀온 사람의 강연도 들으러 다닐 정도로 진심이었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물론 순례길의 몇 백 분의 일 정도의 길을 잠시 걸었을 뿐이지만 순례길을 걸었다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다. 

드디어 마주한 산미구엘 전망대 십자가. 우리 앞에 내려가던 외국 세 모녀 덕분에 여기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잘 나오는지 알게 되었다. 안 그랬으면 아래서 위로 올려대며 끙끙거렸을 텐데 그분들 찍는 거 보고 똑같이 따라 했다. 서로 보고 웃었다. 

만약 걸어올라 왔으면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놀랐겠지만 이미 절경을 보면서 내려온 터라 그만큼의 감흥은 나지 않았다. 이때쯤엔 사실 좀 지쳐서 빨리 내려가고 싶었다.  

보너스 컷이다...

사실 하루 종일 있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저녁에 일정이 있어서 바로 산악 열차를 탔다. 시간이 맞아서 바로 와서 탈 수 있었다. 시간표가 있으니 미리 확인하고 움직여도 좋다.


하지만 그냥 몬세라트에서 천천히 내려올 걸 그랬다. 카탈루냐 음악당 공연을 저녁 6시에 예매해 두었는데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이대로는 저녁도 못 먹고 옷도 못 갈아입고 바로 음악당에 가야 할 판이었다. 


에스파나 역까지 오는 기차에서 거의 뻗었다. 피곤함이 몰려오고 땀 흘리고 갔다 와서 샤워하고 싶었다. 내가 이런데 엄마는 당연히 힘들겠지. 우리 엄마 성격에 힘들다고 할 사람이 아니다. 말로는 표 날리지 말고 음악당에 가자고 했지만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이미 알 카사르에서 무리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녀와서 생각해 보니, 모든 예매를 미리 다 한국에서 하고 갈 필요는 없다. 특히 공연 같은 건 현지에서 일정이 유동적일 수 있으니 매진되는 표가 아니라면 현지에서 시간에 따라 끊는 게 맞는 것 같다. 게다가 바르셀로나에서 꽤 먼 몬세라트까지 움직이면서 저녁 공연을 예매한 건 나의 실수였다. 


결국 음악당은 따로 갈 시간조차 나지 않아 공연뿐만 아니라 그 근처도 다신 가지 못하고 한국에 왔다. 이번 스페인 여행은 아쉬움이 많이 남아 다음에 또 가고 싶다.

 

공연은 뒤로 하고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마이리얼트립에서 가우디 투어를 신청해 놨는데 그 여행사에서 미리 바르셀로나 맛집 리스트와 쇼핑 리스트를 싹 보내왔다. 이럴 때 참 유용하게 쓰였다.


몸은 피곤하고 빨리 먹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 맛집 리스트에서 숙소에서 멀지 않은 식당을 뽑아 다녀왔다. 'Micu Maku 미구마구'라는 레스토랑이었는데 굉장한 여장부 주인이 있는 곳이었다. 


예약하고 왔냐는 말에 예약하지 않았다니까 잠시 고민하다가 바 테이블 바로 앞에 있는 2인 좌석으로 안내했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손님은 많지 않았다. 주인아줌마 말투 자체가 크고 시원시원해서 엄청난 포스가 있는 분이었다. 


젊은 남자 직원들이 바 테이블에서 술잔을 닦으면서 우리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몇 마디 한국어를 주고받으며 낄낄 거렸다. 다른 말은 몰라도 한국어를 말하니 알아들어서 봤는데 아무래도 한국 손님들이 왔으니 자기들끼리 아는 단어를 말해보는 것 같았다. '아니, 우리한테 직접 얘길 하라고.. 받아 줄 수 있는데.'


주인아줌마가 그렇지 않아도 남자 직원들한테 영어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꾸 시키는 것 같았다. 근데 남자 직원들은 굉장히 부끄러워해서 그거 보는 재미가 솔솔 했다. 스페인 사람이라고 해도 영어는 어려운 모양이다.

스페인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오징어 튀김, 칼라마리와 맥주 끌라라를 마셨다. 오징어가 탱글탱글, 바로 튀겨서 뜨겁고 맛있었다. 

해산물 빠에야도 시켰다. 해산물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크고 좋은 식재료로 만든 빠에야는 맛있을 수밖에 없다. 따로 간 조절은 안 했는데 엄마는 좀 짜다고 했고 내 입엔 잘 맞았다. 아무래도 스페인 음식의 간은 내 입에 맞는 것 같다. 

역시 안 먹어 본 판콘토마테도 시켰다. 구운 빵에 토마토와 올리브오일, 소금 등을 발라 먹는 것으로 맛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보니까 또 먹고 싶네. 


배불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숙소로 돌아와서 그대로 뻗어 버렸다. 

언젠가부터 우리 엄마는 씻지도 않고 잔다. 말은 안 해도 강행군인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는데 크게 탈 나지 않고 다녀온 것만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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