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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Sep 18. 2022

3 Summers in the Movie

썸머를 떠나보내는 방법

요 며칠 초가을 마지막 늦더위가 매섭다. 어쩌면 떠나가기 싫은 여름이 부리는 투정이자, 여름을 떠나보내기 싫은 우리들의 남은 미련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사랑하는 계절인 여름을 떠나보내는 것은 나에게 항상 쉽지 않은 일이다. 여름이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다. 해가 지나 내년이 되어 또 여름이 오면 그 여름도 너무나 뜨겁고 내가 사랑하는 계절이 될 테지만, 지금 보낸 여름과 같은 여름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여름을 쉽게 놓지 못하고, 이 여름도 쉽게 떠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안다. 결국 하나의 계절은 끝이 나고 새로운 계절이 올 것을.


이렇게 여름에 대한 절절한 내 사모의 마음을 적고나니, 마치 마지막 이별 후 떠나가는 연인을 그리는 마음과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계절을 사랑이나 연인 관계에 비유하는 것은 클리셰라 할 정도로 동서고금 많은 작품들 속에서 그려진다. 진부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비유라는 것은 그만큼 큰 힘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름도 다양한 작품들에서 여름의 특징을 의인화한 캐릭터나 그 관계로 등장한다. 너무나 뜨거웠고, 또 두 번의 장마에 태풍까지 변덕도 심했던 올여름을 보내면서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들 속 여름의 이름을 가진 사랑스러운 세명의 썸머들을 소개한다.




1) '500일의 썸머(2009)'의 썸머

이 구역 최고의 유명인 썸머는 역시 영화 '500일의 썸머'의 여주인공인 썸머다. 소개전에 앞서 Summer를 한글 표기할 때 국립국어원을 검색해보니 서머가 맞다고 하는데, 서머는 왠지 부를 때 강렬한 그 여름의 어감이 살지 않아서 글에서는 썸머로 표기함을 밝힌다. '500일의 썸머'는 앞서 이야기한 연인 간의 사랑을 계절에 빗댄 가장 대표적인 영화다.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주인공 톰(조셉 고든래빗)이 현실주의 여자 썸머(주이 디샤넬)에게 한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떠나보내기까지 500일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남자 주인공 톰의 시점으로 영화 전체가 진행되어 많은 남자들의 인생 영화라고 불릴 만큼 남자들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 영화로 유명하다.


수많은 남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당연히 그만큼 영화 속 여주인공인 썸머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영화 내에서도 썸머는 'Summer Effects'(썸머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을 하는 곳에서 많은 남자들의 관심으로 인해 굉장한 성과를 낸다는 가상의 효과)가 등장할 정도로 매우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계절 여름을 의인화 한 썸머는 둘의 강렬한 첫 키스처럼 뜨겁게 다가와 가끔은 변덕스러운 모습도 보여주고, 주인공인 톰의 입장에서는 어떨 때 너무 가혹할 정도로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만 너무나 매력적이라 그녀를 쉽사리 떠나보낼 수가 없다. 20대 초반 처음 이 영화를 보고 아직은 사랑을 잘 몰랐던 나와 내 (남자인) 친구들이 모두 썸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갖가지 토론을 벌였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너무나 얄밉기도 했고, 나이가 든 이제는 이해가 되는 마성의 그녀. 미성숙했던 우리의 가장 뜨거웠던 사랑이자 여름 그 자체였다.


'500일의 썸머' 스틸 컷


'500일의 썸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로케이션은 역시 주인공 톰의 벤치다. 톰이 LA 다운타운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톰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이자 톰과 썸머가 함께 시간을 나눴던 장소다. 사랑하는 썸머에게 내가 생각하는 내 꿈과 미래를 처음 공유했던 장소이면서, 동시에 마지막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끝났음을 깨닫게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라라랜드'의 두 주인공이 함께 데이트를 했던 LA의 오래된 전철 Angel's Flight Railway 바로 옆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 벤치가 있는데 2018년에는 재개발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는 공간이 되어있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래도 조금만 더 올라가면 주인공들이 보던 LA의 모습을 비슷하게 볼 수 있으니 산책 삼아 올라가 뜨거운 캘리포니아의 여름 날씨까지 함께하면 마치 썸머를 만난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장소였다.

  

2)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2008)'의 썸머 하틀리

위 '500일의 썸머'의 썸머보다는 조금 덜 유명하지만, 어찌보면 비슷하게 마성적이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또 한명의 여름이 바로 영화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에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번역 제목인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보다는 원제 'Definitley, Maybe'를 더 좋아한다.


이혼 후 귀여운 딸 마야를 공동 양육하고 있는 주인공 윌(라이언 레이놀즈)은 어느날 마야가 자신의 엄마(전처)와의 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고, 이에 자신이 일생 겪었던 사랑 이야기들을 딸에게 전해준다. 그는 고향에서 첫사랑 에밀리(엘리자베스 뱅크스)와 예쁜 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정치로 성공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찾아 잠시 그녀를 떠나 뉴욕으로 향한다. 그리고 뉴욕에서 윌은 썸머(레이첼 와이즈)를 처음 만나게 되고, 썸머는 에밀리와는 전혀 다른 지적이면서 섹슈얼한 매력으로 윌을 뒤흔들지만, 그는 에밀리를 생각하며 간신히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들을 옆에서 듣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또 다른 여자 에이프릴(아일라 피셔)까지. 셋 중 딸 마야의 진짜 엄마가 누구인지 추리를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다.

 

영화 속 썸머의 첫 등장이 굉장히 강렬하다. 에밀리의 친구기도 한 썸머는 에밀리가 전해주라는 썸머의 일기를 통해 먼저 캐릭터의 정체성이 드러나는데,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이 모두 기재된 그녀의 일기를 보고, 궁금증에 빠진 윌이 썸머를 찾아가 처음 그녀를 만난다. 60대의 교수와 연애를 하고 있으면서도 헤어지는 자리에서 먼저 윌에게 키스를 하는 썸머. '500일의 썸머'에서도 그랬고 뭔가 썸머 캐릭터들의 강렬한 선제(?) 키스는 우리가 여름을 생각할 때 뜨거운 그 모습을 상징하는 클리셰적 장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포가 될 수 있어 스토리를 더 설명하진 않겠지만, 나는 세 여주인공 중 레이첼 와이즈가 연기한 썸머가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그녀가 마야의 엄마이기를 응원하면서 영화를 봤었다.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 스틸 컷


윌과 썸머는 이후 각자의 이유로 솔로인 상태로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업무적으로 서로 시너지를 내며 뜨거운 연애를 한다. 둘이 만난 운명적인 재회 장소가 브루클린에 있는 몬탁 클럽이다. 브루클린 뮤지엄 근처에 있는 몬탁 클럽은 영화에서처럼 북 클럽 같은 이벤트 장소로 주로 쓰이고, 이런 행사가 없을 때는 간단한 식사와 음료가 가능한 펍처럼 운영되니 맨해튼을 떠나 브루클린에 방문한다면 한 번쯤 들려볼 만한 장소다. 우연이면서 동시에 운명처럼 다시 만나게되는 썸머의 지적인 매력이 한층 드러나는 장소로 또 우리에게 언젠가 여름이 다시 불쑥 찾아올 것을 암시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3) 'The O.C(2003)'의 썸머 로버츠

'가십 걸' 이전에 'The O.C'가 있었다. 비록 영화는 아니지만 미국 청춘 드라마 계보를 거슬러가면 빠질 수 없는 TV 시리즈가 바로 'The O.C'다. 나는 아직도 내가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보게 된 것인지를 모르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 집에 DVD 플레이어와 이 드라마 시즌 1 DVD가 있었다. 왜 우리 집에 나 말고는 아무도 보지 않을 이 드라마의 DVD가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각설하고, 그때 바다 건너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저렇게 학교를 다니고 사는구나 하며 혼자서 굉장히 부러워하며 이 드라마에 완전히 빠져버리게 되었다.


'The O.C'는 LA 남쪽 도시 뉴포트 비치의 부촌이라 할 수 있는 오렌지 카운티의 고등학생들의 성장과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전형적인 청춘 드라마다. 가십걸의 전신이라 할 만큼 당시 청소년들의 문화와 스타일을 선도하는 아이코닉한 드라마였다고 한다. 이 드라마에도 매력적인 캐릭터 썸머(레이첼 빌슨)가 등장한다. 드라마 시즌 1 썸머는 처음 전형적인 파티 걸인데,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이 받아주지 않자 다른 여자 애나와 사귀고 있는 세스(애덤 브로디)를 뒤흔들어 결국 그의 사랑을 쟁취한다. 마치 앞선 두 영화의 썸머가 어렸을 때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 있고 당차지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모르고 변덕도 심한 아직 덜 여문 여름이 바로 썸머 로버츠다.


앞선 두 썸머는 짧은 영화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후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기 힘들지만, 디 오씨의 썸머는 드라마가 시즌 4까지 지속되며 이후의 그녀의 삶도 충분하게 그려진다. 참고로 시즌 1에서는 조연이었던 썸머 역은 굉장히 인기있는 캐릭터가 되어 마지막 시즌인 4에서는 주연 캐릭터가 되는 쾌거(?)를 누린다. 워낙 드라마가 길고 중간에 사건/사고들이 많아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시즌 4에서 썸머는 브라운 대학에 진학 후 인생의 전환점이 될만한 큰 사건을 겪고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동물 보호를 하는 활동가로 성장하고, 세스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이야기다. 그 철없던 파티 걸이 동물보호 운동가가 되고, 세스의 연애를 질투하던 어리광쟁이가 결국 그와 떨어져있어도 둘은 항상 함께하고 있다는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사랑꾼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썸머의 성장과 변화가 마치 계절의 성숙처럼 느껴진다.


'The O.C' 스틸 컷(썸머의 집, 출처: https://www.seeing-stars.com/OC/SummersHouse.shtml)


드라마는 뉴포트 비치를 배경으로 서부 캘리포니아 전체를 다루고 있어서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모두 가볼 수는 없었다. 썸머와 관련해 제일 기억에 남는 드라마 로케이션은 역시 썸머의 집이다. 여긴 위에 소개한 두 영화 장소와는 달리 내가 아직 가보지 못했고, 어딘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미국 드라마의 한 덕후분께서 열심히 찾아낸 장소 정보만 공유한다.(위 링크) 커다란 서부 캘리포니아의 대저택, 역시나 썸머를 상징하는 이미지 그 자체다!


※ 개인적으로는 시즌 1 드라마 최고 엔딩 장면 중 하나인 썸머의 남자친구 세스가 썸머의 이름을 딴 보트 Summer Breeze를 타고 바다로 항해를 떠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해 그 드라마 로케이션인 마리나 델 레이에서는 여행을 하며 실제 요트를 처음 타보는 경험을 했었다.




뜨겁고, 사랑스럽고, 변덕스럽고, 그래서 더 매력적인 여름들. 어떤 경우에는 주인공과 끝까지 이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모든 여름은 강렬한 사랑의 추억으로 주인공들을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500일의 썸머'의 한국 영화 포스터 캐치 프레이즈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모두는 썸머와 사귄 적이 있다"


글을 읽는 모두에게 각자가 생각하는 여름과 그 여름이 생각나는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여름의 사랑이 결국 우리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울을 기준으로 오늘 낮 기온이 30도인데 오늘을 기점으로 내일이 되면 정말 마지막 시기의 늦더위가 끝이 나며 진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고 한다. 이 여름도 나와 우리 모두를 성장시켰으리란 믿음으로 아쉽지만, 더는 슬퍼하진 않는 마음으로 떠나보낸다.


안녕. 2022년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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