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있으시니 근본적인 치료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궁 적출 말인가요?"
"아이 가질 생각이 없으면 그것도 방법이에요. 젊어선 여러가지 가능성 때문에 약물 치료를 한 거예요."
월경을 시작한 10대 중반부터 심한 월경불순을 겪었고 20대 때부터 다낭성난소증후군과 자궁내막증으로 약물 치료를 받았다. 초기엔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동네 병원에서 대학병원으로 보내졌다. 그때 만났던 교수님한테 아직도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부정맥이라는 또 다른 병이 생기면서 오랫동안 먹었던 경구 피임약을 끊기로 했을 때도 교수님은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고 했고 부정기적인 출혈이나 이상이 있을 때는 바로 와야 한다고 했다. 산부인과에 수십, 수백 번을 혼자 들락 걸리 때면 항상 성관계 유무와 임신 가능성을 체크했다.
성관계없을 시 초음파를 보는 곳이 달라졌고, 임신 가능성이 있으면 치료 방향도 전혀 달라졌기 때문이다. 같은 여성이었던 교수님조차 30대 때까지 나를 보면 '왜 결혼하지 않냐'라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가서는 또 달라졌다. 한 번도 꺼내지 않던 자궁 적출에 대해 넌지시 얘기했다.
약을 끊고 5년이 넘어가지만 비교적 정확한 월경 패턴과 부정기적인 출혈도 전혀 없었고 초음파도 괜찮았는데도 근본적인 치료에 대해 얘기했다. 젊은 여성의 몸은 나이 든 여성의 몸과 그 기능과 치료 방향조차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언제든 내 자궁은 변덕을 부릴 수 있고 이제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다면 아예 떼어내는 것도 편리한 방법이리라.
하지만 나는 내 몸에서 자궁을 떼어내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여성은 월경이 끊어지면 살이 찔 수밖에 없어요. 한 번 찐 살은 잘 빠지지도 않아요. 월경 끊어지고 갱년기 오기 전에 살 빼야 해요."
1~2년 사이에 10kg이 넘게 쪘다는 말에 내분비내과 선생님이 해 준 말이다. 왜 우리 엄마 대 나이 든 여성의 몸이 팔다리는 얇아지고 몸통은 튜브처럼 변해가는지, 아무리 적게 먹어도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건지 알게 됐다. 그것 역시 내 자궁 속에서 일어나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변덕으로 인한 것이겠지.
"얼굴이 동안이라 어려 보여요."
최근 이교한 교회에서 상담 끝에 나온 말이었다. 예전 같으면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좋아했겠지만 언젠가부터 저 말이 거슬린다. 아니 중년의 나이에 얼굴이 동안이라 어려 보이면 뭐 어쩔 것인가. 그 나이에 맞게 주름도 지고 적당히 나이 들어가는 게 보이는 얼굴이 훨씬 더 편안해 보인다. 또래 친구들이 모이면 눈밑 지방 재배치니, 팔자주름 필러니 하는 얘기들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 말을 듣다 보면 내 얼굴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검색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지방과 주름살을 붙들어 올리겠는가. 이러다간 관짝에 누워 있는 얼굴도 피둥피둥 쫙쫙 펴진 얼굴로 들어가 있을 듯하다.
나도 모르는 새, 나이 든 여성의 몸에 대해 얼마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덧 입혀졌는지 모른다. '폐경'이라는 말로 여성으로서의 인생이 마치 끝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남성 호르몬이 훨씬 더 많이 나와 성격도 우락부락 남성들처럼 변해 버려 제3의 성이라는 말까지 듣는다.
정말인가? 그렇다면 월경이란 결국 아이를 갖지 못한 여성으로서의 기능 실패이고 단경은 여성으로서의 기능상실인가.
얼마 전에 흥미로운 글을 읽고 나서야 오랫동안 산부인과를 들락거리면서 치료받았던 나 스스로 내 몸을 어떻게 봐왔는지 깨달았다. 에밀리 마틴의 '단경하는 몸속의 여성'이란 글이며 철학공부 모임인 전기가오리를 통해 읽었다.
여성들은 몸속에 정해진 난자의 개수를 갖고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언제 단경하는지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의학 서적이나 교과서에까지 여성의 '월경'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단어들로 점철되어 있는지 하나하나 짚어 준다. 여성 자궁의 목적이 단 하나 '생산'에 있는 것처럼 월경은 '탈락', '배출', '죽음', '멈춤', '퇴화' 같은 실패와 해체의 단어들로 적혀 있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임신을 하지 않는다. 또 모든 여성이 임신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런 경우에서 바라본다면 월경은 실패나 탈락이 아니라 성공적인 목적 달성인 셈이다. 단경에 대해서는 더욱 심하다. 단경, 즉 월경이 끊어지는 것을 말하는 데 우리는 '폐경'이라 하며 이를 갱년기로 가기 전 꼭 해야 할 치료의 대상으로 본다.
단경이 되면 당연히 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할 것처럼 말하지만(나조차도 엄마한테 산부인과 가서 치료하라고 했었다.) 우리 엄마만 해도 50대 초중반에 단경한 후로 단 한 번도 산부인과에 가서 치료받은 적 없이 잘 살고 계신다. 물론 이 말이 산부인과에 가지말고 살라는 말은 아니다. 당연히 증상이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글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는 격렬한 축구를 하던 팀이 나이가 들어서는 좀 더 차분한 '새로운 게임'을 하는 셈'이다. 나이가 들면 몸의 기능은 자궁뿐만 아니라 서서히 떨어지게 된다. 이를 차분하고 부드럽게 관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잘 늙어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글에는 새로운 의학 철학 은유로서 '카오스 이론'을 내세운다. 우리 몸이 질서 정연하기만 한 기계가 아니듯이 규칙적인 수치나 패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반죽 속의 건포도가 반죽 안에서 이리저리 굴러가듯 우리 몸 또한 수만 가지의 유기적인 조건의 영향 아래 불규칙적으로 요동친다. 이때 '불규칙'은 몸 기능의 비정상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심한 스트레스나 환경 조건의 영향에 따라 나타나는 월경불순이 꼭 병리 상태가 아님을 뜻한다. 월경이나 단경에 기계적인 규칙성을 부여하기 위한 호르몬 치료에 예전보다 덜 의존할 수 있다는 것이 에밀리 마틴의 주장이다.
이 글은 꽤 신선했는데 스스로 월경 28일 주기에 매달리며 '비정상'이라고 느꼈던 부분에 대해서, 또 시든 꽃처럼 느껴지던 '나이 든 여성의 몸'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약을 먹는데도 종종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느끼거나, 때때로 숨도 못 쉴 것 같은 불안감이 덮쳐와 잠을 자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어느새 이런 증상들 또한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편안해진 것처럼 너무 호들갑 떨지 않고 곧 다가올 나의 '단경'도 받아들일 것이다. 그전에 물론 너무 많이 쪄버린 살은 빼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나이 들어 떨어지는 몸의 기능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진 않을 것이다. 조금 덜 뛰고 덜 부딪히는 부드러운 축구 경기를 하기 위해 새로운 경기장에 들어선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