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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조이 Oct 03. 2022

4년 전과 오늘의 결론이 다른 까닭

'스위트 노벰버'의 돌로레스 파크에서 이별 장면

얼마 전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질문에 대해 나는 꽤나 단호하게 대답을 했는데, 그때까지 나의 사랑에 대한 가치관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것은 그 사랑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변명이나 핑계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나눌때는 내가 이런 결론을 언제 내렸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었는데, 어제 오늘 다시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이상한 기시감이 들며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4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영화 '스위트 노벰버(2001)'를 보며 이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써둔 기록을 찾았는데, 여태 다른 영화 로케이션 여행 기록들과 다르게 그 기록은 어디에 남겨둔 건지 찾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스위트 노벰버' 스틸 컷


거의 4년 전쯤 샌프란시스코 출장이 끝날 때 휴가를 붙여 며칠 샌프란시스코 도시 탐방을 하기로 마음먹고, 샌프란시스코 배경의 영화를 찾다가 보게 된 것이 '스위트 노벰버'였다. 당시에도 그랬고 사실 얼마 전까지도 이 영화는 내게 잊힌 영화였고, 로케이션 여행을 했던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영화였다. 이 영화가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그랬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영화 배경으로 샌프란시스코 곳곳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고, 특히 영화 음악으로 OST가 상당히 좋다. 스토리도 진부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1968년작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수준. 그 외에도 20년 전 여주인공인 샤를리즈 테론은 지금의 여전사의 이미지가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는 점이나 남주인공인 키아누 리부스는 어떻게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늙지 않았는지가 신기하다는 것처럼 영화 외적으로도 영화를 찾아볼만한 재미가 많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나에게 그리 와닿지 않았던 이유는 단도직입적으로 영화의 결말 부분을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 부분을 이야기해야 하기에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잘 나가는 광고사 간부이자 지독한 일 중독자 넬슨(키아누 리브스)이 매달 남자를 바꿔가는 히피 같은 여자 사라(샤를리즈 테론)를 우연히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만나게 된다. 진짜 인생의 재미를 알려주겠다며 11월 한 달간 동거를 사라가 장난같이 제안하고, 이 제안을 받아들인 넬슨은 사라를 통해 사랑이 주는 삶의 기쁨을 깨닫게 된다.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이 되고, 한 달이 다되어가는 시점 넬슨은 사라에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고 청혼을 한다. 하지만 악성 림프종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던 사라는 그런 넬슨을 밀어내고, 넬슨은 다시 한번 자신의 진심을 내보이며 그녀를 붙잡는다. 사라도 다시 한번 그와 함께하고 싶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어질수록 그녀는 더 이상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음을 알게 된다.


11월이 지나가고, 사라가 그와 함께 있던 집을 뛰쳐나간다. 넬슨은 그녀를 뒤쫓고, 돌로레스 파크에서 그녀를 붙잡는다. 왜 떠나가는지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우리 사이가 더 깊어질까 봐 떠날 수밖에 없다고 답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강한 추억으로 남고 싶고, 그렇기에 지금 떠나야 한다는 여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남자. 이 결말 장면이 내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사랑에 대한 가치관과 완전히 상반되는 부분이라 몰입이 모두 깨져버리게 되었다. 영화에서 사라가 그의 눈을 자신의 목도리로 감아주며 공원 한편으로 아련하게 사라지는 모습은 그림으로서는 꽤나 인상적인 마무리 장면이지만, 나는 그 장면에 이르는 과정에서 그 사고방식이나 감정선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돌로레스 파크의 모습이나 두 배우의 열연도 그리 와닿지 않았었다.


'스위트 노벰버' 스틸 컷


솔직히 이때 이 결말 부분이 당시에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서 굳이 돌로레스 파크를 찾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여행을 하기 위해 찾은 곳이니 겸사겸사 억지로 돌로레스 파크를 찾았다. 내 영화 로케이션 여행 경험 중에서 몇 안 되는 크게 가고 싶지 않았던 장소를 찾아간 경험일 것이다. 그래도 워낙 돌로레스 파크가 샌프란시스코 도심을 보며 공원이 아름다운 곳이라 그 부분에서 많이 힐링이 되긴 했다. 그리고 돌로레스 파크 모퉁이 둘이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고가 다리 근처에 앉아 다시 한번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그 사람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시한부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만 기억되고 싶은 마음. 이런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생각한다면 그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영화와 정반대 결말로 그렇게 둘이 사랑했다면 그 이유나 상황이 무엇이 됐든 끝까지 함께했어야 했고, 그렇기에 영화 속 둘은 그렇게 서로를 사랑한 것은 아니라고 결론을 혼자 내렸었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 혼자 결론짓고, 잊어버리고 살았던 이런 생각들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다. 사랑하면 헤어지는 것이란 있을 수 없다는 내 결론에 대해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적절한 사례를 예시로 들어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일부 수긍을 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수긍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때 그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이 사람이라면 내가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 포기에는 '정말로 이 사람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사람과의 관계도 포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이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니까. 사실 이런 생각은 나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여태 가지고 있었던 내 연애 가치관과는 배치되는 관점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영화적 체험으로 모든 것을 실감하고 상상하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어서 직접 그 상황이 되어야만 정답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4년 전 내가 내렸던 결론을 철회하려고 한다. 여전히 정답은 모르겠지만, 더 열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언젠가는 이 정답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한 번쯤은 그 사람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같이 돌로레스 파크에 방문해 다시 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뭐 영화에서 둘은 어쨌든 새드 엔딩스러운 열린 결말이라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고 싶은 내 소망과는 달라서 방문하는게 조금 꺼려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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